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콩국에 메밀면을 사용하게 된 사연 (오/탈자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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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콩국에 메밀면을 사용하게 된 사연 (오/탈자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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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는 콩국수에 메밀면을 쓰는 곳이 많습니다.

오늘은 왜 전주에서만 특이하게 콩국수에 메밀국수를 쓰는지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합니다.

요리는 그 요리가 만들어진 곳의 역사와 사회성 그리고 문화와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요리의 정체성이 곧 그 지역의 시대 정신을 반영한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넘 거창한가? ㅡ_ㅡ)a)
오늘 그 얘길 좀 적어볼까 합니다.



일단 단어의 정의부터 짚어봅니다. 모밀, 메밀 어떤 단어가 맞는걸까요?

원래 과거에는 모밀이라고 썼다고 합니다(해방이후즈음에도...)

하지만 양성 모음이 음성 모음으로 변화하여 이름이 바뀌어 감으로 해서 현재는 메밀이라는 단어가

현행 맞춤법에 맞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이 첫 발표 당시에는 "모밀꽃 필 무렵"이었답니다.



소바"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소바란 일본식 메밀국수를 일컫습니다

우리가 짜장면을 먹었다를 "짜장 한그릇을 했다"라고 표현하듯

소바는 메밀면 그 자체를 말하기도하고

간장에 가츠오부시향을 얹은 츠케를 찍어먹고나 물국수처럼 육수를 만들어 먹는 국수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밀소바"라고 표현을 하면

마치 "역전 앞에" 와 같이 "메밀일본식메밀국수"란 표현이 되므로 잘못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글을 읽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단어에 대한 기본 적인 이해를 돕고 본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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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메밀면을 사용하는 요리는 북쪽으로는 냉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메밀국수가 있습니다.

과거 조선후기 농서 고사십이지에 이르길

"본디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소작농을 하는 대부분의 농민의 입장에서는 추수가 끝나도 쌀을 입에 넣어보는건 힘든 일이었으며

평야가 부족했기에 밀을 지을 심을 땅에는 쌀을 심어야했고

그렇기 때문에 거칠고 메마른 환경에도 잘 자라는 메밀로 면을 만들어 먹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북쪽 지방에서는 평야가 드물었기 때문에 더욱 더 메밀 농사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메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이 많이 발달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이 멸망하고 우리땅은 일본에 점령되어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계 2차대전을 벌리게 된 일본에게 가장 고민거리는

전쟁 물자였습니다.

그 중에는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식량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쟁의 침략만을 당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사실 전쟁을 일으키려면 다양한 분야에서 거래가 일어납니다.

나라에서 물건을 징발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관련된 물자를 납품하는 회사들이 나라와 군납 계약을 맺고 나라에서는 채권을 발행하여

군납회사로 부터 물자를 받아서 전쟁을 일으킵니다

채권을 발행하여 빚을내서 전쟁물자를 사서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츠비시, 캐논, 등등의 일본 전범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였으며

그 사이에 일본 야쿠자가 들어와서 고리대금업을 일삼으면서 한국의 토지와 사람들 마저 사고 파는 지옥과 같은 지경에 이른것입니다.

이렇듯 서로 서로 공생 관계에 있는 일본 군벌의
(군벌들도 문화재 탈취나 군납회사의 뒷돈을 받아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상상초월).)

후손들이 아직도 정/재계를 휘어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범기업+군벌+정치 세력이 아직도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음)

우리나라에 배상을 못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암튼 이렇듯 청/일전쟁 러/일전쟁까지 해쳐먹은 일본은 이제 겁없이 태평양을 넘보기 시작합니다.

많은 동남아 국가로 쳐들어간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것으로 되어있지만

내적으로 하달된 방침은 현지 조달이었습니다.

말이 현지 조달이지 쳐들어간 국가에서 물자를 강탈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일제의 수탈은 나날이 잔혹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쯤 일본은 수탈을 본격화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철도를 건설합니다.

그런 일본은 우리나라에 인프라를 건설해준다며 개드립을 치기 시작했죠

바로 그들이 노린것은 농업의 지방인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나오는 식량자원의 수탈이었습니다.
(그외 지역의 쌀은 본국으로 보내지는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함)

심지어 이들은 철도를 건설하면서 조선인의 인건비가 비싸다면서

저 먼 중국 산둥성의 사람들을 아주 낮은 임금으로 조선까지 데려와서 철도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 바로 중화요리/ 중국 청요리가 한국에 들어오게된 계기가 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인천 차이나 타운은 알아도 왜 군산에 중화요리집이 유명한데가 많을까...

그런 의문을 가져보신적은 없으신가요?

바로

철로를 건설하여 기차로 각 지역에서 차곡차곡 수탈한 쌀을 싣고 해외로 나가는 항구가

인천과 군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학자의 연구로는 인천보다는 군산에 산둥성에서온 중국인 인구가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이는 나중에 전주에 화교가 급증하게되고 차이나 타운이 생기게 됩니다.(지금은 흔적만...)


여기서 슬픈 얘기가 나오게 되는데

우리가 팔월의 크리스마스로 기억하는 아름다운 군산....

하지만 군산은 슬픔이 많은 도시입니다.

일제 수탈때도 야쿠자가 가장 극성이었고 가장 지독하게 수탈당한 곳중에 한곳이 바로 군산입니다.

그래서 고리대금업에 토지와 집을 잃은 군산 많은 일반 시민들은 군산에서 10여키로 떨어진 곳에서

나무로 판자집을 짓고 사는이가 인구의 40%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때의 기록을 보면 판자집에 사는 사람들은 이틀에 한끼로 연명하기도하고 추운날에도 솜옷을 못입어

식량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 현지인들이 군산으로 완전 이주를 결심하고 넘어오게 되는데

그만큼 쌀 등의 군수산업으로 돈이 되었기 때문에 이었죠

실제로 이들은 일본의 승승장구가 계속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언론에서 그렇게 선전해되니 믿을 수 밖에...)

그 때 그시절에 한국에태어나서 10년이상을 한국에서 살다가

전쟁에서 패망한뒤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들 중에는

정말 착하고 좋은 한국인 동무들도 많았는데 일본에 돌아와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생존자도 다수 존재합니다.

암튼 식량 수탈로 넘나 넘나 돈을 많이 버는 일본인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원하는 수요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수익을 얻기 위한 장사/요리/무역하는 사람들도 같이 유입되게 됩니다.

그때 그 일본인들이 그만큼 많아서

군산 시내에 많은 일본식 히로쓰가옥을 짓고 살았던거죠

과거에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었기에 아직도 많은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있었는지

그 규모를 대충 짐작해보고도 남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관광거리로 만든 군산시가 좀 얄밉기도 합니다

전주에도 일본인이 모여사는 가옥이 있었으나 대부분 군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보다 거물급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된 일본 가옥을 짓고 사는이는 드문 편이었습니다.


 
아무튼 넘나 넘나 돈을 잘버는 일본인들은 군산과 전주에서 떵떵거리며 오히려 본토 살때보다

돈을 더 벌자 점점 일본의 문화를 들여오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정착한게 먹거리 문화인 요리집이었습니다.

일본 살다 한국왔는데 식습성은 도저히 바꿀 엄두가 안나는 일본인들을 위해서

본토에서 살던 요리인들이 이것이 기회다라며 외치면서

한국에서 요리점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그당시 경성이라 불리우던 서울 인근과 인천,부산,군산등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일본식 식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섬나라라서 항구쪽 도시가 인구가 많고 그것에 익숙함)


암튼 그렇게 수탈을 해가자 우리의 조상님들은 먹을것이 없어서

차선으로 선택한게 구황작물과 메밀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북 지역에서는 메밀이 사랑을 받았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방후

특히 박정희 정권 때 혼분식을 장려하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면요리가 발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면요리가

특히나 군산에서는 중식요리가 발달하는 과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재미있으셨다거나 저를 응원해 주신다면 댓글을 달아주거나. 저를 팔로우를 해주십시요

이 모든 글은 다년간에 걸쳐 현직 사장님들과의 인터뷰, 신문기사, 다큐멘터리, 유튜브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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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Comments
1 와9와9  
확실히 전라도 특히 전주 음식이 제일
솔직히 요즘 음식은 전주보다 군산이 더 주목받는거 같아요
전주는 대도시다보니 프랜차이즈 영향을 받아서 예전만은 못하구요
전주 사람들도 군산에 있는 음식점 많이 찾아갑니다.
요즘은 전남쪽도 괜찮은 집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