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 에 나타나는 이별과 만남의 쇼트

영화이야기

영화 <클로즈>와 <6번 칸>에 나타나는 이별과 만남의 쇼트

15 하스미시계있고 12 748 1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고색창연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 가족 중 한 사람을 잃고 가슴앓이를 오래 했습니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다 지금까지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영화의 부분들이 보여서 정리해봤습니다.

 

최근에 개봉된 두 편의 북유럽 영화,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와 유호 쿠오스마넨의 <6번 칸>은 이별과 만남에 대한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벨기에의 루카스 돈트는 데뷔작 <>(2018)에서부터 성()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클로즈>는 레오와 레미라는 죽마고우 두 소년이 자신들을 동성애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멀어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한다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루카스 돈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의 불일치를 다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3705_0859.jpg

[사진1~2]


<클로즈>에서 이별을 다루는 방식은 상투적일수도 있지만 영화에서는 꽤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두 소년이 참호처럼 보이는 곳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한 편이 된 두 아이 얼굴에서 즐거움이 넘칩니다([사진1], [사진2]).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3756_1391.jpg

[사진3~8]


두 번째 씬에서 아이들은 분홍 꽃 들판을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가로지르며 달립니다. 영화는 이 다음부터 레오와 레미가 길을 가는 모습을 보여 줄 때, 계속 같은 방향(좌에서 우)으로 보여줍니다([사진3~7]). 아니면 같이 태아 같이 낮잠을 자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줌([사진8])으로써 두 소년의 순수함과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사전 정보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친구들이 관계가 나빠질 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동선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짐작 가능합니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너희들, 게이냐?’라며 놀림을 당하자,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이 때의 변화를 화면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3789_7712.jpg
[사진9
~15]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했지만 레미는 개의치 않고 레오는 신경이 쓰입니다. 두 친구의 걷는 모습을 지금까지 투 쇼트로 잡다가 이제부터 카메라는 레오만 정면에서 집중해서 잡고 있습니다. 옆의 레미는 프레임에 살짝 걸치는 정도로 잘려져 나오는데, 레오의 마음 속에 그는 이제 잘려나간 셈입니다([사진9]).

그 다음 장면에서 레오는 다른 친구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인 남성에 걸맞는 운동을 하고 있는 아이스하키부의 친구로부터 동아리 가입을 권유받게 되지요. 좌쪽 두 사람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친구가 레미입니다. 레오에게 레미는 멀리해야 할 존재로 느껴집니다([사진10]).


다음 장면은 학교에서 집으로 하교하는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집으로 하교 장면을 보여주지 않다가 레오가 어떤 결심을 한 순간부터 동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뀐 것입니다. 들판의 꽃은 작별을 암시하는 흰색이고 레오의 얼굴은 어둡고 레미는 친구의 변화에 눈치를 봅니다([사진11]).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갈까요? 영화의 맨 처음 장소, 참호로 갑니다. 똑같은 전쟁놀이를 하지만 레오는 즐겁지 않고 가상으로 설정된 공동의 적을 레오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레오는 이제 사회화된 것입니다([사진12~15]).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5329_3968.jpg
[사진16~17]


이 이후의 씬은 영화의 전반부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자전거 등교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두 친구가 양 갈래 길에서 멀어져 가는 장면을 카메라가 포착함으로서 그들의 영원한 작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사진16~17]).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3827_5848.jpg

[사진18~19]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2016)로 장편 데뷔를 하자마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유호 쿠오스마넨의 신작이 <6번 칸>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소시민층의 멜로드라마입니다. <올리 마키...>는 제빵사 출신의 권투 선수가 세계 타이틀전을 준비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약간 소심한 올리는 후원자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가해서 사진을 찍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남자들 여럿이 주먹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불빛이 휘황 찬 창밑으로 왜소한 올리가 혼자 우울하게 걸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사진18]) 그 장면에서 저는 저절로 탄식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올리가 조용한 숲길을 뛰다가 나무에 걸린 연을 보고 달려가 떼어내는 장면([사진19])을 본 사람이라면 유호 쿠오스마넨이 흔해 빠진 감독이 아니라 탄탄한 실력을 가진 감독이고 언제나 새 작품을 기다릴 수 있다고 맹세하게 만듭니다.

 

<올리 마키..>를 이미 본 사람이라면 <6번 칸>의 열차 장면을 보고 빙긋이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올리 마키..>의 첫 장면이 올리가 고향으로 가는 기차의 객실 칸에 앉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게다가 올리와 여자 친구가 헬싱키의 매니저 집에서 잠시 묵게 될 때 아이들 방의 이층 침대를 사용하게 됩니다. 마치 <6번 칸>의 열차와 객실 이층 침대를 이미 예고하고 있는 장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각설하고 <6번 칸>에 주목하기로 합시다. 라우라는 러시아에 유학을 온 핀란드 학생으로 자신의 동성 연인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무르만스크의 암각화를 보러 기차 여행을 떠납니다. 도중에 료하라는 광부와 동행하게 되는데 두 사람이 티격태격 하다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6번 칸>의 라우라는 <올리 마키..>의 주인공 올리와 비슷한 성격입니다. 영화 초반에 보여주듯이 사람들이 북적대는 파티에 어울리지 못하는 국외자 신세이니까요. 원래 동성 애인인 이리나와 같이 떠나기로 했던 무르만스크로의 여행도 혼자 떠나게 되는데 이리나는 이미 다른 연인이 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라우라는 기차 안에서도 모스크바에 있는 이리나를 잊지 못하고 비디오 화면으로 이리나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영화 중반에 카메라를 도둑맞고 난 뒤부터 자연스레 이리나와의 추억은 사라지고 같은 객실을 사용하는 료하와 새로운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3851_4369.jpg

[사진20~23]


라우라가 료하를 처음 만났을 때 료하는 술에 취해서 라우라를 창녀 취급을 합니다. 이 때 카메라는 두 사람을 쇼트-역쇼트로만 보여줍니다. 급기야 화가 난 라우라는 헤드셋을 머리에 씁니다([사진20~23]). 두 사람은 공통점이 없습니다. 라우라는 복지국가 핀란드의 유학생, 료하는 공산주의 국가 광산 노동자입니다. 그들의 차이가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을 것처럼 쇼트의 나눔으로 보여주지요.

그러다 료하가 점점 라우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식당 칸에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료하가 사람 속 터지는 농담으로 라우라를 자극하지만 라우라는 동요 없이 대구를 합니다. 머쓱해진 료하가 라우라에게 묻습니다.

 

무르만스크에는 왜 가는거야?

암각화 보러

암각화가 뭔데?”

돌에 새겨진 그림

 

영화를 무심코 보다가 이 장면에서 저는 움찔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를 카메라가 패닝을 하면서 붙여버립니다. 지금까지 두 사람 사이를 끊임없이 쇼트-역쇼트로 나누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결합시킨 것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장면입니다.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3894_167.jpg

[사진24~25] 두 남녀가 감정적으로 처음 통하는 장면을 카메라 패닝으로 연결시키는 쇼트.  


이 장면을 동영상이 아니라 스크린 샷을 잡은 화면으로는 사진처럼 보이기 때문에 설명하기 곤란합니다만, [사진24]는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오른쪽에서 패닝하면서 연결된다고 생각하면서 보시면 됩니다.

 

이어서 라우라가 료하에게 묻습니다.

너는 뭐하러 가는데?”

엄청난 광산에 가는 거야 

건설 노동자니?”

그냥 사업이야

 

료하가 자신의 직업과 미래에 대해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카메라는 이제 료하에서 라우라로 좌에서 우로 패닝 합니다([사진25]). 다시 한 번 두 사람 사이의 연결.

 

카메라 패닝이라는 것은 트라이포드를 이용하거나 이 영화에서처럼 핸드 헬드로도 가능합니다. 카메라 패닝은 새로운 정보를 보여줍니다. 통상적으로 그 장소의 범위를 보여주는 경우, 중요한 힌트를 제시하는 경우, 숨겨진 등장인물을 드러내는 경우 등의 경우로 사용됩니다. <6번 칸>의 패닝은 가시적 정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남녀 사이의 감정의 상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두 사람의 감정적 교류가 이제 서서히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78998b6d82b979ac9547479d720d9090_1680443931_637.jpg
[사진26~
31]


기차는 페트로사보드르스크라는 곳에서 하루를 쉬어갑니다. 료하는 라우라에게 제안합니다. 기차에서 내려 자기가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데 동행하지 않겠냐고. 료하가 아는 사람은 고양이를 키우는 할머니입니다. 셋이서 저녁과 술을 마실 때 카메라는 세 사람을 동시에 보여줍니다([사진26])

할머니를 매개로 두 사람은 점점 감정적으로 친밀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열차 안으로 돌아와서 두 사람의 쇼트와 역쇼트를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눈여겨 보십시오, 지금과 달리 바라보는 사람의 어깨를 화면에 넣은 오버 숄더 쇼트로 찍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사진29~30]). 두 사람은 심리적으로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렇기에 목적지 무르만스크에 점점 다가오자 두 남녀의 입맞춤이 그렇게 갑작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쇼트를 나누고 이어 붙이는 행위 자체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과도 유사합니다. 지난 해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서 영화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잠시나마 영화로부터 위로를 받았다고 할까요.



[사족1]

<클로즈>를 보면서 등굣길의 오른쪽에서 왼쪽의 이동은 하굣길의 왼쪽에서 오른쪽의 이동 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데이빗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사막 횡단 장면은 영화 내내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만 있고 그 대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쇼트인데 그것은 마치 로렌스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끊임없이 나아가고 돌아오지 않는 무모한 직선의 행진.

예전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독일어 'Untergang'건너간다’, ‘몰락한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직선 운동만 보여주는 로렌스의 움직임은 결국 로렌스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빗 린이 니체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초인을 추구한 로렌스를 다룬다는 점에서 필름으로 찍은 차라투스트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2]

<6번 칸>의 패닝으로서 감정을 연결시키는 것은 단순하지만 정확한 연출이다. 막스 오퓔스의 <윤무>(1931)에는 이보다 더 훌륭한 패닝 장면이 나온다. 각각 정부를 두고 있는 부부가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인데, 두 사람은 식은 사랑을 암시하듯 침대를 따로 쓰고 있다. 카메라는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보여주다가 패닝을 하면서 남편가 아내를 번갈아 보여주다가 따로 찍기 시작한다. 즉 <6번 칸>과 상반된 패닝이다. 탄식을 할만큼 창의적인 오퓔스의 연출이다. 과연 막스 오퓔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12 Comments
15 Harrum  
두 영화는 제목만 기억하고 있는데 감상하고 나서 읽어야겠습니다.
이 영화들은 볼 만합니다. 특히 <6번 칸>은 필견작이지요.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이 작품과 <파벨만스>가 최고였습니다.
S 한움  
카메라로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표현할 수 있다니 
공들여 쓴 글고맙습니다
두 영화 찾아 봐야겠네요
긴 글이라서 기대도 안하고 올렸는데 끝까지 읽어 주신 분이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12 Lowchain232  
6번 칸은 저 장면 말고도 라우라랑 료하가 좁은 통로를 막 뛰어다니던 장면도 은근히 기억나더라고요.
기차에서 이동씬도 좁은 공간에서 정말 잘 찍었죠. 그 외에도 카메라를 잃어버린 후 기차에서 눈덮인 역을 바라 볼 때 아득해지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알렉세이 게르만의 <전쟁 없는 20일>의 기차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명장면입니다. 다만 이별과 만남을 주제로 하는 글이라 본론에서 벗어날까 싶어 뺐습니다.
3 밤간  
저는 아직 영화를 보면서 카메라 워킹과 쇼트의 연출 의도를 파악하며 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이렇게 적절한 영화를 예시로 설명해주시니 이미 본 영화들인데도 감상의 폭이 더 넓어진 느낌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 재생소년  
훌륭한 분석이십니다. 영상 언어에 대한 이해도에 감탄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7 달새울음  
이 글을 읽고 문득 토니 타키타니의 패닝이 생각나서 다시 보고 싶어졌는데,
그냥 이 영화들을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
이치카와 준의 <토니 타키타니>는 저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이래서 그런지 저는 이 작품의 패닝은 책을 넘기는 느낌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