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뤽 고다르와 존 카사베츠 (현대 영화의 두 거목 2부)

영화이야기

장뤽 고다르와 존 카사베츠 (현대 영화의 두 거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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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는 인용문)


고다르와 카사베츠의 세계는 보는 이에게 친숙하지 않다.

전통적인 영화, 특히 상업 영화에서는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당황스런 모습을 보일지언정, 보는 이는 당혹하지 않는다.

보는 이는 영화의 상황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기때문이다.

보는 이는 캐릭터보다 더 많은 정보나 상황을 알기도 한다.

그러나 고다르와 카사베츠의 영화에서는 어떤 상황이

해당 캐릭터들에게는 자연스러울지언정 보는 이는 당혹하게 된다.

보는 이가 영화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다르는 자신의 독창성이 고전적 편집 구도에서

서사의 유기적/선형적 흐름 밖으로 방출된 운동의 잠재성을

역으로 이용해 이미지의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낸 것에 있다고

명확하게 얘기한다. (1) 이 얘기는 존 카사베츠에게도 명확하게 해당되는 것이다.

고다르와 카사베츠의 영화는 베르토프의 영화처럼

보는 이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특정한 장면의 반복이 거의 없다.

그런 장면 대신 서사의 유기적인 흐름을 잠시 머지게 하거나 아예

끊어버리는 요소들이 넘쳐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보는 이의 영화 관람을 당혹하게 한다.


 그들의 영화에서 사운드의 활용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고다르는 음악의 고유한 신체라고 할 수 있는

연속체의 흐름을 끊고, 소리를 그 자체로 낯선 신체처럼

드러내는데 탁월하다. 음악적 연속체의 조직이

절단되고 분절되어 다른 영화적 질료처럼

데쿠파주되거나, 음향적 이미지의 파편이 시각적 이미지에

낯선 신체처럼 개입하여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아방가르드 영화에서도 드문 파격적이고 독특한 몽타주 방식이다. (2)


 고다르는 음악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소리를 통해서

영화의 흐름을 낯설도록 조성하는데 탁월했다.

“Alphaville”의 한 씬을 보자.


  이 씬에서는 남 주인공이 권총으로 라이터를 키면서

여 주인공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묘사가 나온다.

고다르 특유의 똘끼충만한 이 설정은 권총때문에

남녀 주인공이 처음으로 교감하는 순간을 낯설게 한다.

비록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그 행동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지만

보는 이는 당혹스럽게 된다.


만약 남주인공이 권총을 쏘는 대신, 라이터를 우아하게 키고

여주인공에게 담뱃불을 붙여줬다면 이 씬은 자연스런 연결이 됐겠지만 평범한 로맨스 영화의 씬과 같았을 것이다.

남녀간의 로맨스를 생뚱맞은 권총으로 매개하는 이 씬은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하면서도 파토스를 제공한다.

파토스는 이성적인 관계로는 납득할 수 없는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격정적인 감정의 상태다.

이러한 파토스는 ‘고전적 편집 구도에서 서사의 유기적/선형적 흐름 밖으로 방출된 운동의 잠재성‘을 의미한다.

이 씬의 앞선 씬들을 보면 권총은 파괴적인 면만 보인다.

앞선 씬들에서 남 주인공은 권총을 사람을 죽이려거나

누드화에 구멍을 내는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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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보는 이는 이 씬에서도 권총이 뭔가를 파괴하는데 쓰이겠거니 기대할 것이다.

게다가 남 주인공은 여 주인공이 알파빌이라는 거지 같은 도시를 있도록 한 장본인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보는 이는 별안간 이어지는 남녀간의 교감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씬의 이야기적 설정은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파토스가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이 씬에서 진정으로 파토스를 촉발시키는 원동력은

권총이 사용 되는 목적(?)에 앞서 권총이 갖는 폭발 소리에

가까운 굉음과 이윽고 나오는 감미로운 멜로디간의 병치다.

이 상반 된 것들이 병치되면서 파토스가 나온다.


 이 씬에서 강력한 파토스가 나오는 이유는 문학에서 보이는

감각의 전이와 매우 유사하다.

감각의 전이에서는 뭔가 자연스럽지 않지만 강력한 표현들이 많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이들의 사랑은 강력한 총소리처럼 뜨거웠다’ 라는 문구는

청각의 촉각화에 해당하며 이는 감정의 전이에 해당한다.


 이 씬이 파토스를 제공하는 것은

그러한 촉각화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총의 개념은 그 사물 자체가 갖는 1차적인 의미(파괴)를 넘어선다.

총의 폭발적인 굉음은 남녀간의 열렬한 교감(감미로운 멜로디와 병치되어)으로 확장된다.

총의 열렬한 굉음으로 인해 이 씬에서 남녀간의 교감은

피부에 와닿을정도로 강력해진다.


 이 씬에서 총소리가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은 삶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 더 나아가 비가시적인 것을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물질이나 상황에 대한 1차원적인 단계를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그 너머에는 무수히 다른 요소들이

존재할 수 있다.


 고다르는 이렇게 사운드뿐만아니라 여러 요소들을 동원에서 표현의 전이를 무수하게 보였고, 

색다른 감각을 제공했다. 이것이야말로 1960년대 고다르 영화가 갖는 최대 강점일 것이다.


 고다르는 2000년 인터뷰에서 존 카사베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John Cassavetes, who was more or less my age, now he was a great director.

I can't imagine myself as his equal in cinema. For me he represents a certain cinema that's way up above.“


“존 카사베츠는, 내 나이와 비슷한, 이제 위대한 감독이다.

영화라는 분야에서 감히 내 자신을 카사베츠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 내게 카사베츠는 저 아득하게 높은 차원의 영화를 상징한다.“


장뤽 고다르의 엄청난 격찬이 결코 과언이 아닐정도로

카사베츠는 고다르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했다.

카사베츠는 인간이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감정의 상태를 섬세하고 강력하게 드러냈다.


3부에서는 존 카사베츠에 대한 글을 올리도록 하겠다.

(일단, 고다르처럼 사운드를 이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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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S 한움  
정성스럽게 쓴 글  잘 보았습니다. 
관객을 피로하게하는 두 감둑의 영화는 보지 말아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