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의 펜]Made in Japanimation

영화감상평

[Rock의 펜]Made in Japanimation

G 樂.cinema 6 12065 54
MADE IN JAPANIMATION - 재패니메이션에서 만들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보충수업을 마치고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고 있었다. 에어컨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변변찮은 선풍기 한 대도 없었지만 찌는 더위를 충분히 잊게 할 정도로 만화는 재미있었다. 한참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만화방 앞으로 급정거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곧 얼굴이 붉게 상기된 친구의 부모님이 들이 닥쳤다. 보충수업 마치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친구를 격려(?)차 오셨다가 만화방에 있을 거란 비겁한 녀석들의 제보에 격분하시고 우리들을 체포하러 오신 길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그 친구 집에 끌려가서 된통 호되게 혼이 났고 이후에 오랫동안 그 부모님에게 친구를 만화방으로 꼬인 나쁜 친구들로 인식되었다.
  일본은 지하철이나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넥타이를 맨 젊은 샐러리맨들이 만화를 읽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풍속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사회 현상이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시점에서 그것은 일본과 우리의 분명한 차이점이다.
  바람직한 생산활동이란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 산업분야가 서로 유기적으로 활성화되고 치열한 경쟁력을 쌓아서 대외적으로 상품성이 훌륭한 제화를 생산, 판매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은 90년대 초반 국가 기반 산업인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분야가 흔들리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은 적이 있었다. 물론 이후에 일본이 경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의 두 가지 분야가 다시 활기를 띤 것이었지만 어려웠던 사회분위기를 밝게 바꿔준 공로자는 따로 있었는데, 그게 바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인들은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 같은 당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만든 만화영화를 보면서 우울한 기분을 달랬고 「슬램덩크」 주인공들의 희망과 투지에 감동하며 각자가 가진 희망의 끈을 잃지 않았다. 그런 사회 현상은 급격히 올라가던 실업률을 하락하게 했고 범죄 발생률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단순히 애니메이션 산업이 일본 사회의 분위기 전환에만 일조를 기했던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전 일본에서 20만 명 이상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고 「드래곤볼」, 「슬램덩크」같은 작품들은 원작 만화와 이를 영화로 만든 애니메이션까지 전 세계에 수출되어 막대한 이득을 남겼다. 또한 작품이 성공해서 유명세를 탄 캐릭터들은 어떠했나?  세계인에게 알려진 유명 캐릭터를 그냥 만화 주인공으로 두고 볼 그들이 아니었다. 유명 만화 캐릭터는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상품으로 재창조되어서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벌어 들였다. 포켓몬스터, 토토로, 헬로키티, 개구쟁이 짱구 같은 캐릭터들은 이미 너무나 친숙하게 우리들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이전 세대와의 차별화가 시작되었다는 이른바 386세대들은 어린 시절에 마징가 제트나 우주소년 아톰 같은 만화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들은 악의 무리에 대항하여 항상 승리하며 정의는 이긴다는 불변의 법칙을 가르쳤다.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386세대들은 그들이 하늘을 날 때 열광했고 적을 무찌르는 것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키워 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년 시절, 우리들을 들뜨게 했던 그 영웅들은 모두가 일본제였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일본인들의 사무라이 정신까지 깃들어 있는 일본인들의 캐릭터였던 것이다. 어디 386세대 뿐 인가? 철완 아톰을 필두로 마징가제트, 그랜다이저, 독수리 오형제, 전함 V호, 울트라맨, 기동전사 건담, 황금박쥐, 말괄량이 캔디, 알프스소녀 하이디, 플란더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타이거마스크, 마린보이, 은하철도 999호, 미래소년 코난, 정글왕자 레오, 세일러문, 드래곤볼, 피구왕 통키, 슬램덩크, 개구쟁이 짱구, 날아라 호빵맨… 그리고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포켓몬스터까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비단 우리나라뿐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의 감성을 지배하며 성장해왔다. 중국의 고대소설 서유기를 모토로 탄생한 아키라 토리야마의 「드래곤볼」은 일억 부 이상 출판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으며 전 유럽과 아시아, 농구의 본토인 미국의 청소년들까지 열광하게 했던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는 작품이 마무리 된지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감동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훌륭한 작품들로 무장한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은 벌써 오래 전에 월트디즈니를 넘어서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고, 일본(Japan)과 애니메이션(Animation)이란 두 단어가 합성된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은 하나의 독립된 명사로 통용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앞서는 일본이지만 애니메이션 분야에서의 일본은 이제 오랫동안 넘볼 수 없는 높은 장벽이 된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그런 힘이 솟아난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애니메이션(Animation)이란 영화 장르를 만화영화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분명히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만화영화가 만화에 색을 입혀서 애니메이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라면 애니메이션은 한 장 한 장 정지된 그림이나 인형 같은 사물을 애니메이션 카메라로 촬영해서 움직이는 화상을 만드는 총괄적인 작업을 일컫는다. 그럼으로 만화영화는 애니메이션의 한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일본은 만화로 만들어진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이 일상화되어 있는데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혼돈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단지 사람들을 혼돈하게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명히 다른 두 종류의 예술분야가 일본에서는 쉽게 융합되거나 또는 분열하는 상호 호환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대개 혹평을 면치 못하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본이 지닌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밀착성은 남다른 힘이 아닐 수 없다. 헐리우드의 애니메이션 메카인 월트디즈니社가 만들어 온 세계 명작 만화영화들은 누구나 제목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고전(古典)들이지만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대게 일본인들이 그린 만화가 원작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항상 희극적인 디즈니의 작품보다 더 사실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에게만 만족스러운 디즈니를 초월해서 남녀노소가 모두 볼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가진 것이다. 원작을 보완하면서 때론 더 훌륭하게 해석하는 매끄러운 호환성과 이를 뒷받침 해주는 기술력, 그리고 열정적인 사람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간단해 보이는 몇 가지의 성공요인을 갖기 위해서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고뇌하고 때로는 먼길을 돌아 왔을 지도 모른다.
  지금 헐리우드를 움직이는 가장 대중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스티븐 스필버그가 물망에 오른다. 그가 영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두 사람의 영향을 깊게 받았기 때문이라는데, 한 사람은 1999년에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감독이고 또 한 사람은 1998년에 타계한 구로자와 아키라감독이라고 한다. 배타적인 헐리우드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구로자와 아키라는 스필버그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영화인들의 정신적 스승임에 분명했다. 그가 50년대에 만들었던 「7인의 사무라이」가 미국으로 건너와 「황야의 7인」으로 옷만 갈아  입었던 것처럼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와 정신은 전 세계 영화인들의 모티브가 되어 왔다. 현대 일본영화계가 자신들을 대변할 대표적인 인물로 구로자와 아키라를 꼽는 것이 당연하다면, 같은 시대를 풍미하면서 또한 일본을 대표한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데스카 오자무가 꼽힌다. 데스카 오자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현재에 이르도록 만든 가장 위대한 애니메이션 작가이자 만화가였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우상이었다. 1940년대 중반에 1컷 만화가로 시작된 그의 만화 인생은 50년대 「정글대제」(국내에는 정글의 왕자 레오로 소개됨)를 발표하면서 일본이라는 폐쇄된 공동체 사회를 비스듬한 각도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작가라는 인식을 심었고, 곧 「철완 아톰」을 창조해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악당들을 무찌르는 귀여운 로봇 소년 아톰은 전쟁에서 참패한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청사진을 그리게 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긴다는 아톰의 철학은 마이크로(Micro)로 대변되는 일본의 전자산업으로 이어졌고, 이전까지 일본을 지배하던 백설공주와 미키마우스 같은 미국의 캐릭터를 누른 최초의 자국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웠다. 21세기가 되도록 수 십 번에 걸쳐서 리메이크된 「철완 아톰」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는 일본인들의 우상이자 세계 어린이들의 영원한 우상이 되었다. 실제로 당시 어려웠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아톰을 보면서 힘을 낼 것을 다짐했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데스카 오자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만든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징적인 업적 외에도 데스카 오자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최초로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인물이었으며 만화 영화를 넘어선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한 기법과 기술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모두의 웃음을 찾게 해준「철완 아톰」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전후 일본 사회의 비정한 면을 혹독하게 그려냈던 「굶주린 者의 블루스」같은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이런 면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인간 삶의 본질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하게 했으며, 만화란 존재를 단지 소일거리에서 진지한 철학을 담을 수 있는 분야로 변모시켰다. "만화는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창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화는 자유롭게 작가의 의지대로 만들어 져야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로도 창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권침해이다. 만화는 절대로 인간의 기본권리를 앗아가는 형태를 창작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그의 창작의 철학에서 나타나 듯이 데스카 오사무는 철저한 박애주의자였다. 그의 투철한 장인정신과 박애정신은 훗날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탱하는 굵은 기둥이 됨과 동시에 후배 작가들에게는 교과서가 되었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기 위암이란 판정을 받고도 작업 중이던 3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작업을 늦추지 않았던 데스카 오사무는 아쉽게도 그 작품들을 미완으로 남긴 체 1989년 눈을 감았지만 살아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 만화의 천황이란 존경과 추앙을 받고있다.
  사실,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란 단어는 '저속한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란 뜻으로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일본을 경계하는 의도로 만들어 졌지만 이제는 일본이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대국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 버렸다. 물론 일본의 애니메이션에는 부정적인 면모도 있다. 인육(人肉)을 토막내고 선혈이 낭자한 하드고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캐릭터, 포르노로도 세계를 정복하는 애니메이션 포르노… 애니메이션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일본이 양산해낸 어두운 면모들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점들은 일본 애니메이터들에게 그다지 걱정거리가 될 수 없다. 저질 삼류 폭력물과 포르노 애니메이션들은 나름대로의 매니아들에게만 인기가 있을 뿐 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세계의 애니메이션 팬들을 열광시키는 그들의 작품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몇 가지 요인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고, 그 특별한 마음과 기술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안은 결코 사람들이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숲의 정령 토토로는 작은 씨앗 하나가 땅을 뚫고 나와 파란 줄기와 잎을 가진 나무가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그 파란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준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코난과 라나 역시 마찬가지다.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인더스트리아의 최후와 남겨진 사람들이 돌아가는 지상낙원, 황금빛 밀밭과 푸른 숲이 있는 섬 하이하바로의 항해는 휘파람이 절로 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도깨비공주」는 어떤가? 숲과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당당히 맞서지 않았는가? 앞에 열거한 작품들을 창조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작가이다.「알프스소녀 하이디」,「엄마 찾아 삼만리」, 「루팡 3세」,「명탐정 홈즈」,「빨강머리 앤」,「플란더스의 개」등  세계 명작들을 특유의 낙천적인 색깔로 각색한 초기의 TV용 애니메이션에서부터 「특급 마녀 우편배달부」,「천공의 섬 라퓨타」,「붉은 돼지」,「너구리 대작전」,「이웃의 토토로」,「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깨비공주 - 국내에는 원령공주라고 알려짐」등과 같은 잊지 못할 극장용 애니메이션 대작들까지 한 번 감상하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에는 단지 낭만적인 그림이 아름답다는 이유말고도 진하게 배어 있는 철학이 있다. 정복자에 의해서 참혹하게 황폐해진 땅과 하늘, 전쟁이 몰고 올 잔혹한 비극의 배경이 그려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미래소년 코난」,「천공의 섬 라퓨타」등과 같은 작품에 담겨 있는 반전(反戰), 반핵(反核), 반독재(反獨裁)의 메시지, 그리고 탄성을 자아내는 작품 속의 푸른 숲과 하늘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가 만든 모든 작품에서 외치는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산업화, 기계화되면서 오염된 자연 환경을 푸르고 상쾌한 자연으로 돌려놓고 싶은, 그래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세상을 꿈꾸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간절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아시타카는 좋지만 숲을 해치는 인간들이 정말 싫어."
  "언젠가 숲도, 인간도, 숲의 신들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숲으로 사라지는 도깨비공주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는 아시타카의 마지막 대사였다. 만화 영화 「도깨비공주」를 본 1천만 명의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는 길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던진 인상 깊은 마지막 메시지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깨고 나면 아쉬운 좋은 꿈처럼 가슴속 한 언저리에 담을 수 있는 희망이란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공통적으로 담겨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찬 기라성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서로 다른 개성과 특징으로 작품을 그려내지만 보는 사람들을 어떤 것으로 감동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너무나 단순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일을 기다리는 희망, 어두운 현실이지만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희망을 지켜가기 위한 노력… 사랑과 우정, 봉사와 희생정신이 모두 녹아들어 모두의 희망을 지키는 모습이 그들의 작품에 담겨 있다.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주제와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세상이다. 좀 더 새롭고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그래서 "엽기"란 단어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될 정도로 사람들은 뻔한 이야기에 실증이 나고 무감각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도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간단한 주제와 누구나 알고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 능력, 단순한 것을 감동으로 바꾸는 그 감각의 힘이야말로 진정 일본 애니메이션이 가진 특별한 것이 아닐까?
  아기공룡 둘리나 용가리로는 포켓몬스터에 대항할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더욱 냉정한 현실은 세계를 지배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당수가 한국 사람들 손에 의해서 선이 그려지고 색이 입혀진다는 사실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올라 선지가 이미 오래이다. 하지만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의 하청을 받아 그들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현지 공장정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흘러 가야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 작품들을 접할 때마다 샘 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유를 생각해본다. 데스카 오사무나 미야자키 하야오같은 진정한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없어서일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철학이 담겨져 있지 않아서? 나름대로의 원인분석이 머리 속에 빙빙 돌지만 항상 마지막에 떠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만화를 봤단 이유로 죄인 취급을 당했던 어린 나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현실로 옮겨서 차림새나 말투, 정신세계까지 모방하는 "애니메이션 오따꾸"들이 즐비한 일본과 어디 처음부터 대적할 만한 상대가 되었을까? 아직도 만화를 시시한 소일거리로만 몰아세우는 우리 사회의 수준으로?
  이제 세기가 바뀌면서 우리나라의 대중 문화가 상당히 변모하리란 기대를 해본다. 단지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짧은 호흡의 창작이 아닌 긴 여운의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깊이 있는 창작자들의 걸음걸이와 더불어서 진실한 감동으로 우러나오는 대중들의 편견 없는 박수까지. 언젠가 재패니메이션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믿을 수 있는 문화 브랜드를 우리들도 가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끝으로 가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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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방창현  
좋은 글이네요. 왜 재패니메이션을 알지못하는 사람은 동심이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1 한하늘  
이제 미국 애니메이션의 본격화 슈렉과 파이널판타지
1 한하늘  
어느 길이 성공하는지에 따라 많은 방향이 좌우될것같네요
1 한하늘  
먼저 미국 애니가 핵주먹을 날렸으니 우찌 될까
1 김민철  
  -^^-
1 김윤호  
감동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