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레이져, 핀헤드, 지옥의 수도사

영화감상평

힐레이져, 핀헤드, 지옥의 수도사

1 최석진 4 14026 84
공포영화들, 특히 슬래셔 장르의 영화를 보면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들이 있다. 이들의 카리스마는 인간적인 호소력을 발휘한다기보다 관객들에게 위압적이거나 복종, 굴복의 맥락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프레디 크루거나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제이슨이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예다.

이들의 명성(?)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캐릭터가 가진 매력 하나로 시리즈가 유지된 작품이 있다. 스티븐 킹이 "(그에게서)호러 장르의 미래를 보았다"고 가리켜 말한 사람, 클라이브 바커가 창조해 낸 '헬 레이저'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최근 4편까지 나왔고, 5편이 캐스팅 완료된 상황에서 제작 중이다.

클라이브 바커는 1952년에 영국에서 태어나 공포소설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쓴 작품 중에 "The Hellbound Heart"이란 소설이 영화 '헬레이저' 시리즈의 원안이다. 클라이브 바커는 '헬레이저' 1편을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하였으며, 2편과 3편에서는 각본과 제작을 담당했다.

1987년에 나온 '헬레이저' 1편은 이 작품의 메인 캐릭터인 핀헤드(pinhead)의 매력이 잘 드러난다. 정육면체로 이루어진 퍼즐 박스를 사람이 움직이면 지옥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지옥의 사자(使者)가 등장한다. 그들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의상을 입고 있으며, 뒤틀리며 상처입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들 중의 우두머리가 바로 핀헤드다. 퍼즐박스를 움직인 자, 곧 지옥에 의해 선택된 자에게 그곳의 고통을 전달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원래 이들도 인간이었으나 지옥에 의해 사자로 선택받았다는 점이 '헬 바운드(헬 레이저 2편)'에서 밝혀지기도 한다.

핀헤드가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이 "고통(suffering)"이다. 일단 그 자신의 외모부터도 얼굴에 핀을 여기저기 꽂았으며, 얼굴은 핀을 꽂은 것에 따라 여기저기 갈라져 있는 참혹한 형상이다. 여기에 저음의 목소리로 달콤한 고통을 되뇌는 그의 모습은 정말 순수한 고통 그 자체를 숭배하는 자의 인상을 강렬하게 풍긴다.

핀헤드는 갈고리가 달린 쇠사슬을 자신의 징벌도구로 사용한다. 이것은 핀헤드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입구에서 나오는 것이다. 쇠사슬은 퍼즐 박스를 움직인 자의 몸을 곳곳에 꿰어 허공에 매달아 놓는다. 이 피해자는 탐욕과 욕망의 호기심으로 지옥의 문을 연 댓가로 마치 순교자처럼 갈고리에 꿰이고 사슬에 묶여 공중에 매달린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핀헤드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가 아주 철학적이며 지적으로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핀헤드는 자신의 희생자들에게 고통은 물론, 신과 악마, 선과 악, 인간의 꿈과 그 안에 숨겨진 욕망에 관해 간결하지만 매우 현학적인 대사를 내뱉는다. 이것은 다소 유치하기도 하지만 핀헤드의 진중함과 어울려 상당한 카리스마를 빚어낸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팬들은 그를 가리켜 "지옥의 수도사"라 부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핀헤드는 그로테스크한 외모, 매력적으로 들리는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현학적인 대사로 자신의 매력과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매력은 분명히 슬래셔 영역의 캐릭터들과 다르다. 핀헤드의 권위와 카리스마는 그 자신이 간직한 모습 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복종과 굴복의 폭력적인 권위를 강조하는 제이슨이나 프레디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이슨과 프레디 사이에도 다른 점이 많기는 하지만.

3편에서 핀헤드는 지옥의 수도사가 되기 전의 원래 자아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연출이 깔끔했다면 이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 수작이 되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탓에 그저 자아의 분열을 내러티브 상에서 사건 해결의 계기로만 사용하고 있다. 다분히 기계적으로 말이다.

이러한 3편의 태도는 기존 1, 2편에서 보였던, 선과 악의 경계에서 다소 모호한 회색적 느낌의 핀헤드를 단순한 악의 선도자로 설정하는 관점의 차이를 보인다. 4편 역시 퍼즐박스를 만든 머천트 일가와 지옥 사이에 벌어진 수세기 동안의 싸움으로 설정하고, 그 상징으로 핀헤드를 놓고 있는데 이는 3편의 태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인간이 퍼즐 박스를 돌리는 것은 그 자신 내부에 자리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욕망의 힘 때문이다. 인간은 때로 알 수 없는 욕망의 대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게 '헬 레이저' 1, 2편의 명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핀헤드는 그러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존재이자, 그에 대한 응징자의 역할을 하는 존재다. 오늘도 핀헤드는 그러한 인간들에게 달콤한 고통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탐욕스런 욕망을 징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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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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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이저5편 작년에 나왔는데 (졸작이었음)
1 리버스  
지금 6편 제작중임당
1 아문  
5편정말 재미 없었슴니다.(5편만 봤는데^^;;)...그리구 핀헤드 진짜 약간 다른 멋이 있긴 해요..다른 악마나호러캐릭터 보다는....
1 김윤호  
감동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