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놓치지 마세요 - 2

영화이야기

이 영화를 놓치지 마세요 - <중혼자>2

15 하스미시계있고 10 1236 2

지난 글 보기: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co_cine_scene&wr_id=205636

 

이 영화의 주 무대는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해리와 이브가 사는 곳이고, LA는 해리의 근무지이며 필리스와 사랑에 빠지는 장소이지요.

영화가 시작되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오클랜드 베이 브리지가 보이고 다음 쇼트에서 샌프란시스코 언덕 길에 있는 건물을 설정 쇼트로 보여줍니다.([사진1]) 해리와 이브는 지금 양자를 입양하기 위해 이 건물 안에 있는 조던 씨의 사무실에 들른 것입니다. 조던 씨는 입양 기관 담당자입니다. 그는 입양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해리의 표정을 보고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발견합니다. 양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 심사를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을 하자 해리의 표정에 어두운 기색이 비쳤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입양 조사관인 조던은 해리의 근무지인 LA까지 탐문 조사를 하러 옵니다. LA 씬을 따라가보면 유니언 역에 조던이 도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두 번째 설정 쇼트로 벙커 힐 거리의 건물을 보여줍니다.(사진2)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이 지점입니다. 샌프란시스코와 LA의 설정 쇼트가 똑 같습니다. 지역의 랜드 마크를 먼저 보여주고 언덕길에 있는 건물을 카메라로 틸트 다운해서 찍는 방식이지요. 비슷한 두 곳의 언덕길을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샌프란시스코인지 LA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연출상의 미숙함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인데 왜이렇게 찍어야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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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3] 부부의 집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사진1)와 해리의 근무지가 있는 LA(사진2)를 보여주는 설정 쇼트.

아내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 못하고 낙심한 채로 LA 거리를 걷는 해리의 모습(사진3) 
 

야외 로케이션을 LA에서 대부분 했기에 비용 절약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언덕길도 사실상 LA에서 찍은 것이라는 답변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샌프란시스코는 언덕길이 아닌 다른 장소를 찍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굳이 왜 동일 장소처럼 보이게 언덕길을 찍었냐는게 질문의 핵심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아이다 루피노의 의도된 연출입니다. 영화에서 해리는 두 가정을 가지게 되면서 고난의 언덕길을 걸어야 하고 사실상 그의 커리어는 내리막으로 치닫게 됩니다. 기울어진 비탈길은 앞으로 겪게 될 해리의 삶에 대한 복선입니다. 이 영화보다 2년 뒤에 개봉되는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에덴의 동쪽>(1955)을 보면 트래스크 일가의 집 실내를 보여줄 때 카메라 앵글은 극단적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붕괴 직전의 가정을 묘사하기 위해 엘리아 카잔이 선택한 무모하리만큼 뻔뻔한 화면 구도입니다. 두 영화를 비교한다면 인물의 운명, 불안한 심리 등을 아이라 루피노는 건물 바깥에서 묘사를 했다면, 엘리아 카잔은 가정 안에서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가 언덕길의 형태에 주목한 설명이라면, 언덕길이든 뭐든 상관없이 왜 다른 지역을 동일 공간처럼 보여주는 설정 쇼트를 사용해서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조금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해리는 아내 이브와 잠자리가 원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들부부의 결혼 생활이 8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아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침실을 보여줄 때 침대가 더블베드라는 점도 그들의 성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브는 해리를 아이처럼 취급합니다. 해리가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이브는 입양아에게 줄 장난감 병정을 소리 나게 해서 깨웁니다. 군인처럼 씩씩해져라는 뜻으로 그녀가 아이에게 줄 선물이지만 그것은 해리에게 하는 명령처럼 들립니다.

 

이브는 해리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않습니다. 해리가 필리스를 처음 만난 사실을 그녀에게 털어놓아도 대수롭지 않은 농담으로 넘깁니다. 다른 가정을 가졌음을 고백하려 할 때도 해리의 말을 잘라버리고 자기 말만 합니다. 그러면서 이브는 해리에게 집안에서 내려오는 회중시계를 선물합니다. 그 시계는 집안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이브 집안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브는 할아버지가 이 시계를 가지면 더 사내다울 수 있다고 했어라고 덧붙입니다.

장난감 병정과 회중시계를 선물하며 전통적 남성성을 강조하는 이브는 아내라기보다 엄마 같은 존재이며 남성성을 강요받는 해리는 아이처럼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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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6] 해리와 이브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쇼윈도 장면
 

해리와 이브의 부부 생활이 냉각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이 아이러니하게도 냉장고라는 점입니다. LA 근무지에서 외로움을 느낀 해리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두 사람만의 대화는 거의 없고 사무적인 이야기를 나눕니다.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진 해리가 호텔을 나와 거리를 걸을 때, 아내에 대한 해리의 생각이 독백으로 이어집니다. ‘이브는 저의 전부였어요...’ 그 때 화면에 보여지는 것은 쇼윈도 안의 마네킹입니다.([사진4~6]) 해리에게 이브는 쇼윈도 안의 고급 옷을 입은 마네킹으로 여겨졌던 것이지요.

해리가 사람들에게 이브를 소개할 때 두 사람의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관계로 설명합니다. ‘이브가 머리라면 저는 몸통입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전통적인 부부 관계가 아니라 아내가 남편을 위에서 지시하고 조종하는 관계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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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9] 해리가 필리스랑 데이트를 할 때 옆 자리에 있는 남자(사진7), 호텔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해리(사진8),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집 거실(사진9) 

 

해리는 LA에서 필리스를 만나고 감정적으로 끌립니다. 그녀는 중국식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웨이트리스입니다. 필리스를 따라 그녀가 근무하는 레스토랑를 방문한 해리는 옆 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잠시 쳐다봅니다. 얼굴에 깊은 상처가 나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범죄자의 얼굴입니다.([사진7]) 해리가 바라보는 것은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필리스와 첫 데이트를 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해리는 아내에게 전화를 겁니다. 자신이 바람핀 것을 고백하지만 아내는 들은 척 만 척하고 딴 이야기를 합니다. 전화 통화 후 카메라는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을 잡고 있습니다.([사진8]) 해리의 샌프란시스코 집을 보여줄 때, 집 안의 창문은 열려있고 커튼이 하늘거리는 장면이 등장합니다.([사진9]) 그가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LA 숙소에서 해리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있고,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집은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창이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LA의 집은 어떤가요? 해리와 필리스가 함께 차린 그들의 신혼집은 방갈로형 집입니다. 샌프란스시코의 고급 맨션과 대비되는 이 집은 방 두 칸에 거실이 전부입니다. 카메라에 잡힌 이 공간은 작고 밀폐된 느낌이 듭니다. 입양 기관 조사원 조던이 늦은 밤 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해리의 표정은 피곤에 절은 얼굴입니다. LA에서 이중 결혼으로 부부가 된 필리스와 해리에게는 어느새 아이가 생겼고 그들은 아이를 키우느라 지쳐있습니다. 아마 두 사람은 교대로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그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나 LA에서나 해리는 외롭습니다. 이제 처음의 설정 쇼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해리는 어느 장소에서나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장소의 쇼트가 유사하게 찍혔습니다. 1953년에 아이다 루피노는 두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하나는 연쇄살인마에게 납치된 두 명의 중년 남자를 다룬 <히치하이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입니다. 두 영화 다 남성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주인공 남성들은 각각 살인마와 두 가정 사이에 갇힌 존재들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류 가정을 벗어나 자유를 꿈꾸었던 해리는 LA에서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영화의 플롯을 가지고 설명하려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해리가 외로움의 원인과 이 영화의 전복적 플롯에 관한 내용은 다음 글에 이어가겠습니다.

 

p.s. 영화 <중혼자>Harrum님의 정성스런 번역으로 자료실에 올라와 있습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해서 꼭 보시길 바랍니다.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2062619&sfl=mb_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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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14 Harrum  
맷 데니스 음반에 실린 곡으로 듣고 있습니다.
루피노 할매 연기에 홀려서 묵묵히 작업만 했고, 사실 영화에는 큰 감흥은 없었죠.
그런데 지금에야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제가 놓치거나, 이해하지 못 했던 지점이 쓰신 글에 바로 나오네요. (족집게?)
암수님,, 소서러님, 컷과송님 감상도 듣고 싶고.
(안 보셨다면 다음에라도 꼭)

이 곡에 위스키 한 잔 딱 생각나네요.
감상글이 더 남았다는 사실, 키핑하는 느낌. ㅎㅎ

위스키는 싱글 몰트, 그 중에서도 아일라 위스키.. 아 이건 미국 영화니까 버번 위스키나 테네시 위스키가 어울리겠네요.
12 Lowchain232  
글 읽다보니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찍는 방식이 생각나네요.
샌프란시스코의 언덕길을 찍었다는 점에서 <현기증>과 분명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히치콕이 샌프란시스코의 언덕길을 로케이션 장소로 선택한 건 비탈길이었기 보다 (제목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빙글빙글 꼬여있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스코티가 마들렌을 추격하는 장면은 이리저리 꼬여있습다. 그것은 영화의 뒤틀린 구조랑 유사하지요. 아울러 미술관에서 마들렌을 바라볼 때 그녀의 헤어스타일도 현기증 나듯이 빙글빙글 도는 모양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지금 영화관에서 프랑수아 트뤼포의 <쥘과 짐>이 상영중입니다. 트뤼포가 <현기증>을 보고 4년 뒤에 만든 영화인데 두 영화가 대단히 유사합니다. 왜 사람들이 이 부분을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는데 두 영화 모두 빙글빙글 도는 소용돌이 구조입니다. <쥘과 짐>에서는 심지어 영화 속에서 부르는 노래까지 ‘소용돌이’라는 제목입니다. 다시 말해 트뤼포는 <현기증>을 멜로드라마로 만든 것입니다. 여주인을 환상적인 프로필로 잡는 모습, 익사롸 관련된 테마 등 유사성이 매우 많은데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34 금과옥  
강력 추천하셔서 자료 당겨오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ㅎㅎ~
꼭 보십시오. 만족하실거예요^^
S 한움  
백번 공감이 가는 쉽게 쓴 멋진 영화 분석 고맙게 잘 보았습니다.

중혼자를 보면서 20년 전에 간통으로 감방에 다녀온 후배가 억울함을 호소하던 생각이 나네요 우리나라 간통법이 벌금형이 없이 징역형만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누구는 진정한 사랑은 간통 밖에 없다고 하는데
진정한 사랑은 간통 밖에 없다고 한 그 누군가가 궁금합니다^^
다음 글에 간통, 이 영화에서는 중혼죄에 대한 아이다 루피노의 시각을 이야기 할 생각입니다.
20 zzang76  
그렇게 재밌고 유명한 영화인가요? 지금 완료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유명하지도 않고 (보기에 따라) 그렇게 재미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