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를 살해한 남자

영화이야기

장 뤽 고다르를 살해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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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다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에서 베르톨루치의 <순응주의자>를 봤습니다. 개인사가 꼬여 영화를 한동안 멀리했지만 이번에 4K로 복원된 이 영화는 스크린으로 꼭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순응주의자>가 포함된 이번 '이탈리아 주간' 기획전은 이 영화와 함께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60),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64)도 상영되는데 복원된 화면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이 세 편은 꼭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의 아들이었고 그 역시 시인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최고 시문학상을 받은 해에 첫 번째 장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상류층 가문의 아들이고 아버지가 문화 예술계 쪽에 인맥이 있어서 그의 주변에는 항상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파솔리니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 <아카토네>(61) 만드는 현장에 베르톨루치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를 조감독으로 기용한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베르톨루치의 영화적 감성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다음 해에 데뷔작 <냉혹한 암살자>(62)를 찍을 수 있었지요. 이 모든 것이 그의 나이 스물 한 살이 되기 전의 업적입니다.


하지만 베르톨루치의 영화적 DNA는 이탈리아 보다는 프랑스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영화의 언어는 프랑스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프랑스어로 말해야 제대로 전달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1980년대 초에 <바보같은 자의 비극>(81)을 홍보하러 일본에 들러 기자 회견을 할 때에도 프랑스어만 사용했습니다. 그 때 이탈리아의 한 저널리스트로부터 '당신은 어느 나라 감독인가?'라고 면전에서 지적을 당하기도 했지요. 이것은 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1950년대 후반에 <카이에 뒤 시네마>에 영향을 입었고 60년대 초반에 누벨 바그의 자극을 받았던 영화 영재가 바로 베르톨루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누벨 바그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르톨루치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세 사람의 아버지가 있는데 한 명은 생물학적 아버지, 다른 한 명은 영화의 현장으로 자신을 안내한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 나머지 한 명은 장 뤽 고다르라고 말입니다. 특히 고다르에 대해서는 자신의 멘토이자 자문관이라고 생각하였고 그의 모든 영화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장편 <혁명 전야>(64)에서 보이는 점프 컷, 4년간의 공백 끝에 만든 <파트너>(68)를 관통하는 무의미성에 대한 것은 고다르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파트너>를 제작하면서 베르톨루치는 고다르의 천재성에 묘한 질투심을 느낍니다. 자신의 <혁명 전야>이후 기나긴 공백기를 겪으며 초조해하고 있을 때, 고다르는 한 해에 두 세편의 걸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 해의 걸작이 아니라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말입니다(60년대 고다르의 필모는 입이 딱 벌어집니다. <비브르 사 비>, <작은 병정>, <기관총 부대>, <경멸>, <국외자들>, <결혼한 여자>, <알파빌>, <미치광이 피에로>, <남성, 여성>,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자신을 고다르와 비교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4년간 카메라를 놓고 있던 그는 쇼트 하나 하나에 무진장 신경을 쓰게 됩니다. 실천 없이 머리 속에 이론만 잔뜩 무장한채로 말입니다. 그 결과, <파트너>는 베르톨루치의 고백처럼 그의 영화 중 가장 어색하고 딱딱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혹평이 영화 제목 파트너처럼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조숙한 영화 영재는 바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20대의 마지막에 가장 건방진 영화 두 편을 내놓습니다(그것도 같은 해에). 젊고 똑똑한 사람만 찍을 수 있는 건방기가 가득 찬 영화. 그것이 <거미의 계략>과 <순응주의자>입니다. 이 영화를 만들 쯤에 베르톨루치는 두 가지 변화를 겪습니다. 하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다르와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었지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그의 영화는 마르크스주의에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전면적으로 등장합니다. 고다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데에는 베르톨루치가 이탈리아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를 가지면서 공산당에 가입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식 공산주의(마오이즘)에 빠져 있던 고다르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연약한 수정주의자들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영화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가하면 '아버지 살해'의 주제로 나타납니다. <거미의 계략>과 <순응주의자>는 파시즘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아버지 살해라는 오디푸스적 궤적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르톨루치는 이제 자신의 세 번째 아버지 고다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순응주의자>의 주인공 마르첼로는 국가 공무원으로 복무하는 파시스트입니다. 어렸을 때 자신을 유혹하는 동성애자를 살해한 후,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체제에 순응하는 순응자가 됩니다. 어느 날 그에게 던져진 지령은 반파시즘에 앞장 서는 교수를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수는 마르첼로가 대학 시절 수업을 들었던 은사입니다. 베르톨루치는 아버지 살해의 테마를 유사 아버지 또는 정신적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교수로 바꿉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 나오는 교수의 집 주소를 고다르의 실제 아파트 주소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고다르에게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였습니다. 파리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 베르톨루치는 고다르에게 전화를 합니다. "장 뤽, 우리가 요즘은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지만 제가 만든 이 영화는 꼭 봤으면 합니다". 고다르는 그 전화를 받고 밤 열시에 영화를 보겠으며 열 두시 드럭 스토어에서 만나자고 말합니다. 비가 심하게 오는 겨울 밤. 파리의 한 드럭 스토어에서 레인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신문을 사거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계속 들어왔고, 마침내 고다르가 나타났습니다.


베르톨루치 앞에 앉은 고다르는 아무 말 없이 한동안 그를 쳐다보더니 쪽지를 남기고 조용히 자리를 뜹니다. 쪽지에는 마오쩌둥 주석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빨간 사인펜으로 '너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고다르가 보낸 그 정치적 메시지에 화가 난 베르톨루치는 울부짖으며 그 쪽지를 갈기갈기 찢었다고 합니다. 이 메시지에서 고다르가 말하자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고다르가 보기에 베르톨루치는 좌파이지만 응석받이 부잣집 도련님 정도로 보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시기, 그러니까 68 혁명 이후 고다르는 부르주아 영화 산업망의 배급망을 부정하고 비디오와 16밀리 카메라를 선택해 혁명 영화의 길로 접어든 '지가베르도프 집단 시기'에 있었던 때입니다. 미국의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자금으로 만든 베르톨루치의 정치 영화는 그에게 가소롭게 보였던 것이겠지요. 게다가 베르톨루치의 카메라 맨인 비토리오 스트라로의 과시적인 카메라 테크닉도 눈에 거슬렸을 겁니다. 베르톨루치는 '사랑을 할 때 <카마수트라>의 체위가 필요한 것처럼 내 영화에는 카메라수트라라고 할 만한 체위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하였지만 말입니다.


이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않았습니다. 베르톨루치는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로 다시 한번 전세계에 주목을 받지만 외설성 문제로 고국인 이탈리아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그리고 미국, 프랑스, 중국, 인도를 떠돌며 영화를 만들지요. 그것은 아버지를 죽인 오디푸스가 세상을 떠돌게 된 것과 유사합니다. 말년에 이탈리아로 돌아 온 베르톨루치는 2018년에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뜹니다. 베르톨루치가 영화 속에서 죽인 그의 정신적 아버지 고다르는 그보다 열 살이나 더 연장자이지만 아직도 영화의 최전선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재는 천재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그의 대표작들을 만들었지만 진정 천재는 죽여도 죽지 않는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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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S 한움  
영화에 대한 문외한이지만 어쩌다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허세부리는 요상한 단어들이 난무하는데 히스미님의 글은 그런 것이 없이 편안하게 그 영화의 세계로 잘 이끌어주어서  글을 읽으면서 미소가 지어지면서 다음 글을 기다리게됩니다.  이번 글도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긴 글 쓰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뻘쭘한데 재밌게 읽으셨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감사합니다^^
2 achtung  
헐리우드/최신작 위주로만 눈길이 가다가 아주 최근들어 고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영화 쪽엔 가깝게 알고 지내는 형님도 깊숙히 관여하고 계시는데... 스파게티 웨스턴 이제 그만 보고 다른 영화를 더 많이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영화 자체에 대한 비평글도 좋지만 이런 배경이나 얽힌 이야기를 더 관심있게 보는 편입니다(영화 이해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니 반갑습니다.^^ 항상 저는 문학이든 회화든 음악이든 고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개별 영화에 대한 이해도 영화사적인 맥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2 Lowchain232  
이 글 보니까 고다르도 베르톨루치 같이 좋은 집안 출신이었다는게 생각나네요. 동족 혐오였던 것일까요.
원래 천재는 지 빼고 다 싫어하는 법이죠. ㅎㅎ
17 달새울음  
"지독한 열등감에서 지독한 열정이 나온다"라고 누가 말했던거 같습니다만...누군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떤 열정도 천재성을 이길 순 없나 봅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지요. 사실이 아니라 피터 쉐퍼의 희곡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