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하면 떠오르는 배우가 누구일까요? (2)

영화이야기

서부극하면 떠오르는 배우가 누구일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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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빌린 타운>(Abilene Town, 에드윈 L. 마린 감독, 1946)은 스콧 서부극의 대표작입니다.

무대는 1870년 캔자스주 애빌린. 스콧은 이 마을의 댄이라는 이름의 마을 보안관입니다. 당시 철도는 이 마을까지 이르렀고 텍사스에서 캐틀 드라이브로 소가 운반되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16000킬로, 90일에 걸쳐 모래먼지, 더위, 파리 속을 고독과 싸우며 여행을 계속해 왔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상을 받은 이들은 이 마을에서 숨을 헐떡이며 술과 여자, 도박에 몰입합니다. 그곳으로 이주자 농민 일행이 들어옵니다. 농민들은 밭을 만들고 철조망을 둘러 스스로를 지킵니다. 목장주와 개척 농민과의 싸움. 이 주제는 서부극의 영원한 모티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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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2] 래나운 서부극에서 결혼은 했지만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 역을 주로 하게 되는 스콧이 <애빌린 타운>에서 두 여자에게 사랑을 받는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이 영화에는 여러 가지 장치가 있었습니다. 스콧은 부정이나 불법 행위를 허용하지 않고 총기 소유를 금지하는 평화주의자였지만 결국 총으로 해결하는 모순을 연기합니다. 스콧 영화 중에서 드물게 두 여자가 관계됩니다. 술집의 무희는 이미 은밀한 사이라고 생각하게 하지만 선량한 아가씨 셰리(론다 플레밍)에게도 마음이 있는 듯해 여의치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저랑 도망가요라는 셰리에게

너와 도망칠 수는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댄 역의 스콧에게 셰리가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당신은 폭력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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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미녀는 서부남자의 본심을 꿰뚫고 있다. <애빌린 타운>에서 랜돌프 스콧과 론다 플레밍 


선하기 짝이 없는 셰리는 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죠. 마을의 사건은 원래 카운티 보안관 브라보(에드가 부캐넌)의 일이지만 그는 겁이 많고 도박을 좋아해 자신은 직무를 팽개치고 위험한 일은 댄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의냐 악이냐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이익이 있냐, 없냐로 행동합니다. 새로운 정착민들과의 장사가 카우보이의 그것보다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댄을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되는 거죠. 요컨대 이 영화는 '어른의 서부극'입니다. 애빌린이라는 붐타운의 그림자 아래에 꿈틀거리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니 재미있는 것입니다. 고집이 센 남자 댄도 갈팡질팡 합니다. 카우보이와 개척민의 장렬한 싸움을 기대하면 실망할 작품입니다.

 

그 후 스콧은 RKO 스튜디오로 옮깁니다. 여기서 그는 <악인의 영토>(Badman's Territory,팀 웨런 감독, 1946), 레이 엔라이트 감독이 연출한 <악당의 귀환>(Return of the Bad Men, 1946) , <트레일 스트리트>(Trail Street, 1947)라는 작품에 출연해 서부극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명료하게 했습니다.

이 세편의 영화에서 스콧은 고지식하고 열성적이며 양식 있는 보안관을 연기하고 있어 무법천지가 된 마을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의 배역인 정의의 보안관이 자리 잡은 것도 이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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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트레일 스트리트>에 신인이었던 로버트 라이언도 출연하고 있다. 워낙 노안이라 풋풋함은 없다.


<트레일 스트리트>에서 스콧은 바트 매스터슨을 역을 맡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1880, 국토도 인심도 황폐해져 있을 무렵 캔자스의 자유주의 마을은 거의 무질서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닷지 시티와 툼스톤에서 명성을 얻은 바트 매스터슨을 초빙합니다. 바트는 마을에 있는 목동들의 권총 소지를 금지하고 우당탕탕 사건을 차례로 해결합니다. 이때 신인이었던 로버트 라이언이 앨런이라는 이름의 청년으로 출연하고 있고, 조지 개비 헤이즈가 호연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코로너 크릭>(Coroner Creek, 레이 엔라이트 감독, 1948)은 랜돌프 스콧, 마거릿 채프먼, 조지 맥크레디, 포레스트 터커, 에드거 뷰캐넌이라는 서부극에는 친숙한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스콧이 있는 마을로 약혼녀가 포장마차를 타고 가던 중 약혼녀를 약탈하여 자살하도록 만든 범인(포레스트 터커)을 따라잡고 복수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범인은 강탈한 돈으로 동네를 휘젓고 주변 목장을 탈취하려 합니다. 스콧은 범인과 대립하지만 범인 일당에게 오른손이 골절됩니다. 오른손을 붕대로 매단 채 왼손으로 권총을 사용하고, 남자는 집념에 불타 범인을 몰아 넣습니다. 템포가 빠르고 질리지 않고 계속 볼 수 있는 가작입니다.

스콧이 평소의 보안관풍이 아니라 떠돌이라는 설정인데 오른손 주먹이 부러진 상대의 주먹을 짓밟는 비정한 짓도 아무렇지 않게 해치우고 평소의 젠틀맨이 아닌 다른 얼굴로 연기를 합니다. 복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불사한다는 새로운 캐릭터에 스콧은 도전한 것이죠.

이 영화에서 스콧이 연기하는 크리스 데닝은 새로운 서부극 영웅상을 세상에 보여줬습니다. 쿨하고, 타인과 어울리지 않는, 복수에 불타는 남자 역할입니다. 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해 계승되는 "이름 없는 남자"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https://youtu.be/6WQ8dC3lrdY  <--- 개싸움을 보시고 싶으면 누르세요.


이 영화는 더티함을 지녔고 주먹다짐은 물론 박치기, 물고 뜯기 등 희귀한 공격, 보다 무자비하게도 스콧은 아직 살아있는 악역의 몸을 적의 총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하기 까지 합니다. 지금까지의 젠틀맨 스콧에게는 없었던 캐릭터인 것이죠. 이 서부극에는 드물게 마거리트 채프먼, 바바라 리드, 샐리 아이러스 등 여성들이 나서서 활약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남성이 주역이라는 단골 서부극에서는 신선한 부분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1950년대 전반이 아마 랜돌프 스콧의 전성기일 것입니다. 1950년에는 3, 51년에는 4, 52년에는 3, 53년에는 3편에 서부극에 주연을 맡았습니다. 눈에 띄는 작품으론 <포트 워스>(Fort Worth, 에드윈 L 마린 감독, 1951)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성기의 스콧이 신문기자로 활약하는 이색작입니다.

미국 남서부, 포트 워스에 예전 총잡이가 신문사를 차리려고 돌아옵니다. 시대는 이제 권총보다 펜의 힘이라고 주인공 네드 브릿은 말합니다. 정말 이 역할은 랜돌프 스콧이 해야할 것 같습니다. 총잡이도 신문기자도 스콧이라면 둘 다 할 수 있습니다. 존 웨인이라면 기자는 도저히 무리일 것 같지 않나요? 고향 포트 워스에 도착하자 오랜 친구 블레어(데이빗 브라이언)가 브릿을 환영합니다. 마을은 철도 개설을 둘러싸고, 무법자이자 소 운반책의 일당 두목 게이브 클레벤저(레이 스틸)가 철도 유치를 시도하는 옛 친구 블레어와의 대결이 표면화하고 있었습니다. 브릿이 현지를 취재하자 마을의 쇠퇴는 친구 블레어가 치솟는 땅을 사들여 이익을 독점하려 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파트너인 늙은 편집자가 살해된 것을 계기로 브릿은 펜을 놓고 다시 총을 집어듭니다.

마지막에는 브릿과 블레어, 무법자 클레벤저의 3파전이 벌어져 브릿만 남게 됩니다. 한때 옛 친구의 약혼녀였던 미녀 플로라(필리스 색스터)를 그의 옆에 있습니다. 그리고 경사스럽게도 마을 번영의 상징, 부설한 지 얼마 안 된 증기기관차가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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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6] '펜은 총보다 강하다' <포트 워스>에서 왕년의 총잡이가 신문사를 차린다. 결론은 '지 버릇 개 못 준다' 다시 총으로 해결하는 총잡이 


법이 미흡했던 개척시대 서부에서는 총을 통한 해결이 우선시됐습니다. 새로운 산업으로 주인공 브릿은 신문사를 차리려 하지만 결국 총을 통한 해결에 의존하게 됩니다. 아마 그러지 않으면 서부극을 보러 오는 대중은 만족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이 래나운 서부극 시리즈와 그의 마지막 작품 <하오의 결투>(샘 패킨파 감독, 1962)가 이어집니다. 조만간 이 영화들은 제가 따로 다룰 예정입니다. 이왕이면 작품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글을 쓸려고 하는데 시간과 체력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또다른 영화에 대해 쓸려고 마음 먹고 있는 글이 밀려있어서 언제가 될지..).

 

랜돌프 스콧의 사생활은 완벽한 남부 신사였습니다. 투자자, 기업인이기도 해서 촬영 중간에는 깊은 의자에 앉아 월스트리트저널을 읽었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아무도 그를 서부극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투자에도 일가견이 있어 부동산 투자 등으로, 50,000~일억달러를 모았다고 전해지며 존 웨인처럼 암에 걸리지도 않았고 오디 머피처럼 파산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유히 인생을 즐기며 198789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서부의 역사가 하나 끝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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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미국 노스 캐롤리나에 있는 랜돌프 스콧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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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S 한움  
정성스럽게 쓴 글 고맙게 잘 보았습니다.
서부영화 좋아하는데도 존웨인 게리쿠퍼 클린트이스트우드는 알아도 랜돌프 스콧은  영화를 몇개 보기는 했는데도  이름이 생소하네요 그리고 며칠 전 본 톨T라는 영화는  총싸움이 너무 엉성해서 실망했습니다.
버드 뵈티커의 서부극이 다 그래요. 결투 씬만 보고 말하면 순식간에 끝나서 밍밍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인간 관계, 숨은 구조 등을 따져보면 볼 만합니다. 평양냉면의 맛이랄까. 자꾸 보면 빠져들게 되지요. 버드 뵈티커 서부극에 대해 한번 설을 풀어야겠네요.
14 Harrum  
서부극이 생각보다 진지한 영화가 많이 있군요.
멜로와 서부극은 무조건 스킵했는데 (내 신조가 와장창 다 깨지고 무너진다~!!!!)
그러니까 이런 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장르 영화들, 그 중에서도 B급 규모의 서부극이나 멜로드라마를 예전의 대가들이 찍었습니다.
누가봐도 예상이 가능한 스토리입니다. 서부극에서 주인공은 박해를 받다가 악당과 최후의 결투를 하고 승리합니다. 멜로드라마에서 남녀는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지나치게 달콤한 해피 엔딩을 맞이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이별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뻔한 내용을 소규모 제작비로 감독들은 창의적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냥 뻔한 재료를 가지고 툭탁 툭탁 버무려 음식을 내놓았는데 그게 미슐랭 별 세개짜리 음식이 나온 겁니다. 그게 대가의 솜씨죠.
요즘 영화들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기교를 다 부립니다. 소재부터가 대단히 자극적인데다 카메라는 날아다니고 편집은 칼춤을 춥니다. 갖은 조미료에 이것 저것 결합시킨 퓨전 음식입니다. 비싼 재료는 잔뜩 넣었는데 재료 본연의 맛은 사라진 느낌이죠. 
또 하나의 현상은 영화제가 시장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난 예술 영화만 본다'는 아트파 관객을 위한 시장을 영화제가 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제가 백일장이 된 느낌입니다. 감독들이 영화제에 좋아할만한 소재를 가지고 그럴 듯한 형식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백일장 시험 문제에 맞추어 꾸역꾸역 모범 답안을 쓰는 감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영화들을 보면, 이게 잘 만든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잊을 수 없게 간을 맞춘 영화를 만드는 예전 감독들의 손맛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14 Harrum  
본문보다 이 댓글이 더 좋은데요. ^^
20 암수  
공감이 엄청 쓰나미로 몰려오는 댓글입니다
20 암수  
버드 보티커와 합을 이뤄 50년대 늙수레할때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들에 주연을 맡아 아직까지도 유명한데..
30~40년대 필모도 만만찬쿤요..그런데 그의 젊은 시절 영화는 한글자막화되어 나름 알려진 작품들이 적은것 같네요..
그의 젊은 시절 얼굴이 잘 떠오르질 않아요...
요즘 씨네필은 이런 영화들을 안봅니다. 이런 영화는 쉰내나는 틀딱용 영화라고 하더군요. ㅎㅎ 이런 것도 안보고 자신이 시네필이라고 우쭐대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찹니다. 마치 최신 영화들을 보면 자신이 힙스터가 된다고 착각하는 거지요.
그건 마치 피카소 그림을 보고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은 과학과 달라서 발전하는 것이 아닌데 최근 영화들만 보면 자기는 영화사의 최첨단을 따라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영화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유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네필이 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