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와 존 카사베츠: 현대 영화의 두 거목 7부

영화이야기

장 뤽 고다르와 존 카사베츠: 현대 영화의 두 거목 7부

     *참고문헌

  존 카사베테스의 영화들 레이카니 저


    지난 글에서 카사베츠 영화의 기괴함에 대해서 논했다.

   카사베츠 영화의 기괴함은 혼란과 밀접하고 이는

   템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런데 그러한 혼란은 배우의 연기에서도 매우 잘 드러난다.

   

    카사베츠가 그토록 혼란한 상황을 추구한 이유는 

   적어도 카사베츠에게는 그것이 실제 경험을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카사베츠는 차단과 빗나감의 순간들이야말로 

 바로 경험 그 자체라고 우리들에게 말한다. 

 공간적/시간적 혼란상태 너머로 순수한 

 상태의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혼란상태만이 존재할 뿐이다.”


     카사베츠는 혼란을 추구하면서 

   어떤 영화에서도 살펴보기 힘든 육체적 생동감을 제공한다.


     “.....평론가들은 신체, 얼굴표정, 어조가 

     전혀 다른 부류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음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카사베츠의 영화들은 추상적이고, 관조적이고,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의미가 아니라 활동적이고, 육체적이고, 

   개념으로 분리될 수 없는 의미들을 제공했다. 

  <영향을 받는 여인>은 우리의 영혼은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의 정신은 육체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킨다.”


    “....즉 카사베츠 영화 속에서 ‘죽어 쓰러지는’ 동작이 행하는 

   기능들 가운데 하나는 관객과 등장인물 모두를 현실의 지표면으로

  끌어내리는 일이다. 쓰러짐 및 일어섬의 동작과 관련된 사건들, 

  그리고 신체 전반과 관련된 사건들은 카사베츠의 

  많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것들이 등장인물들을 

  그들의 머리로부터 끌어내 그들의 두 발을 

  다시금 땅 위에 내딛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관념적인 사상의 비약 아래에 존재하는 

  세계를 인정하도록 강요받는다.”


        레이 카니의 통찰력은 

       카사베츠 영화에서 혼란스러움을 뿜어내는 캐릭터들의 무수한 이미지들에서 입증된다.  

       “A woman under the influence”의 한 씬을 보자.


        이 씬에서는 여 주인공이 정신병이 재발하고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광경이 나온다. 여 주인공은 빡돌은 남편이 너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죽여버리겠다고 하자 정신이 돌아온다. 

        이 씬들 내내, 정신 나갔던 여 주인공은 아이들에게 관심조차 없었지만 

       남편한테 한 대 맞고, 아이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이 닥치자

       정신을 차린다. 


        보통, 영화에서 이 상황을 묘사한다면 울고 있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클로즈업 하고 이들을 어머니(여 주인공)와 시선 교환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여 주인공이 아이들과 유대 관계를 통해서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씬에서는 그러한 유대 관계가 약간은 있지만 

        그보다는 혼란 때문에 넋이 나간 듯한 여 주인공의 모습이 훨씬 강조된다. 

        아래 장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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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베츠에게는 이런 장면들이 육체의 진정성을 담은 것들이다.

        실제 삶에서 어떤 충격적인 상황을 접했을 때 

       우리의 감정이 혼란을 겪지 않고 표현될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머뭇거리거나 벙찐 순간들도 함께 경험할 것이다.   

       더구나 여 주인공은 정신병을 겪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상황이기에

       혼란이 극에 달해있다. 위와 같이 넋이 나간 장면들을 실로 진실하다.

       이런 이미지들이 카사베츠가 원하는 육체적 생동감이다. 

       이런 감정의 장면들은 많은 영화에서 획일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과정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씬 들을 자세히 보면 카사베츠는 극의 혼란을 훨씬 

        가중시키기 위해 어떠한 장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존재다. 비전문배우들인 이 아이들은 이 씬 들 내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른다. 


            여 주인공을 쫒아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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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한테 매달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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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한테 끌려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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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을 갖고 몸 싸움을 벌이는 부모의 곁에서 괴성을 지르거나 한다.

          (아버지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아버지를 제지하는 모습 같아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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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베츠는 직선적인 극의 흐름을 끊고 

        관객 및 등장인물을 무수한 옆길로 빠뜨리기 위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장면 속에 해체적인 장치들을 집어넣었다. 

       그는 지나치게 정돈된 표현들을 흩트려 놓으려 노력했다. 

       괴상하게 빗나가고 옆길로 새는 효과들은 그가 의도적으로 엮어낸 결과물이다. ”


      "어떤 장면이 다음 순간에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한 순간에서도 그것의 분위기나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불투명 상태를 창출하기 위해 카사베츠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들 

       중 하나는 시각적 중층화이다. 즉 같은 순간에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게 함으로써 그것들에 대해 

       하나의 개념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없도록 만든다."


    이 씬들에서 아이들의 존재는 레이카니가 지적했던 샛길이자 

      시각적 중층화를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안 그래도 심각한 부부 간의 갈등을 그야말로 카오스처럼 만들어버린다.

     보는 이는 아이들의 존재 때문에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그런데 아이들의 존재는 보는 이를 얼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정말 본질적으로 기능을 하는 것은 여 주인공인 지나 롤랜즈의 연기를

     극한치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다시 아래 장면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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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장면들에서 지나 롤랜즈는 진심으로 피로하고 넋이 나간 표정이다.

       결코 흉내를 낸 모습이 아니다. 이는 아이들의 존재가 보는 이에 앞서

       지나 롤랜즈를 혼란하고 얼얼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카사베츠는 연기자들이 극의 세계에 뛰어들어 그것을 실제 체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원했다. 단순히 흉내를 내는 차원이 아니라 

       그 감정을 실제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이런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카사베츠는

       관객뿐만 아니라 연기자들도 실제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 결과 이러한 특이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강렬한 이미지들이 나올 수 있었다.


         카사베츠는 여러 혼란스러운 장치를 하면서 연기자들의 (다르게 말하면 연기자들을 힘들게 만들어) 

       생동감 있는 육체적 이미지를 뽑아내어 관객에게 선사했다.

       이는 분명 영화사에 전례가 없는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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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3 킹오뚜기  
11 oO지온Oo  
흥미진진하군요.
다음에 또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음 글들을 또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1 타바스  
7부는 내용이 좀 부실했는데 (피곤한 상태로 써서 ㅋㅋㅋ)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부는 나중에 보충 글을 다시 올릴까 합니다. 그리고 고다르&카사베츠 글은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았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둘 간 비교 하지도 않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