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시간과 몽타주의 한계

영화이야기

헤어질 결심: 시간과 몽타주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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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co_cine_scene&wr_id=205729 (지난 글)


       영화에서 시간의 이미지인, 무드를 경험한다는 것은

     마치 오페라를 들을 때 어떤 구체적인 무드를 경험한 청취자가

     그 가사가 어떤 이야기(언어의 장벽 같은)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상상하거나 추리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의 장점은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요소로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몽타주의 장점과도 상통한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에서 설명적인 이미지가, 영화의 무드,

     즉 시간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논할 것이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보면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이 

       살인범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시퀀스가 있다.


          이 시퀀스의 각 장면 간 길이는 짧은 편이다. 

       그러나 이 시퀀스는 결코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비슷한 이미지들이 중복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반복되기 때문이다.

       아래 장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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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주인공이 동일한 산을 힘들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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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주인공이 동일한 곳에 비슷하게 요상한 포즈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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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주인공이 동일한 사람(피살자)을 바라본다.


         이런 비슷한 이미지들이 산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반복된다.

        따라서 장면 길이 자체는 길지 않지만 체감(?) 시간은 이보다 길게 느껴진다.

        이는 앞서 언급한 고다르의 반복 된 장면들의 씬과 다르다.

        고다르의 씬은 똑같은 행동들이 반복됐어도 편집 순서를 통념과 어긋나게 보이기에

        보는 이에게 혼란을 제공하고 이는 짧은 장면의 길이와 잘 부합된다.

        짧은 장면 길이의 템포는 혼란을 가속화된다.

 

         반면, “헤어질 결심”에서 동일하거나 비슷한 이미지들은 

      보는 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보는 이에게 영화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정밀하게 프로파일링을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런 이미지들의 반복을 보인다.


          이런 반복은 남녀 주인공이 비슷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산 정상에 올라간 이후의 모습에서) 모습에서도 계속 드러난다. 

        아래 장면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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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끄런 산에 올라가, 이상해진(?) 손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면서 

            여주인공이 진범임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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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행동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남주인공과 피살자의 행동이 비슷하다. 

                남주인공과 피살자는 산 정상에 오르고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시려 한다.

                이는 여주인공이 피살자가 물을 마시던 찰나를 노려 살인했다는 

                남주인공의 프로파일링을 친절히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 관계를 친절히 설명한다면 필연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의 이미지 관계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게끔 만든다.

                    

                    보는 이는 이 시퀀스를 보면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진범으로 확신하게 될 것이라는 정보는 알게 될 것이지만 

                   그 이상의 것은 제공받지 못한다.

                     

                      보는 이는 이 시퀀스의 이미지들과 강력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

                    영화의 이미지가 보는 이와 강력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이미지 관계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고다르의 씬에서 보인 통념에서 어긋난 편집 순서는 

                    보는 이에게 불편함도 제공하지만 왜 이런 편집을 했냐에 대한 

                    호기심도 유발한다. 보는 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헤어질 결심”의 시퀀스의 이미지 관계에서 

                    그런 것이 있는가?


                       이미지에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면 영화의

                     무드 또한 느낄 수 없다.

                     무드를 느끼는 것은 깊은 교감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어질 결심”의 시퀀스에서 보인 비교적 짧은 장면의 

                길이(속도)와 일방통행적인 이미지관계(교감을 못하는)는 고다르의 씬처럼 

                긴밀히 연결되었다고 할 수 없다. 템포와 이미지 관계가 따로 논다. 


                  줄거리에 의존하지 않는 고다르의 씬은 적은 요소로 

             보는 이에게 많은 것을 전달한다. (물론 보는 이가 많은 노력을 하면 말이다.)

             시간의 이미지, 즉 무드가 강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줄거리에 의존하여, 극의 설명적 이미지를 나열하는 

           “헤결”의 시퀀스는 많은 요소를 동원함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에게 줄거리 이상의 것은 전달하지 못한다.

           시간의 이미지, 무드가 빠져있게 때문이다.

                      

                        부언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시퀀스에서 보이는 

                 일방통행적인 이미지 관계는 

                 줄거리를 떼고 보면 그다지 긴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선 이 시퀀스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장면들이 나온다.

                 보는 이를 충분히 이해시켜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지 자체가 너무 많기에 장면들 간 관계가 산만하다.

                 (물론 줄거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 장면들 간의 관계는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지만 말이다.) 


                      다음 씬의 관계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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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들에서는 남녀가 붙잡은 손, 밧줄을 묶는 손, 

               물통을 든 손이 차례로 보이는데 도무지 이것들이 

              형태적으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필자로써는 알 수가 없다. 

              단순히 영상에는 손의 각 행위만 보일 뿐, 

              이 행위들이 왜 같이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통일적인 묘사가 빠져있다.   

              이 손의 이미지들은 줄거리를 전달하기 위한 기호의 나열일 뿐

              독자적인 미적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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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누가  
두 편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미치광이 피에로' 분석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번 '헤어질 결심' 분석에 조금 의문인 부분이 있어 댓글 남깁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이미지들이 보는 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신 부분에 동의합니다. 다만, 과연 그것 뿐일까요? 저 시퀀스가 그러한 방식으로 편집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해준이 서래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점점'입니다. 해준은 형사이기 때문에 서래의 행동을 따라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따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사이기 때문에 따라했지만, 해준은 서래와 본인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점점' 빠져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내와 섹스를 할 때에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하지만 그의 리비도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서래와는 시간이 분명 다름에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리비도는 급격히 요동칩니다. 서래가 올라가는데, 해준이 바로 옆 돌에 붙어있는 환상 쇼트도 그래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손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씬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손이 등장하는 씬 이전에, 해준은 형사이기 때문에 기도수에게 자신을 대입하여 사건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 등장 씬에서 기도수의 손보다 서래의 손이 먼저 등장하고, 두 손이 맞닿은 다음, 기도수의 손이 등장합니다. 서래의 손을 먼저 보여주어 해준이 산을 오르며 서래에게 빠져들었다는 것과 기도수의 손을 나중에 보여주어 그가 아직 형사로서의 책무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뒤에 가서도 그는 자신이 형사라는 것, 그로부터 생기는 자존심을 여전히 갖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엔딩에서는 형사로서의 자의식을 완전히 버리고 서래씨를 외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시퀀스를 보며 단순한 정보뿐만이 아닌 무드를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