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아름답다...『박하사탕』 관전기

영화감상평

삶은 아름답다...『박하사탕』 관전기

「삶은 아름답다」 - 박하사탕 觀戰記

시대의 흐름이 급변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관점의 차이나 해석력 또한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이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스크린의 일대 혁명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C.G(Computer graphic)기술의 발전이다. 이런 현상은 「보는」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며, 관객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실사와 같은 디지털 화면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보여주는 즐거움을 극대화한 블록버스터 영화는 세계를 지배할 것이 분명하지만 이와 더불어 「생각하며 봐야 하는 영화」에 대한 외면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세기말의 시대를 대변했던 대가들의 작품들이 외면 당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돈이 투자되어야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자연히 자본주의 법칙에 부합하게 된다. 관객의 외면을 당하면 메가폰을 들었던 감독의 도태와 투자가의 몰락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자본에 구속받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아쉬움에 대한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물론 작가주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 한해서겠지만…
한국이란 나라는 영화라는 갈래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후진국에 속했다. 자본이 풍부해지면서 개발도상국 수준이 되었다면 조금 과장된 평가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작가들의 부족과 투자의지 결여, 헐리우드産 블록버스터에 대한 열렬한 지지(관객들의 냉정한 선택이라고 표현하기 보단 줏대 없는 관객의 우매한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같은 여러 가지 악조건들이 우리의 영화 만들기나 영화 보기의 경쟁력을 나약하게 만들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국영화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달라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점차적으로 깊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등장하였고 또한 과감한 자본의 투자로 단지 보는 즐거움에 여념에 없는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준에 충분히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 세기를 넘어오면서 세계의 공감적인 찬사를 받는 작품들이 속속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그 중에서도 박하사탕은 이미 개봉 전부터 심상치 않은 "바람"을 예고했다. 영화비평을 업으로 삼는 칼날 같은 비평가들의 호평이 연일 매거진에 채워졌고 시사회의 반응도 엄청나게 뜨거웠다. 고교 국어선생에서 소설가로 그리고 다시 영화감독으로 삶의 모습을 변신했던 이창동감독은 아마도 이 영화를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제목도 觀戰이라 정했다) 거짓 없는 눈으로 삶을 바라 볼 수 있는 용기, 우리는 스스로 그런 눈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
김영호(영화의 주인공)는 암울한 한국의 현대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독재 세력들이 만든 사회의 질서, 강요된 공감에 휩쓸린 체로 어두운 80년대와 90년대를 가슴아프게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잘못된 현대사가 만들어 낸 억압과 강요에 의해서 불행을 안고 살았지만 소중한 기억으로의 출발은 순수하게 주관적이었다. 그의 벅찬 선택이 영화의 첫 번째 단락을 채운다. 「야유회」란 제목이 붙은 첫 번째 단락에서 김영호는 지친 모습으로 오래된 친구들의 야유회에 나타난다. 술에 취한 듯 아니면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나 어떻해」란 노래를 울부짖으며 야유회를 망친 그는 곧 기차가 다니는 철교 위에 올라 절망의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삶의 마지막 소망을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필름은 곧 김영호의 과거를 향해 출발하고 야유회-사진기-삶은 아름답다-고백-기도-면회-소풍이란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20년간 김영호의 삶을 보여준다. 독특한 영화의 구조는 먼저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가는 시점의 변화에서 느껴지는데 하나의 의문점을 던져 놓고 인과응보처럼 다음 단락에서 필연적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영화 구조는 김영호의 삶을 역설적으로 그리기에 매우 어울리는 선택이었으며 마지막 두 단락에서의 충격적 감동을 이끌어 내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관객들은 매우 혼란스러운 영화의 출발에서 시작해 마치 김영호를 덮친 기차에 올라탄 여행객이 된 기분으로 과거의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에 실패한 볼품없는 남자 김영호는 권총을 구해 절망적 삶을 마감하려 하지만 젊은 시절 첫사랑 윤순임의 남편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로 인해 몇 일 동안의 삶을 연장하기로 한다. 불치병에 걸린 윤순임의 마지막 부탁(김영호를 보고 싶다는)을 위한 배려가 이유였지만 이미 혼수 상태에 빠져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에게 김영호가 줄 수 있었던 것은 유리병에 든 박하사탕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90년대에서 80년대 말로 넘어가는 김영호의 삶은 김영호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을 파산으로 이끈 동업자와의 사업과 애정 없는 결혼이 빚은 아내의 외도, 그리고 의미 없는 일상의 연속.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남자에 대한 의문은 곧 다음 단락에서 김영호의 아귀 같은 경찰시절을 불러내는데 고문과 인권탄압의 일선에 선 김영호의 다른 이면이 보여진다. 어두웠던 시절의 사회모습, 밝혀지진 않았지만 분명히 행하여졌던 부끄러운 우리 과거가 감독이 의도한대로 섬뜩하게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가중되는 첫사랑의 기억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마치 흐릿한 사진이 차츰 뚜렷하게 보이듯이 김영호의 그리움과 애틋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검거를 위해 군산으로 내려가 우연히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첫사랑에 대한 물음에 울먹이며 대답하는 이름 윤순임…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묻는 질문은 김영호가 그토록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첫사랑과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연인데 그 답은 김영호의 순수했던 기억이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되어버려야 했던 필연적인 사건으로 귀결된다. 80년 5월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아픈 멍에들 속으로… 군인이었던 김영호는 자신을 찾아왔다가 면회를 거절당하고 돌아가는 윤순임을 멀리서 바라보며 어디론가 파병되는데 그 곳은 광주였고 그들의 임무는 시민군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김영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수로 어린 여학생을 죽이게 된다. 오히려 피해자가 된 것처럼 서럽게 오열하는 김영호의 모습은 잘못된 역사의 선택이 낳은 우리들의 비극적인 모습이었고 영화 속 인물 김영호가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의 해답이었다. 순수한 첫사랑을 버리고 죄인이 된 것처럼 자신의 삶을 비켜서 살았던 김영호는 결국「소풍」으로 이름지어진 마지막 단락으로 돌아온다. 첫 번째 단락 「야유회」에서 자신이 삶을 마감했던 그 철교 아래로. 신기하게도 한번도 와보지 않은 곳인데 잘 아는 곳처럼 느껴진다는 젊은 김영호의 말에 윤순임은 답한다. 그건 꿈에서 본 것이라고, 영호씨의 그 꿈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영화는 결국 죽음을 선택한 김영호의 소망대로 순수한 시절로 돌아와 끝을 맺는다. 더벅머리 처녀 총각들의 「나 어떻해」합창소리와 더불어 다시 어디론가 향하는 기차소리와 함께.
이창동감독은 지명도 있는 배우의 캐스팅을 처음부터 거부했다고 한다. 그 시도는 리얼리즘의 효과를 배가했고 설경구라는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 냈다. 설경구가 아닌 다른 배우가 김영호란 역을 연기했다면 박하사탕이라는 영화가 이 만큼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을까? 쉽사리 긍정할 수 없는 질문이다. 설경구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중저음의 소리처럼 무겁고도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전율할 정도로 완벽하게 김영호를 연기해냈다. 기자들은 앞다퉈 설경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고 진정한 연기자가 스타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는데 이 또한 박하사탕이 만들어낸 현상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기록이라고 하고 싶다) 개봉관에서 한번 막 내린 작품이 다시 개봉되어 장기 상영했다는 점인데 외화, 방화를 통틀어 처음 있는 진귀한 현상이었다. 이는 서두에 밝혔듯이 작품성 있는 영화와 흥행에 관한 고민에 대한 시원한 해답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보는 영화를 찾는 관객들 사이에서 보다 진지하게 영화를 만나는 관객들을 찾아낸, 그들을 스크린 앞으로 이끌어낸 박하사탕의 통쾌한 승리라고 또한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박하사탕을 처음 본 시골의 개봉관은 1회 상영을 더 하기 위해서 영화를 무려 10여분 정도 가위질했다. 나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를 핑계로 틈나는 대로 다른 도시의 개봉관을 찾아 십여 차례 이상 극장 스크린으로 박하사탕을 만났다. 「면회」에서 「소풍」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매번 화면이 흐릿하게 보였다. 자리를 메운 여러 사람들이 나처럼 눈물을 참지 못하는 걸 봤다. 영화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것이지만 박하사탕이란 영화는 더욱 특별하게 매력적이다. 한국사람이라면, 특히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한국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가슴 한 부분에 첫사랑의 추억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평론이란 갈래로 박하사탕을 보기에는 아직 내 삶이 너무나 가벼운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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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10 르노  
영화 후반부 부터 이러면 않되는뎅. 하구. 가슴 절이며 봤던 기역이 지금두 생생 합니다.
G Rock  
1000번째 코멘트, 내가 처음 디빅랜드에 와서 남긴 글에 다시 남깁니다...1000개의 덫글이라...작은 기록의 순간이군.....
1 김상기  
"박하사탕"...새벽 혼자 영화보는 내내 울었더랬습니다..뭔지모를 "아련한" 그런거 때문에..영화보면서 다 큰넘이 그렇게 소리죽여 눈물흘려보긴 첨이더군요..이창동 감독..소설가답게 영화를 참 짜임세있게 만드는군요.
1 김민수  
정말 감동ㅠ.ㅠ
1 배재훈  
아련한...
 갖가지 소품들이 전하는 이미지들...
 그리고 그것들이 대표하는 우리의 과거들...
 아직 내 또래들에게 까지는 현실이었던 과거들...
 언젠가는 잊혀지고, 기록된 영상화된 죽은 기억들이...
 되어버릴 아련하고 알싸하고, 두렵고,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기도 했던 과거와 추억에 대한 이야기들...
1 김민철  
  -^^-
1 홍석풍  
  초록 물고기부터 보세요
1 최진원  
  깊은 뜻이나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거 모르겠구요.
그냥 봤습니다.티비로...
근데요.재미있더구니요.
왜 재미가 있는진 모르겠군요.
군대 갔다 와서 그런가...
1 김윤호  
감동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S 이현준  
잘쓴 감상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