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우리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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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우리집 풍경

15 하스미시계있고 15 796 2

아침 일찍부터 커피를 한잔 내리고 서재에서 부산을 떨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헤겔의 <정신 현상학>과 <법철학>에서 안티고네에 대한 이 철학자의 견해를 낑낑대며 훓어보고 있었습니다.

주디스 버틀러가 쓴 <안티고네의 주장>을 어제 밤에 읽다가 버틀러의 헤겔에 대한 비판이 타당한지가 궁금해서 묵혀뒀던 책을 펼쳐들었네요. 독일 넘은 더럽게 글을 어렵게 쓴다고 투덜거리는데 마눌님이 문을 두드립니다. 이미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


둘이서 간단한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명절에 본가에서 받아 온 인절미를 와플기에 넣어서 와플 인절미로 만들고 홍차를 끓여마셨습니다. 아들내미는 유튜버를 보다 잤는지 게임을 하다 잤는지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요. 간단하게 설겆이를 하고 다시 서재로 돌아가 책을 열심히 읽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벌써 점심 시간이라네요.

점심은 수육을 먹자는 아들(이제 잠에서 깼습니다)의 주장에 모두 OK를 하며 와인을 준비했습니다. 그저께 사놓은 말벡 와인(아차발 페레 멘도사 말벡)이 너무 맛있어서 점심 먹으면서 두 잔이나 마시고 30분 눈을 붙였습니다. 다시 책을 읽는데 또 누가 문을 두드립니다.


마눌님이 저녁으로 라따뚜이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아... 이쯤되면 눈치껏 행동해야 합니다.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는데 집에만 틀어 박혀 있다간 구박당하기 쉽상이거던요.

옷을 차려입고 마눌님이 알고 있다는 와인 바로 향했습니다. 이미 마눌님이 예약을 해놓고 예약 카드 메시지까지 부탁을 했나봅니다.

집사람이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묻길래 모른다고 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라고 하네요. 내일 제가 영화 보러갈 것 같아서 오늘 기분내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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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라따뚜이와 차가운 샹그리아를 마셨는데 라따뚜이가 무척 맛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클라우디 베이 같은 괜찮은 화이트 와인을 시킬 걸하고 후회 막심했는데...점심 때 마신 와인 탓인지 샹그리아를 마셔도 취기가 돕니다. 술기운과 함께 마눌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는 날에 혼자 영화를 보러다니거나 서재에 틀어박혀 책만 읽어도 싫은 소리 한번 안하는 사람입니다. 결혼하고 여태 화 한번 안내고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척척 풀어나가는 사람. 오늘은 왠일인지 기분 한번 내고 싶었나 봅니다.

와인 바에서 나와 둘이서 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커피 숍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아들내미 보고 알아서 저녁 챙겨먹고 먼저 자라고 하고 칵테일 바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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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때 제가 즐겨 만들었던 준벅, 엘더플라워 사워, 마티니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두 사람 다 술이 안취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선물하려고 챙겨뒀던 발렌타인 30년을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비틀었습니다(나중에 후회할 듯..).

저보다 술이 훨씬 쎈 마눌님이 끝까지 마시자네요. 

마눌님이 안줏거리 만드는 와중에 도망쳐서 글을 쓰는 중입니다. 오늘 언제까지 술시중을 들어야 할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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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영화 보러 영화관에 못 갈 것 같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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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omments
S 푸른강산하  
신축년 새해 하스미시계있고님 댁내 항상 건강과 행복이 넘쳐나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푸른강산하님도 소원성취하시고 무탈한 한 해를 기원합니다.^^
34 금과옥  
어제 좋은 하루 보내셨군요 ㅎㅎ~
두분 내외 올"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길만 찾으시길 바래요 ^^~
21 Cineaste비정규직  
신축년이네요... 학문운(?)이 솟아오르길 바랍니다. ㅎㅎ
그리고 올해뿐만 아니라 평생 좋은 일이 있길 바라겠습니다.
17 달새울음  
행복한 밤 되세요~ ^^
17 바앙패  
신축년 복많이 받으세요
24 umma55  
마늘님이 천사시네요.
마음도 소녀시구요.
복받으셨습니다!!!
13 소서러  
캬야야... 싱글벙글한 삶의 후기글 너무 좋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글과 인증샷들 보자마자 같이 한바탕 웃고 떠든 기분이에요.
저한테는 너무 먼 비스무리한 기억도 이렇게 빨리 기사회생되네요.
두분끼리 암묵적인 술 배틀을 한판 하신 건가요?...ㅎㅎㅎㅎ
기승전으로 향할수록 안줏거리 만드는 와중에 재빠르게...ㅋㅋㅋㅋ
안팎 유희 3박자를 즐기시는데 영화라는 하나가 빠져서
어느 정도 허하신듯한 시계있고 선생님의
아쉬움이 묘하게 짠하게 느껴지네요. 저는 홀로 남아서 이거 하나라도
충족시켰는지라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ㅋㅋㅋ
신축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0 백마  
명절은 지났지만 후유증으로 몸부게와 술병이....
26 장곡  
행복한 시간 보내셨네요.
부럽습니다.
술김에 쓴 글인데 다들 이리 감사한 댓글들을...
모두들 감사합니다. 신축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_ _)
12 블랙헐  
나중에도 술기운에 글 한번 더 부탁 드리겠습니다. ^^ㅋ
18 슈샤드  
결혼은 못했지만 했다면 한번쯤 꿈꿔봤을 삶이네요.  부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한건 저런 여유로운 정서와 감성을 갖고 계신 두 분의 따뜻함이네요. 올 한 해 더욱더 건강하시고요 온가족 하루 하루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12 블랙헐  
저 '하스미시계있고'님 미혼인 줄 알았어요~~~  ^^*
"마눌님이 안줏거리 만드는 와중에 도망쳐서 글을 쓰는 중입니다." 에 빵 터졌습니다.
13 라소  
외국에 계신 느낌이네요 ㅎㅎ

추카추카 17 Lucky 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