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각인(서문과 1장) 요약정리겸 해석

영화이야기

시간의 각인(서문과 1장) 요약정리겸 해석

2 김김김기미 0 5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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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5p-24p

그는 과거의 영화사 저술들을 읽어보았지만,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영화창작 원칙과 목적을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싶어졌고, 다양한 수많은 관객층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마침내 이 책으로 머릿속의 영화와 예술에 대한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관객들의 편지를 주의 깊게 읽은 그는 때로는 낙담하고 때로는 영감을 얻고 어떨 때는 희망을 주기도 하였다.

 

이 책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독립적이고 완전한 나 자신을 영화에서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쓴 것이다. (영화란 예술을 통하여 자신의 이상적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또한, 영화의 몇몇 법칙을 밝혀보고 싶은 영화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고자 쓴 것이다.

 

 

(1: 시작) 25p~52p

그는 [이반의 어린 시절] 제작 경험, 영화미학을 바라보는 확고한 관점 수립의 필요성, 다음 영화촬영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발견했다.

 

모든 소설을 영화로 각색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문학을 영화에서 마침내 분리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원작인 보고몰로프의 [이반]은 사상적 의도, 탄탄한 구성, 독특한 주제를 가졌지만, 그 안에 담긴 사상을 미학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이 보이는 문학에 속한다.

 

그는 영화에서 자신을 매료시키는 것이 시적 연결과 시의 논리라 말하였다. 시적 논리는 전통적 드라마 논리보다 사유의 발전법칙에 가깝다고 말하는데 즉 삶 자체에 가깝다 말하는 것이다.

 

시적 연결형식이 감정을 고양 시킬 때 관객은 크게 반응하게 된다. 플롯에서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삶을 발견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어떤 대상에 관해 모든 것이 말해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더 생각해볼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렇지 않다면 결론은 관객이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만들어진다. 아무 수고 없이 만들어진 결론은 관객에겐 아무런 필요가 없고, 작가는 관객들이 필요로 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기쁨을 같이 나누지 못한다.

 

예술가가 관객에게 더욱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 두 역할을 같은 선상 올려놓는 유일한 길이고 이런 관계는 예술적으로 실천해볼 가치가 있다.

 

시적 형상들 속에서 인생의 탐구자뿐만 아니라 높은 정신적 가치, 시에만 있는 특별한 미의 창조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예술가는 존재의 시적 조직 (삶의 미묘한 관계, 심오한 현상에 담긴 특별한 본질, 삶의 깊은 복잡성과 진리)에 담긴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작가의 주관적인 상과 현실의 객관적 묘사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떠나서는 신빙성, 내적 진리, 핍진성(진실해 보이는 정도나 질)을 달성할 수 없다.

 

이론의 여지 없이 일상적인 현실에 속하는 그것들이 예술에서는 인위성의 영역에 해당한다. (이해를 위한 예시: 1. 폭발하는 cg를 너무 많이 봐서 실제로 폭발한 것(현실)을 찍었음에도 cg(인위성)처럼 느끼는?

2. 현실과 일상에서는 뚱뚱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발이 아주 빠른 사람이 영화 속에서 그를 처음 보는 관객들은 그저 뚱뚱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발이 느릴 것이라는 관념이 있다. 그런데 만약 영화 속에서 그가 있는 실제 그대로 빠른 모습이 나오면 관객은 실제로도 빠른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연출이 빠르게 한 것처럼 조작하였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는 발전을 거듭하며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들과도 멀어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점점 독립적인 예술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발전과정은 원하는 만큼 빠르지 않다. 과정은 길고 단계들도 각기 다르다. 그는 이러한 이유를 다른 예술의 고유하고 특수한 원칙들을 가진 감독들의 그 원칙들을 어느 정도는 영화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영화의 특수성 확보를 막는 장애물이 되어가고 이러한 영화 자신만의 수단을 통해 현실을 구현하는 능력을 부분적으로 상실했다는 것이다.

 

다른 예술의 특징을 영화에 사용할 경우 작가(감독)와 삶(, 영화) 사이에 장벽이 가로놓이고 더 오래된 예술들에 의해 세워진 해결책들이 이 둘의 사이에 끼어든다.

(즉 음식으로 예시를 들자면 후라이드 치킨에 양념을 넣은 요리가 나온다. -만약 여기서 이야기를 더 나아간다면-이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쉬워서 많은 요리사들이 이를 따라 하고 주류(다른 예술적 특성이 들어가고 영화적 특성을 상실한)가 되었지만 정작 본래의 오리지널 치킨인 후라이드(영화적 고유 특성이 잘드러난)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가며 그 본래의 치킨 맛을 원하던 사람들이 그 본래의 맛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한다(내 생각에는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타르코프스키).

 

그가 볼 때는 핍진성과 내적 진리는 사실에 충실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느낌의 전달에 충실한 데서 나온다. 만약 실제로 어느 인물이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을 한 당시 인물의 감정을 영화로 재구성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면 그 상황만을 기계적으로 철저한 상황 재구성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하기 이전의 인물의 정신 상태까지 신경 써서 실제와 유사한 분위기를 관객에게서 조성해야 한다.

 

삶 속의 에피소드 중 어떻게 저런걸 생각할 수 있지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평소와 같은 치밀하게 자연스러운 미장센이 아닌 무언가 툭 튀어나오며 맞지 않은 미장센의 불합리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미장센은 복잡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미장센은 묘사되는 행동의 핍진성과 예술적 형상의 아름다움의 깊이(아름다움의 정도나 등급? 완성도?)로 놀라게 해야지 그 의미를 억지로 예시하여 놀라게 하는 것은 안된다. 만약 이런 경우에 후자의 방식을 선택한다면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고 관념의 천장이 만들어진다. 그 천장 너머에는 생각의 심연으로 가득 찼던 것이 텅 비어 버리게 된다.

 

(2장 이상을 향한 동경으로서의 예술)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인간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사람들에게 제기하는 것은 상업적 목적을 제외한 모든 예술의 목적이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자기인식은 모든 사람의 삶의 유일한 목표이며 고유한 자아가 부족한 것은 인간 불만족의 영원한 근원이다.

 

예술은 정신적인 것과 이상을 향한 영원한 동경이 존재하는 곳에서 탄생하고 정착한다.

 

현대예술은 개인의 가치자체를 위해서 존재의 의미와 탐색을 포기하여 잘못된 길을 걸었다.

 

예술창작에서 예술가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빼어나고 뛰어난 사상에 봉사와 종복을 한다. 오직 이러한 예술에 대한 희생만이 진정으로 자기주장을 표현하는 것임에도 현대인은 어떤희생도 하지 않는다.


2장은 나중에 올릴수 있을지...


영화이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책이 너무 재밌고 흥미롭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어렵다... 하지만 힘들게 나만의 방식으로 분석과 해석 그리고 이해를 하고 나면 이 책은 그진가가 엄청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진가를 알아내기가 너무 고난이도...


나중에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4권들 요약도 올릴예정이긴 하구요 또한 영화의 맨살, 오즈야스지로 같은 책들도 한번 도전? 해볼 생각입니다! 


(잠시 한탄의 소리)고3이 되어버린나... 이제 입시가 바로 앞까지 왔지만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공부는 안하고 이런책이나 읽고있으니... 밑바닥과 같은 성적... 장르누아르(1936)와 구로사와 아키라(1957)의 밑바닥(지하세계)이 생각나는 새벽에  원작자 고리키의 명언과 함께...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다


               Андрей Тарковский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Andrei Tarkov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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