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빌며..

영화감상평

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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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아나운서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으로 쓴 글입니다. 적당히 올릴 게시판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이 게시판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가볍게 보기엔 그저 한명의 방송인이겠지만
90년대 초/중반 영화와 영화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FM 영화음악은 바이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도 잊지못할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라는
멘트가 귓전에 멤도는군요.. 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빕니다.


FM 영화음악에 푹 빠져지내던 나에게 새벽 2시라는 시간은
그런데로 버텨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고, 조일수
아나운서를 거쳐 정은임 아나운서가 바통을 이어받았을 때에는
영화음악을 들은 후에 잠을 잔다는 당연한 일과가 형성되었었다.
영화를 좋아하기 이전에 영화음악으로의 길을 먼저 열어준 것도
작은 누나를 통해 알게 된 이 방송이었고, 특히나 정은임 아나운서는
당시의 나의 마음을 뒤흔들던 유일한 여자였다.

연예인을 한창 좋아할 나이인 중학교 시절의 나에겐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딱 2명의 여인! 정은임 아나운서와
조디 포스터의 사진만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아나운서를 연예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들로 하여금 이상한 시선을 받곤 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정은임 아나운서만한 연예인은 없었다.

한때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대구에 온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샘이 깊은 물'이라는 콘서트 형식의 방송이
대구의 모대학에서 진행된 적이 있었드랬다. 당시 대학 1학년이던
나에게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고,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먼 거리였던 그 학교를 찾아가
먼발치서나마 그녀의 얼굴을 보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버스가
끊긴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타고 시 경계선을 넘나들며 지갑의
두께를 얇게 만들어버린 일이었지만, 멀리서나마 그녀를 봤다는
것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일이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FM 영화음악에 대한 기억으로 넘어가자면, 조일수를 거쳐
정은임 아나운서가 방송을 이어받았던 그 당시의 묘한 분위기,
당시의 독자들은 과감하게 '컬트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정은임 아나운서 체제의 어떤 광신도적인 뉘양스를 강하게
풍기기까지 했고, 물론 나도 그 표현에 어느정도 공감을 하면서
방송을 듣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초창기 영화음악의 CF는 달랑
3개(모출판사와 새우깡, 그리고 기억나지않는 또 하나)였지만,
정은임 아나운서 초절정기에는 무려 CF 시간만 5분에 달할 정도의
엄청난 인지도와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배유정씨가 방송을 맡은 후부터, 그 떨어지는 전문성과
기존의 열혈 팬층과 공감하지 못하는 방송 진행으로 개인적으로
점점 영화음악과 거리가 생겨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홍은철이
진행을 맡으면서 내 인생에서 영화음악을 듣는 절차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었다.

또 '출발 비디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프로가
처음 생겨났을 때 진행을 맡은 것도 정은임 아나운서였었다.
물론 기억하는 이가 많은 이 일은 무려 2회 방송 후에 여자
아나운서 교체라는 당황스러운 사건에 관한 얘기다. 당시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고정 팬들이 상당히 많은 시기였는데다가
TV에서도 전문 영화 프로그램에 의욕을 보이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2회 출연 후 볼 수 없었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윗선에서 정은임 아나운서를 좋게 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FM 영화음악의 마지막 방송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방송에 대해 얘기를 하며 울먹울먹 방송을 했고,
아마도 나를 포함한 수많은 애청자들도 같이 울먹울먹 방송을
들었을 것이다. 쉽게 그녀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그날이 기억에서만 생생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직도 집에
가면 당시의 방송을 녹음한 테이프들이 50여개가 있다. 당시에
영화음악과 진행자의 목소리로만 한편의 영화를 들려주던 코너가
있었다. 토요일인가 일요일에 했던 코너였는데, 그 날은 방송을
통째로 녹음을 했었다. CF가 끝나면 바로 녹음 버튼을 눌러
방송 전체를 녹음했는데, 양면 90분짜리 테이프(한면 45분)를
주로 썼던 나에게는 항상 끝에 5분 정도가 짤리는 안타까움도
같이 했던 기억이 난다.

교통사고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을 때, 한동안 잊고 지냈던
정은임 아나운서에 대한 추억과 FM 영화음악에 대한 추억이
물밀듯이 덮쳐왔지만, 그런 추억에 기분 좋아할 사이도 없이
'죽음'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많은 애정을 줬던 사람의 죽음은 '명복을 빕니다'로
끝내기에는 뭔가 너무 슬프다. 비록 그녀가 나란 존재를 아는 것도
아닌데 너무 슬프다. 사춘기 시절의 나를 이끌던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교통사고가 밉다. 교통사고가 싫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빌 뿐이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폐지없는 방송으로
하늘나라 영화음악을 진행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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