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이야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아프리카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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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부터 시작된 영화의 전당 '서머 스페셜 아프리카 오디세이'가 이제 3일 남았습니다. 기획전 스케쥴이 이상한 것은 이 사이에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국제 해양영화제',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환경 영화제'링 겹쳐서 중간에 공백이 두 번이나 생겨 흐름을 잘라먹기 때문입니다. 이 두 영화제가 나름의 야심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보여주기식 구색 맞추기의 영화제로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양영화제는 2017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고 하지만, 올 6월에 이미 <바다와 영화>라는 기획전이 이루어진 상태인데 또 이런 영화제를 개최한다는게 주최측의 사고의 아둔함으로 보입니다.

이왕 '해양 영화제'가 잡혀 있다면, 기획전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어야죠. 게다가 연이어 "환경 영화제'는 또 뭡니까? 바다, 해양, 환경은 하나로 뭉쳐서 기획될 수도 있는 건데 이렇게 쪼개서 상영하는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신임 대표 이후 뭔가 보여주기식 행정의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영화제 숫자만 늘이고 알맹이는 빈 것이라는 말인데, 사실 해양 영화제나 환경 영화제 선정 작품들이 몇 편되지도 않고 어떤 것들은 이미 수입된 영화에다 억지로 영화제에 끼워 맞춘 느낌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각설하고, 7월 중순부터 8월 18일까지 이어지는 '아프리카 오디세이'는 어떤가 살펴보겠습니다.


상영작(22편)


무피다 틀라틀리 (3편)

남자들이 오는 계절 (2000) / 나디아와 사라 (2004)

궁전의 침묵 (1994 - 1회 무료 상영)


아프리카의 기억 (6편)

오셀로 (1951, 오슨 웰즈) /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데이비드 린)

아웃 오브 아프리카 (1985, 시드니 폴락) / 코브라 베르데 (1987, 베르너 헤어초크)

잉글리시 페이션트 (1996, 앤서니 밍겔라) / 콘스탄트 가드너 (2005,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 1회 무료 상영)


미지의 오디세이, 아프리카로의 여행 (13편)

카이로 역 (1958, 유세프 샤힌) / 알렉산드리아…왜? (1979, 유세프 샤힌)

오, 태양 (1967, 메드 혼도) / 웨스트 인디스 (1979, 메드 혼도)

만다비 (1968, 우스만 셈벤) / 미라 (1969, 샤디 압델 살람)

투키 부키 (1973, 지브릴 디옵 맘베티) / 천 개의 태양 (2013, 마티 디옵)

하이에나들 (1992, 지브릴 디옵 맘베티)

바람 (1982, 술레이만 시세) / 일린 (1987, 술레이만 시세)

아부나 (2002, 마하마트-살레 하룬) / 다라트 (2006, 마하마트-살레 하룬)


제가 보기에는 절반의 성공 정도로 보입니다. 우선 아프리카 대륙에 국가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나라가 55개국입니다. 이것은 한국 영화를 아시아 영화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설명하는 것처럼 무리한 기획입니다. 아프리카는 언어, 종교, 문화적 성격에 따라 권역이 다릅니다.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사하라 사막을 기준으로 그 윗쪽을 마그렙이라고 하고, 아래 지역을 블랙 아프리카라고 합니다. 이 큰 지역을 다 하나로 묶을 수 없기에 오래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사하라 이북 아랍 문화권 지역의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이 세 지역의 영화만 묶어서 '마그렙 영화 기획전'을 했습니다. 마그렙은 '해가 지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아프리카 영화'라는 광범위한 카테고리로 묶기 보다는 '마그렙 영화'라는 협소한 개념의 기획전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영화의 전당에서는 7월에 '아랍 영화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아랍권은 다시 '마쉬렉'이라고 해서 '해가 떠는 곳'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쿠웨이트 같은 나라들이지요. 차라리 이 영화들을 합쳐서 '마그렙과 마쉬렉 영화들' 기획전을 준비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소개된 영화 섹션 중에 '아프리카 기억'이라는 것을 한번 보십시요. 아마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는 아프리카를 침략한 식민지 본국의 제국주의 영화들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가 독립하면서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제국주의의 시각에 저항하는 영화였습니다. 이제 저런 기존의 시각을 가진 영화들보다는 더 많은 아프리카 지역의 영화들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게다가 오손 웰즈의 <오셀로>는 주인공 오셀로가 무어인(아프리카 이북 사람) 것 외에는 별다른 아프리카적 특성이 보이지도 않는 영화입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나 <잉글리쉬 페이션트> 같은 영화도 그냥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로맨스 영화에 불과하지요. '서양 영화들 중에는 아프리카를 자신들의 로맨스의 무대로 활용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이 섹션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을까 합니다. 만약에 정 그러고 싶다면, 평론가나 프로그래머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서구적 시선의 문제' 같은 강연이 마련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이런 식의 섹션이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를 여전히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기획전 속의 기획전으로 소개된 튀니지의 무피다 틀라틀리는 이름은 듣고 알고 있었지만 처음 작품을 접하게 된 튀니지의 여성 감독인데 작년에 코비드-19로 사망을 했고 그 분의 전작 세 편이 다 공개되는 것이이게 일종의 추모 기획전으로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 중에는 상당수가 식민지 제국주의와 전통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같은 주제 의식이 강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틀라틀리의 작품은 후자에 속하며 튀니지 여성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선정한 프로그래머가 어떤 부분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은 갑니다. 여성의 대상화와 남성의 시선, 그런 남성에 시선에 종속되는 여성의 시선.. 영국의 영화학자 로라 멀비가 70년대 중반에 내놓은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라는 글이 나온 이후로 여기에 자극을 받은 엄청나게 많은 여성 영화들이 나왔고 그 중에는 탁월한 작품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너무나 뻔한 이 영화들을 굳이 선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획전 최고의 성과는 이집트의 사디 압델 살람의 <미라>(1969)를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인 이 작품은 이집트 유물 도굴과 관련하여 전통의 부족 사회와 현대 이집트 사회가 충돌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고대 건축물과 사람을 보여주는 쇼트가 경탄할 만큼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더라도 '내가 걸작을 지금 보고 있구나'하고 감탄을 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앞에 소개한 오손 웰즈의 <오셀로>(1951)와 비교를 해볼만 한 작품입니다. 제 생각에 사디 압델 살람은 틀림없이 오손 웰즈의 이 걸작을 보고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쇼트가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많기 때문이지요. 연속으로 두 작품을 본 날은 기쁨에 들떠서 잠을 설칠 지경이었습니다.


씨네스트에도 자막이 번역되어 있는 세네갈의 지브롤 디옵 맘베티 감독의 <투키 부키>(1973)은 언제봐도 걸작입니다. 영화에서 섹스씬은 모던한 감각으로 찍는다든지 마지막 다카 항구에서 남자 주인공이 달리는 모습은 고다르의 영향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사실 아프리카 지역의 영화 감독 중에는 프랑스의 누벨바그나 에이젠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은데 <투키 부키>가 그런 느낌이 들지요. 이 작품과 묶어서 상영된 영화는 맘베티 감독의 조카 마티 디옵의 <천 개의 태양>(2013)입니다. 마티 디옵은 2019년에 <아틀란틱>이라는 아주 훌륭한 영화를 만든 여성 감독인데, 그 전에 만든 <천 개의 태양>은 <투키 부키>의 남자 주인공인 마가예 니앙의 삶을 추적하는 세미 다큐입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뒤 40년 뒤의 소를 모는 평범한 농부로 니앙이 등장할 때, 음악은 <하이눈>의 그 유명한 노래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이 흐릅니다. 알고보니 니앙은 <투키 부키>의 주인공처럼 다카의 항구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가슴 아픈 이별을 했고, 영화는 이제 니앙의 옛 사랑을 찾아나섭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하이눈>의 주제곡 가사 '사랑하는 사람아 나를 버지지 마세요'라는 구절을 듣고 있으면 벅찬 감격에 눈물을 흐르게 만듭니다 영화 내내 <투키 부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니앙의 비루한 모습은,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에 나오는 벤투라의 그것과 겹쳐지는 것 같습니다(이 다큐가 씨네스트에 번역되기를 바랍니다).


재주가 있기로는 모리타니의 메드 혼도를 따를 수가 있을까요. 식민지 본국 파리에서 겪게 되는 모리타니 남성의 모습을 통해 제국주의를 비판한 <오, 태양>(1967)은 모리타니의 고다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뛰어난 발상과 통렬한 풍자가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씨네스트에도 번역되어 있으니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 영화 1세대인 세네갈의 우스만 셈벤의 <만다비>,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의 <아부나>, 슐레이만 세시의 숨막히게 아름다운 <일린>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끝으로 우리 시네스트에 블랙 아프리카 최초의 작품이라고 영화사적 의의를 가지는 우스만 셈벤 감독의 <보롬 사렛>(1963)가 최근에 하룸님 번역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단편이기에 조금만 시간을 내면 볼 수 있습니다.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2017732&sfl=wr_subject&stx=%EB%B3%B4%EB%A1%AC&sop=and) 이번 연휴에 좋은 작품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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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Comments
24 umma55  
<미이라>는 정말 걸작이죠.

말씀대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서구영화를 껴넣은 거 보고 기함했습니다.
 ㅠㅠ
<미라> 보셨군요.. ㅎㅎ <천개의 태양>은 보셨나요?
24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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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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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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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암수  
먼저 <미이라>는 선견지명으로다가 몇년전에 엄마님표 자막이 맹들어졌었는데..못보셨던듯 하네요..

글을 읽으니 저도 많이 공감이 갑니다..
먼저 기획전 뚝뚝 끊어 먹는 영화의전당 스케줄 횡포에는 진짜 따꿈하게 한마디 하고싶네요..
언젠가부터 기획전 사이에 다른 영화제 끼워넣어서 시간표 뻥 비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주말 두번을 빼먹더라구요..
그 덕분에 이번 기획전 단 한편도 못봤습니다..


그리고,,서양감독에 서양 배우들이 주연인..말그대로 배경만 아프리카를 빌려온 영화들을 순수 아프리카 영화 기획전에 끼워넣은 것도 맘에 안드네요..
차라리 다른 순수 아프리카 영화들을 넣는편이 더 나았을듯..
사하라 이북의 모로코,알제리,튀니지,리비아, 이집트는 민족적,문화적으로 아랍권역이라면
모리타니, 말리 등은 사하라가 걸쳐있는 흑인 문화권..
세네갈은 사하라 이남의 상아 해안가의 흑인 문화권이죠..
그래서 모리타니,말리 정도까지의 영화를 보면 사막 배경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세네갈부터는 사막 대신에 해안 바닷가나 내륙의 사바나가 배경의 주를 이룹니다..
물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권역에 속하구요..
이걸 그냥 퉁쳐서 아프리카 영화들 기획전으로 이번에 연 것 같네요..
<미라>를 이미 봤는데 스크린으로 복원된 작품은 완전 달랐습니다. 복원이 기가 막히게 되었기에 화면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습니다.
20 암수  
우왕...이걸 몰랐네요..pc로 볼때도 그 음산한 기운이...온사방을 휘감았었는데..
완전 복원된 작품이 스크린에 옮겨졌다면...
으으~~못봐서 아깝다 아까버..
이건 사족입니다만.. 흑인 문화권이라는 말은 블랙 아프리카 문화권을 말하는 듯한데 아프리카 학에서 이때 블랙은 인종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지 않기에 흑인 문화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냥 불랙 아프리카나 흑 아프리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흑인 아프리카라고 하면 니거 아프리카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암튼 이번 기획전에 복원된 작품에는 마틴 스콜세지가 책임자로 있는 월드 시네마 파운데이션과 조지 루카스 패밀리가 많이 공헌을 했더군요. 기회가 되면 미라, 투키 부키, 일린, 오셀로, 오! 태양은 꼭 보십시오. 기왕에 본 영화와 다른 느낌입니다.
12 Lowchain232  
<미이라>는 복원판 영상이 돌아다니긴 하는데 영어 붙박이라... 크라이테리언 WCF 박스셋에 포함되길 기대해봅니다.
S Cannabiss  
미라가 이모텝 나오는 겁니까?
20 암수  
ㅎㅎ 일단 그 <미이라>는 아니구요..
이집트 고대유적지 인근에 사는 부족이야기입니다..결국 인간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인데..고대유적지를 무대및 배경으로 잘 활용하여 분위기가 아주 압권입니다..
umma55님 작품중 <미이라>로 검색하면 나옵니다..
S Cannabiss  
그.. 그럼요 제가 아는데 일부러 그런 거에요
영화는 한번 보고 싶습니다
20 암수  
제가 유머를 다큐로 해석햇군요..
3 킹오뚜기  
전부 고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