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하면 떠오르는 배우가 누구일까요? (1)

영화이야기

서부극하면 떠오르는 배우가 누구일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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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을 꽤나 봤다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존 웨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서부극에 정통한 사람은 랜돌프 스콧의 이름을 댑니다. 스콧이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만 56편에 해당하니 정말 서부의 사나이라고 부를만합니다.

만약 남군에 100명의 랜돌프 스콧이었다면, 남북 전쟁에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일곱 편의 서부극을 찍었던 버드 뵈티커 감독의 말입니다.

랜돌프 스콧은 강인한 정신력과 육체의 소유자였습니다. 더구나 정의의 편에서 악당을 한 방에 쓰러뜨리는 마을 보안관이 적역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소를 잃지 않고, 부녀자들에게는 상냥하고 신사적이지만 악당에게는 역경 속에도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때려눕히는 남자. 이 사람이 있다면 서부의 마을은 안심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평화의 사자 역할만 맡으니 하나의 패턴만 지닌 슴슴한 개성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남녀노소가 안심하게 볼 수 있는 서부극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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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4]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 교육까지 받았던 랜돌프 스콧은 배우로서 길을 가게 된다. 


그는 총잡이로는 드물게 예절을 지니고 깍듯하게 사람을 대하는 젠틀맨 이미지가 강렬했습니다. 랜돌프 스콧은 1898123일 버지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직물공장 주임 기사였고 어머니는 부유층의 딸로 집안 환경이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부계, 모계 모두 선조 때부터 토박이 미합중국 개척자였기에 후에 스콧이 서부극 배우를 맡게 되는 것은 운명과도 같았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미식 축구부와 합창단을 오가며 활동해서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연마했고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조지아 공대에서 전공을 직물학으로 정하고 이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으로 옮겨 직물 제조학으로 학위를 받는 등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국 남부는 남북 전쟁 후 산업이 정비되고 부흥하여 직물 산업이 각광 받는 산업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직업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하지만 그가 받은 학위는 그의 인생에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직물 산업 이외에 한참 각광을 받는 산업이 있었으니, 그것이 영화 산업이었습니다. 다행이 스콧의 아버지가 이 당시 잘 나가던 영화감독이자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와 연줄이 있었습니다. 1928년 아버지의 소개로 하워드 휴즈를 만나면서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으니 그의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 시기는 최근에 개봉된 데미언 셔젤의 졸작 <바빌론>에서 알 수 있듯이 1927년에 유성 영화가 처음 만들어지면서 무성과 유성 영화가 공존하던 때였습니다. 스콧은 무성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도 하고 각종 오디션을 받으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게리 쿠퍼가 주연을 맡고 빅터 플레밍이 메가폰을 잡은 <버지니아 사람>(1929)에 그를 고용했습니다. 유성 영화였던 이 영화에 게리 쿠퍼의 버지니아 사투리를 가르칠 사람은 그곳 출신인 랜돌프 스콧이 적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는 작은 연극 무대에 오르고 연기 학교를 다니며 각본을 쓰는 등 절차탁마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파라마운트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7년간 계약을 맺게 됩니다. 당시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는 카우보이 역할을 할 배우가 없었는데 그가 적역이었던 것이지요. 이 영화사에서 뒤에 거장이 되는 헨리 하서웨이 감독을 만나 몇 편의 영화를 찍고 그에게서 연기와 액션의 기본을 배우게 됩니다. 스콧은 헨리 하서웨이와의 만남이 자신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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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6] 퓨마의 습격으로 죽을 뻔한 <숲 속의 사나이>  포스터(사진5),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헨리 하사웨이 감독과 함께(사진6)


파라마운트에서 영화를 찍을 당시에 촬영 현장은 거의 지옥과 같았는데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헨리 하사웨이 감독의 <숲 속의 사나이>(1933)를 촬영 중에 영화에 등장하는 퓨마가 연기 중인 랜돌프 스콧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해서 스튜디오는 비명과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동물 담당 조련사가 퓨마를 우리 안으로 넣으렸고 했지만 퓨마와 스콧이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려서 한참 동안 어찌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사태가 수습되고 스콧이 조련사를 불러 왜 즉각 도와주지 않았냐고 하니까 그 조련사 왈. “당신의 연기가 마치 진짜 같아서 그걸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서부 소설가 잰 그레이가 스콧을 좋아하고 응원한 것도 행운이 되었습니다. 자신감 넘치고 총을 잘 다루며 풍모도 좋고 정신적으로 강건했습니다. 이후 판타지, 호러, 코메디, 뮤지컬, 역사물, 전쟁물, 모험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기의 주축은 서부극이었습니다. 1935년에서 45년 사이에 꽤 괜찮은 서부 영화들에 출연하는데 제임스 P 호건 감독의 <텍사스 사람>(1938)과 헨리 킹 감독의 <무법자 제시 제임스>(1939),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버니지아 시티>(1940), 조지 마셜 감독의 <달톤 4형제>(1940), 프리츠 랑 감독의 <웨스턴 유니언>(1941), 어빙 커밍스 감독의 <벨 스타>(1941) 등이 그런 작품입니다.

<웨스턴 유니언><벨 스타>에서는 악역도 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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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8] 존 웨인과 출연한 두 편의 영화 <피츠버그>와 <약탈자>

1942년 스콧은 존 웨인과 공동 출연한 작품을 두 편 찍습니다. <피츠버그>(루이스 세일러 감독)에선 선한 역으로, <약탈자>(레이 엔라이트 감독)에선 악역으로 출연했습니다. 특히 <약탈자>에서 존 웨인과 호각을 벌이는 격투 장면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지요.

덧붙여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가렛 미첼은 영화화에 즈음해, 애슐리 역을 스콧이 맡기를 희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신사적인 센스나 포용력이 애슐리 캐릭터와 겹친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스콧은 이 역할을 거절하고 그 역할은 레슬리 하워드에게 돌아갑니다.

 

<데스페라도>(찰스 비더 감독, 1943)는 이 시기 스콧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된 영화였습니다. 젊은 날의 글렌 포드가 출연하고 에드가 뷰케넌이 감칠 맛 나는 연기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서부 남자의 동료와의 변함없는 우정이 주제로 자리 잡고 있어 옛 시절 서부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엣 서부의 향수가 감돌며 멀리 지나간 꿈의 세계로 유혹됩니다.

 

1946년부터 스콧은 출연하는 영화를 서부극으로만 좁힙니다. 이미 나이는 50세에 가까웠습니다.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배우 인생을 계속해도 더 이상 인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절반은 운이고 절반은 실력이야라고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열기가 잦아들면 곧 사람들은 그 일을 잊어버릴 것이다. 어떤 일이든 끝은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은퇴한다. 그 사람이 얻은 것, 그 사람이 기른 것을 들고 떠나야 한다. 돈이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니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품위이지

 

그는 스크린에서 항상 품위를 유지했습니다. 예절을 중시하는 그의 자세는 평생 변하지 않았지요. 스콧이 경찰관 같고 항상 정의의 편이라는 역할은 자리 잡고 있어 다소 질릴 수도 있지만 남녀노소 안심하고 볼 수 있다는 게 스콧 서부극의 변함없는 매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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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나운 서부극이 자료실에 올라 온 것을 기념으로 랜돌프 스콧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머지 글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씨네스트에 올라 와 있는 랜돌프 스콧 주연의 래나운 시리즈(순서대로 안봐도 됨) 


1. <7인의 무뢰한>(Seven Men from Now, 1956) 
2. <톨 T>(The Tall T, 1957)
3. <선다운의 결전>(Decision At Sundown, 1957) 
4. <라이드 론섬>(Ride Lonesome, 1959)
5. <코만치 스테이션>( Comanche Station,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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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S 토마스모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혹시나 단순하게 본문을 받아들이는 분이 잘못된 사실관계를 가져갈까봐 부연합니다.
단순히 산술적 수치로 서부극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는 존 웨인이 맞습니다. (무성영화 배우까지는 모르지만 유성영화 배우들만 치면)
과거 나무위키에 심지어 역마차가 존 웨인의 주연 데뷔작이라고 나와 있는 황당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나무위키는 아무나 수정이 된다고 해서 제가 수정을 해보았는데 실제 수정이 되긴 하더군요.
다작배우 존 웨인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이 없던 시대 심지어 미국에서도 엉터리 정보가 많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존 웨인은 '그 놈을 타봐 카우보이(나중에 안 제목이지만 Ride him, cowboy 라는 1932년 작품이죠) 으로 처음 주연을 맡은 이래 거의 40여년이 지나서야 오스카상을 받았다고 나와 있었는데 한동안 저도 그렇게 알았죠. 나중에 1930년에 23살 나이로 원톱 주연을 맡은 '빅 트레일'이라는 초기 걸작을 보기 전에는 말이죠. '빅 트레일' 부터 따져도 존 웨인은 '역마차' 이전에 숱하게 주연으로 출연했고 그 중 서부극만 해도 30편이 넘는데(대부분 주연) '역마차'가 최초 주연작이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죠.

존 웨인이 평생 출연한 서부극 숫자는 단순 산술적 수치로 약 80편이 넘습니다. 의외로 머니메이킹 스타가 된 40년대 후반 이후에 다양한 장르에 출연했지요. (물론 서부극이 훨씬 많음)
다만 진짜 서부극 팬 중 '게리 쿠퍼'와 '랜돌프 스콧'을 가장 서부극적인 배우로 꼽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랜돌프 스콧은 우리나라에 개봉된 13편의 영화 중(30년대 출연작이 개봉영화가 더 있을 수 있지만 일단 확실히 파악된 13편 중) 10편이 서부극이었습니다.
의외로 존 웨인과 출연한 '남성도시 (Pittsburgh, 42)'가 서부극이 아니었죠. 전문적인 서부극 배우 둘이 공연했는데 서부극이 아니었다는 게 독특했죠.

랜돌프 스콧의 작품 중 제가 참 좋아하는 '하오의 결투'가 후기 수작이지만 원래 존 웨인과 게리 쿠퍼의 '빅매치'가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질 뻔한 영화였지요.
(아마 랜돌프 스콧역이 게리 쿠퍼 였을 듯)

존 웨인이 랜돌프 스콧 보다 단순 산술적으로 서부극 출연 편수가 많았던 이유는 그가 더 다작배우였기 때문이지요.
지금보다 훨씬 다작을 찍던 30-50년대였지만 존 웨인은 그 중 대표적인 다작 주연배우였죠. 물론 신성일의 속도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참고로 저는 속사권총 대결 서부극에 맛을 들이면서 서부극에 입문한 처지라 존 웨인 서부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이 보다 보니 존 웨인도 가끔 속사 대결을 하긴 하더군요.
이 숫자를 제가 일일이 세어 본게 아니라 위의 수치는 일본의 서부극 전문가 오시하라 신씨의 자료를 가지고 쓴 것입니다. 오시하라씨의 말로는 주연급 56편은 드물다고 말하는데, 이 분의 문장이 좀 애매해서 오독한 것 같습니다. 영어권 자료를 보니 존 웨인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본문 수정하겠습니다.
22 bkslump  
퓨마와 일화는 ㅎㅎ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영화도 안본거 찾아봐야겠네요
9 그러꾼  
저도 존웨인의 최고작은 30년 빅 트레일이라고 색각합니다...엄청난물량동원에 정말놀랐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