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님의 선시(禪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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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님의 선시(禪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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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님의 선시(禪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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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에 옷이 없어

歲寒衣不到戲作

 

해는 바뀌어도 옷은 안 오니

몸 하나도 주체하기 어려운 줄 비로소 알았네.

이런 마음 아는 이 많지 않거니

범숙은 요사이 그 어떠한지.

歲新無舊着

自覺一身多

少人知此意

范叔近如何

 

 

새로 갬

新晴

 

새 소리 꿈 저쪽에 차고

꽃 내음은 선(禪)에 들어와 스러진다.

선과 꿈 다시 잊은 곳

창 앞의 한 그루 벽오동나무!

禽聲隔夢冷

花氣入禪無

禪夢復相忘

窓前一碧梧

 

 

차가운 비가 내리는 연말

暮歲寒雨有感

 

차가운 비 하늘 가를 스치고 지나는데

희어진 귀밑머리 해가 저물고……

나날이 자라는 시름 키보다 높아

온몸에 당기는 것 오직 술뿐!

날씨는 차가운데 술은 안 오고

돌아가 이소(離騷)를 읽고 있자니

사람들은 왜 못 마땅히 여기는지

계율을 안 지킨다 나를 탓하네.

눈을 둘러 인간 세계 내려다보면

땅이란 땅 바다로 또 바뀌느니!

寒雨過天末

鬢邊暮歲生

愁高百骸低

全身但酒情

歲寒酒不到

歸讀離騷經

傍人亦何怪

罪我違淨行

縱目觀下界

盡地又滄溟

 

 

수행자

雲水

 

흰 구름은 끊어져 법의(法衣)와 같고

푸른 물은 활보다도 더욱 짧아라.

이곳 떠나 어디로 자꾸 감이랴.

유연히 그 무궁함 바라보느니!

白雲斷似衲

綠水矮於弓

此外一何去

悠然看不窮

 

 

홀로 읊다

獨唫

 

산중은 차고 해도 기우는데

아득한 이 생각 누구와 함께 하랴.

잠시 이상하게 우는 새 있어서

한암고목(寒巖枯木)까지는 안 되고 마네.

山寒天亦盡

渺渺與誰同

乍有奇鳴鳥

枯禪全未空

 

 

상큼한 추위

淸寒

 

달을 기다리며 매화는 학인 양 야위고

오동에 의지하니 사람 또한 봉황임을!

온 밤내 추위는 안 그치고

눈은 산을 이루네.

待月梅何鶴

依梧人亦鳳

通宵寒不盡

遶屋雪爲峰

 

 

여행 중의 회포

旅懷

 

한 해가 다 가도록 돌아가지 못한 몸은

봄이 되자 다시 먼 곳을 떠돈다.

꽃을 보고 무심하지는 못해

좋은 곳 있으면 들러서 가곤 한다.

竟歲未歸家

逢春爲遠客

看花不可空

山下奇幽跡

 

 

즐거움

自樂

 

철이 마침 좋은지라 막걸리 기울이고

이 좋은 밤 시 한 수 없을 수 있는가.

나와 세상 아울러 잊었어도

계절은 저절로 돌고 도느니.

佳辰傾白酒

良夜賦新詩

身世兩忘去

人間自四時

 

 

 

병들어 시름하며

病愁

 

푸른 산 그 품속에 오두막집 한 채 있어

젊은 몸 어이하여 병은 이리 많은 건지.

시름이 끝없는 대낮

가을꽃도 피누나.

靑山一白屋

人少病何多

浩愁不可極

白日生秋花

 

 

뜻 맞는 벗과 함께

與映湖和尙訪乳雲和尙乘夜同歸

 

만나니 우리들 뜻이 맞아서

어느덧 해 저물고 밤이 되었네.

눈 속에 주고받은 심상한 말도

내 마음 비쳤었네 밝히 물처럼.

相見甚相愛

無端到夜來

等閑雪裡語

如水照靈臺

 

 

영호 화상의 시에 부쳐

次映湖和尙

 

시(詩)와 술 일삼으며 병이 많은 이 몸

문장을 벗하여서 그대도 늙어…….

눈바람 치는 날에 편지 받으니

가슴에 뭉클 맺히는 이 정!

詩酒人多病

文章客亦老

風雲來書字

兩情亂不少

 

 

병든 벗을 생각하며

乳雲和尙病臥甚悶又添鄕愁

 

친구는 이제 병들어 눕고

기러기 편에 편지도 없어……

이 시름 어찌 끝이 있으랴.

등불 밑에 시시로 늙어 가느니!

故人今臥病

春雁又無書

此愁何萬斛

燈下千鬢疎

 

 

고향 생각

思鄕

 

천리라 머나먼 고향을 떠나

글에 묻혀 떠돌기 설흔 해여라.

마음이야 젊어도 이미 늙어서

눈바람 속 하늘가에 다시 이르다.

江國一千里

文章三十年

心長髮已短

風雪到天邊

 

 

백화암을 찾아서

訪白華庵

 

그윽한 오솔길을 봄날에 찾아드니

굽은 숲을 따라 풍광(風光)이 새로워라.

길도 끊어진 여기 흥은 일어서

바라보며 마음껏 시를 읊조리다.

春日尋幽逕

風光散四林

窮途孤興發

一望極淸唫

 

 

고기잡이의 뱃노래

巴陵漁父棹歌

 

배가 가니 하늘은 물과 같은데

그 더욱 맑은 노래 들려 올 줄야!

가락은 달빛 속을 누벼 고요하고

소리는 밤의 적막 헤쳐 흐르네.

지음(知音)이 그 누군지 백로에 묻고

도롱이에 가득 싸인 고향 달리는 꿈.

다시 창랑(滄浪)의 노래 들려 오기에

관끈 어루만지며 옛 산천 그리느니……

舟行天似水

此外接淸歌

韻入月明寂

響飛夜靜多

知音問白鷺

歸夢滿晴蓑

更聽滄浪曲

撫纓憶舊波

 

 

송청암에게

贈宋淸巖

 

만나니 놀라운 중 반갑기도 반가와

함께 가을 산을 찾아들었네.

해 뜨면 구름의 흰 빛을 보고

밤에는 달빛 속을 거닐기도 하고.

돌멩이야 본래 말이 없어도

오래 된 오동에선 맑은 소리 나는 것.

이 세상이 곧 낙토(樂土)이거니

구태여 신선 되기 바라지 말게.

- 이때 송(宋)이 신선 되기를 원했다.

相逢輒驚喜

共作秋山行

日出看雲白

夜來步月明

小石本無語

古桐自有聲

大塊一樂土

不必求三淸

- 時宋求仙

 

 

학명 선사에게

養眞庵臨發贈鶴鳴禪伯

 

이 세상 밖에 천당은 없고

인간에게는 지옥도 있는 것.

백척간두에 서 있는 그뿐

왜 한 걸음 내딛지 않는가.

世外天堂少

人間地獄多

佇立竿頭勢

不進一步何

 

일에는 어려움 많고

사람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것.

본래 세상 일은 이와 같거니

남아라면 얽매임 없이 뜻대로 살리.

臨事多艱劇

逢人足別離

世道固如此

男兒任所之

 

 

양진암 풍경

養眞庵

 

깊기도 깊은 별유천지라

고요하여 집도 없는 듯.

꽃이 지는데 사람은 꿈속 같고

옛 종(鍾)을 석양이 비춘다.

深深別有地

寂寂若無家

花落人如夢

古鍾白日斜

 

 

이별의 시

贈別

 

천하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네만

옥중에서 헤어짐도 또한 기이해!

옛 맹세 아직도 식지 않았거든

국화와의 기약을 저버리지 말게.

天下逢未易

獄中別亦奇

養盟猶未冷

莫負黃花期

 

 

어느 학생에게

寄學生

 

치사스럽겐 살아도 치욕인데

옥으로 부서지면 죽어도 보람임을!

칼 들어 하늘 가린 가시나무를 베고

길이 휘파람 부니 달빛 밝구나.

瓦全生爲恥

玉碎死亦佳

滿天斬荊棘

長嘯月明多

 

 

비온 뒤의 범어사

梵魚寺雨後述懷

 

하늘 끝 흘러오니 봄비 가늘고

옛절에 매화의 꿈은 차갑다.

홀로 가며 천고(千古)를 생각하노니

구름 스러지고 머리는 희어……

天涯春雨薄

古寺梅花寒

孤往思千載

雲空髮已殘

 

 

병을 앓고 나서

仙巖寺病後作

 

흘러오니 남쪽 땅의 끝인데

앓다가 일어나니 어느덧 가을 바람……

매양 천리길을 혼자 가다가

길 막히면 도리어 흐뭇하더군.

客遊南地盡

病起秋風生

千里每孤往

窮途還有情

 

초가을 병 핑계로 사람 안 만나고

하얀 귀밑머리 늙음이 물결치네.

꿈은 괴로운데 친구는 멀고

더더욱 찬비 오니 어쩌겠는가.

初秋人謝病

蒼鬢歲生波

夢苦人相遠

不堪寒雨多

 

 

어느 일본 절의 추억

曺洞宗大學校別院

 

절은 고요하기 태고(太古) 같아서

세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는 곳.

종소리 끊인 뒤 나무들 그윽하고

차 향기 높은 사이 한가한 햇빛.

선심(禪心)은 맑아서 백옥인 양한데

꿈만 같이 이 청산 이르른 것을.

다시 별다른 곳 찾아 나섰다가

우연히 새로운 시 얻어서 돌아왔네.

一堂似太古

與世不相干

幽樹鍾聲後

閑花茶藹間

禪心如白玉

奇夢到靑山

更尋別處去

偶得新詩還

 

절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많아

낮에도 음산하고 물결 떨어져 ……

깜빡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꽃이 지는데 경쇠 소리 높아라.

院裡多佳木

晝陰滴翠濤

幽人初破睡

花落磬聲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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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26 장곡  
몰랐던 선시 감사합니다.
1 haha1234  
한문이 너무 많네요. 요즘 저걸 누가 잃을까 안타깝네요.
S 한움  
멋진 한시입니다 한시라는게  즉석에서 읇기도 하는데 운을 맞추어야 하기에 가히 천재적인 머리여야 된다고 합니다
예로 위에서 3번째 시 "차가운 비가 내리는 연말"를 보면 246810 짝수구 끝에  "생, 정, 경, 행, 명" 으로 ㅇ 받침으로 운을 맞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