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을 봤습니다.

영화이야기

<드라이브 마이카>와 <우연과 상상>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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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부국제 최고 화제작인 두 작품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입니다. 일본이 과하다고 싶어할 정도로 주목하는 자국 감독이고 한국에서도 팬 층이 두텁지요.

국내에서 하마구치 감독의 팬덤이 생긴데 한 몫을 한 것은 격월간 영화잡지 <필로>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잡지가 불을 붙였던 거지요. 하지만 <아사코>가 국내 개봉되기는 했지만 하마구치의 장편 데뷔작(이자 진정한 걸작!) <해피 아워>는 정식 개봉된 적이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운좋게 두 편을 스크린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오늘 날 일본을 대표할 감독으로 그의 스승인 구로사외  기요시를 이어갈 인재인가에 여전히 물음표였습니다. 


이번 부국제 하마구치 스페셜은 <드라이브 마이 카>가 먼저 상영되고 <우연과 상상>이 이어졌습니다. <우연과 상상>만 봤다면, 하마구치 감독에 대한 저의 평가는 그렇게 높지 않았을 거예요. <우연과 상상>은 밀도 높은 작품이긴 하지만 에릭 로메르나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 많이 기대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는 놀랍습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에다 노력을 쏟은 작품으로 데뷔작에서 보여 준 충격에 비견할만 합니다.


우선, 이 영화는 자동차 씬을 잘 찍었습니다(봉준호 감독이 대담을 진행할 때 하마구치 감독에게 한 첫 질문도 자동차 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자동차 씬을 이렇게 잘 찍는 감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개봉 된 <노 타임 투 다이>의 그것보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자동차 씬이 훨씬 뛰어납니다. 이 영화에서 자동차는 사람 사이의 감정을 이어주기도 하고 과거로 또는 미래로 생각을 점프시키기도 합니다. 무슨 별다른 특수 효과도 없는데 차 안의 카세트 테이프의 소리, 좌석에 앉는 사람의 위치, 탑승하는 사람에 따라 차가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을 주행하고 있는 차 안에서 찍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 자동차 씬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스파이 브릿지>, 클린트 이스트우도의 <그랜토리노>, <라스트 미션> 이 먼저 떠오르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는 제목처럼 드라이브 씬이 푸짐하게 나와서 좋았습니다. 하마구치 감독이 자동차 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봉감독도 언급했지만, 하마구치 감독은 대화씬을 찍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특히 두 사람이 비스듬히 쳐다보다가 감정이 고조될 때 정면을 쳐다보고 찍는 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인물과 인물 사이에 거리, 그 거리를 어떻게 깨고 들어갈 것인가 하는 동선의 문제도 이 대화씬에는 포함되는데 놀라운 스테이징 능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올 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왜 각본상을 왜 받았는지 짐작이 갑니다. 원작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입니다. 50페이지도 안되는 이 내용을 늘이고 붙이고를 했습니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연극 연출자겸 배우여서 연극 장면이 나옵니다. 두 개의 연극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데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안톤 체홉의 <바냐 삼촌>이 그것입니다. 베케트는 굳이 읽을 필요는 없지만 <바냐 삼촌>은 영화 관람전에 꼭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이 희곡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영화를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안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아무 지장은 없습니다만, 읽고 영화를 보면 하마구치의 영특함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희곡에서 전혀 다른 의미의 대사가 영화 속에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공명을 주게 만들었는데 그걸 확인하는 기쁨이 솔솔합니다. <바냐 삼촌>은 하루키의 원작에도 살짝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하마구치가 살을 발라내서 멋지게 활용합니다. 

이 영화는 하루키의 소설 원작에, 체홉의 희곡만 있는게 아닙니다. 영화 속의 아내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이야기가 작동합니다. 액자극의 형태인데 하마구치는 이질적인 세 개의 음악을 하나의 음악이 되도록 멋지게 지휘하는 지휘자 같습니다.


소설, 희곡, 이야기를 사용하지만 하마구치가 발을 딛고 있는 영역은 영화입니다. 그는 이 세가지를 영화 언어로 훌륭하게 구현해냅니다. 경탄할 정도의 능력이고 그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만 합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너무 똑똑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자신 속에서 재능을 찾기 보다는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에릭 로메르에게서 홍상수에게서 자꾸 찾으려하고, 구로사와 기요시나 오즈 야스지로를 참조합니다(<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들 때는 이창동의 <버닝>을 틀림없이 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니치게 열심히 만들다 보니 일정 수준의 작품은 만듭니다. 하지만 진짜 천재들이 뚝딱 만들어내는 그런 기괴함은 없습니다. 아직 젊은 감독이라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다보니 학생 영화 같은 느낌도 상당히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목해야 할 감독입니다. 저는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나리오(국내에 우후죽순처럼 번역되어 있습니다) 보다 하마구치 류스케로 시작하는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하마구치는 우리 시대 이야기꾼이자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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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Advr  
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도토리쿵쿵쿵  
필로에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계속 극찬받고 있지요..
2 도토리쿵쿵쿵  
저는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나리오(국내에 우후죽순처럼 번역되어 있습니다) 보다 하마구치 류스케로 시작하는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하마구치는 우리 시대 이야기꾼이자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지요
이 말씀을 하셨는데, 다행히 시나리오를 개발 중인 사람으로서 요새 하마구치 류스케 공부를 한 보람이 있네요 하하
대사를 정말 잘쓰는 감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