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피쉬] 기억 저편의 아려한 동심. 어른들을 위한 환타지 동화

영화감상평

[빅 피쉬] 기억 저편의 아려한 동심. 어른들을 위한 환타지 동화

1 제르 2 11880 218
혹성탈출 이후, 팀 버튼의 영화를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동화같은 그의 이야기가, 동심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의 비주얼이 역시나 우리에게
잊고 지내왔던 어른들의 환타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던 것은
그가 계속해서 관객에게 질타를 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당신! 이제 더이상 비현실의 세계의 문을 걸어둘 참이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개인적인 환타지를 포기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생활에 찌들고, 삶에 지쳐가는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가 품어왔던 꿈에 대한 기억에
희망과 행복을 느껴왔다는 것을 잊지말자. 저 멀리 기억도 까마득한 언덕 너머로
미뤄두었던 당신의 꿈에 대한 기억과 생활 속의 환타지는 그저 잊고 지낼만한 추억으로
묻어두기에는 우린 아직 너무 생생하지 않은가?

꿈을 잊고 살아온 그동안의 인생들, 추억이 되어 돌아오다.
영화를 보던 마지막 순간에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린 것은 아마도 그동안의 내가
잊고 살아왔던 순수함에 대해 추억하기가 어려워졌음에 대한 가슴아픔이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따르며, 계산하여 답이 나오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요즘의
삶에서 인생의 환타지와 스스로가 만들어냈던 꿈에 대한 기억은 어디서 다시 찾아 올
것인가? 단지 그것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며, 더이상은 산타클로즈와 같은 이야기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거짓말이 되어버린 순간, 당신은 이미 스스로에게 나이먹었음을
고하고 말았다. 아니 나이먹었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꿈꿀 의지를 박탈한 것이며
개인적인 환타지에 대해 미련만을 남길 정도로 나약해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렸을 적에 우리가 듣고 자라왔던 수많았던 이야기들, 아마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것들은
한낱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의 성장에 원동력이
되어왔으며, 현실과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키를 키우고 몸무게를 늘리는 것과는
다른 가치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머리가 자라고, 아무것도 모르던 10대를
넘어 뭐든 다 할 것 같은 20대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너무나도
철저하게 갈라졌던 이유로, 그동안의 인생에 동심이라는 것이 겨우 추억될 수 밖에 없는
기억이라는 것이 가슴아플 뿐이다.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실생활의 환타지.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하지만 평범한 이야기는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다. 왜냐면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내가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겪고 있는 말 그대로의 '생활'이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조금 업그레이드된 환타지를 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환타지가
'반지의 제왕'처럼 장대한 스케일과 스펙터클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지 않아도 좋다.
당신의 환타지는 당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심에
내가 서있기 때문에 결국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것도, 이야기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나이기 때문이다. 실생활의 환타지는 그렇게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 아닐까.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 듯,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플래쉬 백을 통하여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고, 그 곳에는 각각의 환타지를 살아가는 똑같은
'블룸'이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두 '블룸'은 같은 환타지에 놓이게 되고, 아들 '윌'은
아버지의 환타지이자 자신의 환타지가 하나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이상향이자, 자신의
이상향이 되어버린 '빅 피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끼'가 그렇게
찾아 헤메이던 등에 별이 박힌 양을 쫓듯이 '블룸'도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빅 피쉬'를
찾아 다녔고, 그 자신이 '빅 피쉬'가 되어 이제 아들의, 아니 손자의 환타지에 스스로
등장하여 동심과 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팀 버튼의 가족주의? 가족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아시다시피 팀 버튼은 가족주의의 헤체에 대한 공포와 그 이후의 영향력에 대한 암울한
비전을 제시해왔다. '가위손'에서 버려진 자의 외로움을, '비틀쥬스'의 화합하지 못하는
가족을, '배트맨2'의 관심받지 못한 아이들을 노리는 범죄로 표현하듯이. 물론 이런
예들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것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가족주의에 대해서 따스한
시선을 보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럴 것이 그가 바라본 가족이나 어린아이에 대한
것들은 그의 암울했던 어린 시절에서 기인하고 있다. 부모님이 모두 밖에서 일을 하시고
어려서부터 혼자 집에서 스스로 놀이감을 만들어 놀아야 했던 그 자신에게는 '빈센트'나
'프랑켄위니'와 같은 정서가 동심이 되어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배트맨2'에서
극명하게 표현되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부모들끼리만 크리스마스 만찬에 모이게 되어
펭귄들이 아이들을 향해 미사일을 쏠려하는 설정들은 그가 바라본 가족주의였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맛볼 수 있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빅 피쉬'는 평소의 그의 시선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헤체되려던 가족은 환타지를 통해서 다시 통합되고, 아들은 아버지의
환타지를 다시 그의 아들에게 전하며, 동심을 키워나가는 계기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동심을 키우는 것은 어른들의 동화라는 주요항목에 한가지 옵션으로 추가 된 것이 가족을
이어주는 팽팽한 끈으로서의 작용이다. 팀 버튼도 나이를 먹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어렸을 적의 환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 그가 바랬던
자기 자신의 환타지일 테니까 말이다.

막강한 캐스팅, 각자의 색깔로 팀 버튼의 환타지를 색칠한다.
'빅 피쉬'의 캐스팅은 참으로 화려하다. 일전에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에서도
중년의 파워풀한 연기에 대단하다를 연발하였지만, '빅 피쉬'의 캐스팅 군단은 들어내지
않으면서 시침 뚝떼고 자신의 연기를 마음껏 발휘한다. 보여지는 것은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지만, '알베르트 피니'나 '제시카 랭'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생활에 녹아들고 있으며
그것이 영화 속의 이야기인지, 개인의 생활 속의 환타지가 그저 스크린에 투영된 것인지를
혼돈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환타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유령마을의 '헬레나 본헴 카터'인지도 모른다. 혹성탈출에서 팀 버튼과 함께한 것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등장하며, 마녀연기까지 그 비주얼에서도 완벽한 합격점을 받아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알몸연기까지 펼친 '대니 드 비토'가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 역시도
말이 필요없는 배우가 아니던가? 게다가 팀 버튼의 영화에서라면 더더욱 그는 빛을 발한다.
'스티브 부쉐미'? 어디서나 그랬듯이 '부쉐미'는 보너스와 같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팀 버튼의 영화 색깔을 더욱 강렬하게 해주었던 미술담당 '보 웰치'가 '더 캣'을 감독하느라
이번 프로젝트에선 빠지고, 분장의 '스탠 윈스턴'도 이번 영화에서 이름을 볼 수 없었지만,
음악의 '대니 앨프만'과 편집의 '크리스 리벤존'이 팀 버튼과 계속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팀 버튼의 베스트 멤버가 근근히 유지되고 있다는 어느정도의 위안은 된다.

영화적인 환타지는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오래전에 '장 뤽 고다르'감독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관객은 꿈꾸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2시간 후에 다시 꿈이 아닌 실생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2시간 동안 꾸었던 꿈이 자신의 생활에 다른 영향을 끼친다면 어떻게 되는건가?
영화 속에서만 환타지가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환타지를 위해서 끊임없이 영화를 봐야하고
끊임없이 영화에 목말라 할 것이다. 물론 좋은 현상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통해서 자신이
만들어내는 환타지는 어떤가? 아니면, 우리들의 동화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가?
어른들의 동화는 아이들의 동심을 키우지만, 세상의 환타지를 유지시켜주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꿈 꾸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우리는 결국 영화 속의 2시간의 환타지에만
메달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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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박정문  
  감상평 잘 보았습니다. 예전에 본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네요^^
그렇지만 조금은 복잡하다고 할까?
5 선우도우  
흠...이 영화 재미있더군요...좀 특이한 소재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