헌트 (The Hunt , 2020)

영화감상평

헌트 (The Hunt , 2020)




(영화를 보실 분은 아래 글을 읽지 마세요.스포일러가...)

'블룸하우스'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제작사다. 당신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블룸하우스 로고가 뜬다면 살짝 긴장하는 게 좋다. 저예산, 밀도 있는 각본, 기발한 상상력, 논쟁적 주제, 블랙코미디, 신박한 액션 장면, 때때로 고어와 슬래셔, 기타 등등. <헌트> 역시 블룸하우스의 DNA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는 맥거핀(중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일종의 속임수)의 연속.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겹겹의 함의(含意)를 촘촘한 바움쿠엔까지는 아니라도 파이의 속꺼풀처럼 숨겨 놓았다. 영화 <비우티풀> 정도의 깊이는 아니지만 미스터리 서바이벌 게임의 뼈대 위에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빈부, 계층, 인종, 종교, 젠더, 이민자 갈등)를 고명처럼 갈아 넣었다. 가벼운 폭력이 난무하고 유쾌하지 않은 유머가 번득이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를 킬링타임용 인스턴트 영화로 소비할 수 없는 이유는 확실한 정치/사회적 동기와 주제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같은 사냥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사냥의 시간>에는 없는 '확실한 동기'가 <헌트>에는 있다. 이 결정적 차이가 두 영화의 운명을 갈라 놓는다. 물론, <헌트> 역시 (다른 블룸하우스 영화들처럼) 비약이 있고 극단적이긴 하다.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알고(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명쾌하게 끌고 가서 끝을 낼 줄 안다는 것. 제작진은 갈등을 깊게 파고드는 대신 잡다한 곁가지를 쳐내고 돌진하는 이야기의 쾌감을 전면에 내세워 극을 끌고 간다. 중간중간 기묘하게 마음을 잡아 끄는 지점들이 있는데 그 동력은 베티 길핀(크리스탈 역)이란 배우의 매력(동영상 참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하게 된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사악한 무리인가? ‘ '개별적 인간과 무언가(집단, 계급, 취향, 사상적 동지 관계 등)에 속한 무리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멀리 떨어져 바라볼 때 악의에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평범하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계층/계급이란 것의 허상(오세트라 캐비아와 하이직 와인의 농담으로 대표되는), 단톡방 농담이 진짜가 되는 인과 관계 전도의 과정, SNS와 인터넷 여론의 속성과 실체, 부르주아 계층의 지적 우월성과 도덕적 이중성, 미국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가로지르는 불신, 편견, 경멸, 증오, 폭력, 보복이 초래한 파멸 등,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 영화는 <폭력의 역사>만큼 우아하지는 않지만 현대사회의 폐부를 시니컬하게 찌르는 장르 영화로는 충분히 세련된 완성도를 보여준다.

아무튼, <헌트>는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속 크리스탈의 대사처럼 '우우우우~' 하면서 ‘열라 끝내주(It's fucking great)’는 구석이 있다. 매번 최고의 효용성을 뽑아내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영락없는 블룸하우스 제작 스타일의 한 판 승.



(iratemotor 님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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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트>를 보면서 <부시위크> 생각을 많이 했다. 이란성쌍둥이 영화.

2) “참 놀라워 사람들이 평생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을 모르고 산다는 게. 토마토를 깔끔하게 자르는 건 빵칼밖에 없다는 거.” (이런 대사 참 좋다)

3) 하이직 와인에 대한 리처드의 설명 : "니콜라이 2세에게 가던 배가 독일 잠수함에 침몰당했는데 몇 년 전 잔해가 발견됐어. 1907년산 하이직 6개들이 한 상자도 같이 작은 로봇으로 건져 올렸는데 그중 3병을 아테나가 병당 25만 달러에 샀거든. 근데 아무에게도 맛을 안 보여줘서." (이런 상상력 재밌다)

4) 영화의 주요 인물인 아테나는 1시간 3분 10초쯤 되어서야 드디어 얼굴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미 극 전반을 쥐락펴락하는 미친 존재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전도연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대체 왜 안 나오는 거야... 하고 보다 보니 영화가 반 넘게 지나서야 등장, 등장하자마자 극의 분위기를 단박에 휘어잡는 방식과 흡사해서 흥미로웠다.

5) 누가 '스노볼'일까? 크리스탈? 아테나?

#헌트 #눈에는눈이에는이 #함무라비법전장르영화 #블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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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직 와인 1907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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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S MacCyber  
엠마 로버츠가 오래 나오면서 미남자와 썸씽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ㅎㅎ
그리고 여주가 너무 오버-시크해서 인간미가 좀 없는 느낌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