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의 펜]소중한 추억으로의 회귀 -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영화감상평

[Rock의 펜]소중한 추억으로의 회귀 - 영화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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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그가 떠난 세상은 온통 어두운 흑백이었다. 그녀에게 삶의 의미는 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밖에 없었기에 하늘과 산과 들의 색이 칙칙한 회색이 되어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아들이 도시에서 돌아올 때까지 그녀는 살아생전 그의 남편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학교 앞에서 주저앉아 있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단순한 슬픔이 그녀의 온 몸을 짓눌렀고, 매정하게만 느껴지는 아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흐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이것만큼 원초적으로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너무 복잡 현란해진 이 新세기를 살면서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사람이기에, 가슴에 아직 따뜻한 피가 흐르기에.

화면이 갑자기 밝은 천연색으로 바뀌면서 꼭 자오디 역할을 위해서 나타난 것만 같은 장지이의 해 맑은 표정들이 클로즈업된다. 영화는 어두운 흑백 현실을 지나 눈부신 추억의 시대로 흐른다. 첫 눈에 반한 사람, 그녀의 사랑은 단 번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설레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꼭 그가 먹어줬으면 하는 손길, 야무지게 준비하는 도시락, 그가 책을 읽는 소리를 듣기 위해 학교 주변을 서성거리는 발길. 그녀의 삶은 그 때부터 가장 아름답기 시작했다.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기다리는 순수한 눈빛을 가진 그 시절에.

공리처럼, 장지이 역시 장예모가 찾아낸 흙 속의 진주였다.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의 전통은 영화 곳곳에 장지이의 해맑은 미소와 더불어 묘한 어울림으로 비춰진다. 처음 사랑을 만난 눈빛, 설레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흔들리는 그 눈빛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단지 외모의 아름다움보다, 역시 배우는 캐릭터의 정서를 자기 것으로 녹여내 승화시키는 능력이 강할수록 아름다워 보인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지이란 배우가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여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배우의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흑백과 천연색으로 표현된 자오디의 삶을 오가며 서서히 본론으로 접어든다. 제목 자체가 영화를 함축했다면 딱 들어맞는 느낌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세대들이 바뀌면서 보수적인 중국 본토의 생활 양식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운구차로 고인의 시신을 모시자는 주변 사람들과 아들의 만류에도 자오디는 남편의 시신을 구식으로 모실 것을 다짐한다. 상여에 시신을 모시고 걸어서 마을까지 오겠다는 그녀의 고집에 아들인 '나'는 망설이지만 부모가 처음으로 함께 찍은 낡은 사진을 바라보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처음으로 자오디가 그를 만난 길, 가슴 설레며 그가 지나치길 기다렸던 길, 돌아오지 않는 그를 찾으러 눈보라를 헤치며 걸었던 길. 교사로 평생을 살았던 그가 자부심을 갖고 아이들을 배웅했던 그 길. 아무런 배경음악도 없이 눈보라치는 험한 길을 수많은 고인의 제자들이 교대로 상여를 둘러매고 걷는 투박한 흑백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 라인의 이 영화는 묵묵히 '집'이라고 표현된, 고향을 향하는 상여의 귀로 장면에서 많은 생각할 '꺼리'를 남겨 준다. 굳이 자오디가 구식 장례를 고집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삶을 떠나 보내며 추억이 살아 숨쉬는 그 길을 마지막으로 함께 걷기 위한 그녀의 성의와 고집은 다시 여러 갈래로 깊이 생각할 무언가를 남겼다. 스스로에게 꼭 한번 물어 봐야 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뭘 했으며, 또 뭘 하고 있지?'라는 질문도 함께.
한 가족이건만, 마치 이방인처럼 비춰지는 아들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이제 자오디의 마지막 소원이 되 버린, 아버지의 추억을 되 살려주기 위해서 결심한 낡은 교실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나서. 메아리처럼 '나'와 아버지의 낭랑한 음성이 오버랩되면서 스크린의 끝까지 남아 있었다.

중국의 5세대 감독의 선두주자로 불리 우는 장예모 감독은 유난히 중국적인 것을 고집한다. 단 한편도 그가 메거폰을 잡은 영화는 다른 사회를 비춘 것이 없다. 이런 그의 고집을 혹자들은 정부와 결탁하여 보수적인 국수영화만을 만든다고 비난하기도 한다지만 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장예모의 영화들에는 거짓 없는 인생들이 녹아 있다. 단지 그 배경이 그의 고향일 따름이고 아직 다른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자신이 없는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흑백과 천연색을 오가는 필름의 흐름은 한 여자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그 소박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 장치도 곳곳에 숨어있다. 사회의 변화와 세대의 교체에 따른 전통적인 것의 상실에 대해서도 꼬집고 있다. 비단 중국만 그렇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신세기의 세상 어디에나 통하는 감독의 충고였고, 쉽게 잊고 살았던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기억나게 만드는 장예모감독의 진실한 조언이 깃든 영화였다. "집으로 가는 길".

결국 돌아가게 될 우리 모두의 길은 어떤 것일까? 영화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추억을 곱씹으며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옆의 그 사람에게 한번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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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김태동  
정말 멋진 리뷰 입니다...저도 장예모 팬이거든요.물론 이영화도 너무 좋아하구요.
1 김태동  
저도 제 홈페이지에 어줍쟎게 리뷰해봤었는데 ..님 처럼 멋지게는 안나오더라구요.암튼 멋진 영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