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를 베다(1)

영화이야기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를 베다(1)

13 하스미시계있고 14 386 5

떠돌이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찬바라 영화 <요짐보>(61)는 종전에 없는 히트를 기록합니다

진지한 주제와 메시지의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전 작품과 달리 이 영화는 액션과 유머가 충만한 영화였습니다. 그것이 흥행에 큰 변수로 작용한 것이지요.

한껏 고무된 도호 영화사는 구로사와에게 <요짐보>와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한 속편은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43)후일담 <속 스가타 산시로>(45)입니다

하지만 속편은 구로사와 아키라 스스로 인정하듯이 진부한 작품이었습니다. 시대 고증에 예민했던 그는 이 영화가 메이지 시대의 밝은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다시는 속편을 찍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 결심을 무너뜨린게 <요짐보>의 엄청난 흥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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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가 각색한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 

(좌): <츠바키 산쥬로>의 원작 <일일평안>         <중>: <붉은 수염>의 원작 <붉은 수염 진료담>   (우): <도데스카덴>의 원작 <계절이 없는 거리> 

하지만 갑자기 준비하려니 시간이 촉박했겠지요. 구로사와는 새로 각본을 쓰기 보다는 <요짐보> 이전에 미리 써놓았던 각본을 다시 꺼냅니다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 <日日平安>을 각색한 작품으로 원래 호리카와 히로미치 감독을 위해 쓴 시나리오였습니다. 야마모토 슈고로는 일본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이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문학상이 있을 만큼 유명한 작가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후 작품 <붉은 수염>(65), <도데스카덴>(70)도 야마모토의 소설을 각색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62년 정월 개봉을 목표로 만들어진 <츠바키 산쥬로>입니다. 이 소설은 국내 번역이 안 되어 읽어보지 못했지만 원작에서 주인공은 힘과 기술의 부족을 두뇌로 메우는 떠돌이라고 합니다. 구로사와의 애초 각본에서도 원작과 같았으나 이렇게 해서는 찬바라 영화의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보다 활발한 칼의 고수로 캐릭터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원래 연출을 맡으려고 했던 호리카와 히로미치 감독과 원작자인 야마모토 슈고로를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원작의 1/3만 남기고 대대적인 개작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는 <요짐보>의 숙적의 콤비 미후네 도시로, 나카다이 타츠야를 다시 캐스팅합니다. 여기서 나카다이 타츠야의 배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로사와가 배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구로사와 감독은 <츠바키 산쥬로>에서 악역 무로토 한베이 역할을 사람은 나카다이 타츠야 밖에 없다라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습니다. 이 배우의 연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줄 아는데요. 나카다이는 연극 배우 출신이기에 초창기 그의 연기를 보면 크고 과장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천하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지요. 여차하면 영화판을 떠나 연극 무대로 돌아가면 그만이었기 때문입니다. 후기로 갈수록 나카다이 타츠야의 연기는 원숙해지면서 일본 영화계의 굳건한 디딤목이 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캐스팅에 대한 지론은 같은 배우를 똑 같은 캐릭터로 낭비해서는 안된다것이었습니다. <요짐보>이후 다시 나카타이를 섭외하자 나카타이는 구로사와에게 묻습니다.

이번에도 사무라이 역할입니까?’

, 그 중에서도 엄청 쎈 사무라이라네!’ 구로사와는 이런 요구를 합니다. ‘미후네 도시로가 혹시 패배할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도록 연기를 해줘!’

 

나카타이 타츠야가 연기하는 <요짐보>에서의 악역과 <츠바키 산쥬로>에서의 악역을 비교해보시길 바랍니다.

<요짐보>에서 나카다이는 창백한 얼굴에 삐뚤어진 성격의 인물입니다. 목에는 머플러를 하고 뱀처럼 사늘한 웃음을 짓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칼 대신 권총을 뽑지요.

이에 비해 <츠카타 산쥬로>에서 그는 까만 얼굴에 소박한 사내입니다. 같은 사무라이라는 위치 때문에 산쥬로와 의기 투합하다가 입장이 달라 맞서 싸우는 어리석은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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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 사이에 불과 일 년밖에 안되지만 <요짐보><츠바키 산쥬로>에서 나카다이 타츠야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보입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요짐보>를 찍을 때 노메이크 업으로 연기해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검을 휘두르던 사무라이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서양문물인 피스톨을 든 철없는 신세대가 등장하던 시기였으니 거기에 맞는 앳된 역할을 요구한 것이지요.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시대극의 고증에 신경을 쓰는 평론가들이 저 시대에 무슨 머플러 따위가 있었다구!’하면서 비아냥거렸다고 합니다. 그 소문을 들은 구로사와는 크게 노하면서 그런 소리하는 평론가 녀석들 다 불러와! 에도 막부 말기 무렵이면 요코하마에서 영국과 무역이 이루어져서 스카치 위스키가 돌아다니던 시기였어. 그 시기에 머플러가 없었겠냐구!’하고 호통을 쳤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머플러의 비밀은 사실 다른데 있었습니다. 사극을 찍을 때 예전 일본 배우들은 목이 다 짧은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猪首(저수, いくび), 즉 돼지목이라 불릴 정도로 짧고 굵은 목을 소유한 배우들이 선호되었는데 왜냐하면 사극에 나오는 투구와 갑옷은 목이 짧아야 다부지게 보여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카다이의 목이 지나치게 길어 기모노에서 돌출된 것처럼 보였기에 궁여지책으로 머플러를 하게 했던 것이지요. 배우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구로사와는 우격다짐으로 고증에 대한 반론을 편 것입니다.

 

<츠바키 산쥬로>에서 나카다이는 얼굴을 까맣게 메이크업하여 강건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가발로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게 합니다. 상투까지 반삭하여 드러난 이마가 문어를 연상케하는 중머리입니다. 나카다이는 처음에 이 헤어스타일에 난처했지만 점차 적응했다고 합니다. 구로사와는 한 달간이나 치밀한 메이크업 테스트를 했다고하니 캐릭터 창출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글도 쓰지 못하고 분량이 늘어났네요. 본론은 다음에 계속해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이 글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글을 자유게시판에 썼는데 링크를 걸어둡니다.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co_free&wr_id=203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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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omments
8 바앙패  
원조 이야기꾼...
내용이 별로인가 보네요. 연재를 생각하며 준비했는데...
반응이 없어서 그냥 접겠습니다. (_ _) 긁적 긁적
3 장산해운대  
아키라 영화의 캐릭터들은 얼핏 보면 전형적인 인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들 창조한 얼굴로 보여요
12 리시츠키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 연재도 기다리겠습니다~!! ^^
예의상 하시는 말씀은 아니신지요? 글 재주가 없어서 너무 늘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 영화가 아니라 오래된 영화로 관심 끌기는 힘드네요. 쩝~
12 리시츠키  
고전영화야 뭐, 별로 인기없는건 새삼스럴것도 없고;;

다들 너무 유명한 영화라 잠잠한 거 같기도 합니다만,
글 내용에 있어, 저는 어디서도 읽은적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글도 술술 잘만 읽히고요 -0-

제가 성의없게 형식적으로 댓글을 써서, 괜히 오해를 일으킨거같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이구, 성의 없다니요. 저는 노력 대비 아무 반응이 없어서 뻘쭘하던 차에 고전영화 애호가이신 리시츠키님의 댓글이 고맙지요.
용기내서 다음 글 준비하겠습니다. 꾸벅~
12 리시츠키  
사실 저는 구로자와 별로 안좋아합니다. 미후네 도시로의 연기스타일도 정말 안좋아하고요.
구라자와의 몇몇 작품은 좋아하자만, 대부분의 작품은 좀 저랑 안맞더라구요. 영화 만듦세는 잘 모르겠고,
다만 구로자와의 그 과장된 감정이나, 영웅주의, 그걸 실어나르는 앵글이나 편집, 내러티브에 나타난 그의 태도가 좀 별루더라구요.
그러면서도 하스미님의 글은 재미나게 읽은 제 모순이, 제 심심한 댓글을 통해 드러난 것이었겠지요-0-

암튼뭐, 저때문에 뻘쭘한 댓글이 오간거 같은데, 개념치 마시고,
많은 고전영화 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다음편을~~
편안한 밤 되세요~  ;-)
저랑 느끼는 바가 비슷하군요. 구로사와의 영화 속 인물들은 과격하게 결단하고 맹렬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지요.
영화의 형식도 인물의 성격과 비슷하다 할만큼 과시욕이 강한 연출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감독들이 좋아할만한 영화 같기도 합니다.
저런 식의 연출은 언젠가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면서 잔뜩 벼르게 만들 영화지요. 늦은 밤까지 댓글 고맙습니다.
11 달새울음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재밌는 이야기였습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하스미님의 글을 인용하지 않을까 싶어 미리 감사드립니다.
아마 영화사적으로 전문적이고 멋진 글에 가볍게 댓글을 달기엔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어 그렇지 않았나 싶네요. 
저 또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거론한 영화들을 다시 보고 댓글을 달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여력이 없어 포기하고 글만 감상했습니다.
제가 구로사와 아키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건드리는 것은, 워낙 황금기 인물이라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일본 영화사를 기웃거릴 수 있는 교재로 적합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냥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제가 글을 교과서적으로 딱딱하게 쓸까 자꾸 주저주저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7 암수  
잘 읽고 있습니다.......어차피 고전영화쪽은 마이너한 소수의 팬층이 있다라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글 연재(?) 해주시면 될 듯 합니다...
글은 딱딱하거나 너무 전문적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맛깔스럽게 잘 읽혀집니다...
아시다시피....구로사와 영화는 고전중에서도 워낙 유명하게 알려진터라..... 저 같은 경우도 고전 본격(?)입문시기 즈음인 약 20여년전에
그의 대표작인 <7인의 사무라이><요짐보><라쇼몽><스바키 산주로><이키루><숨은 요새의 세악인><거미의 성><붉은 수염><데루수 우잘라>등을 봤던 기억이 아련하게 나네요... 너무 오래되어서 세세한 내용은 증발~~
그 후 영화를 많이 보면서 점차 그의 필모에서 후기작(카케무샤,란 등등) 들과 초기작들(주정뱅이 천사,들개 등등)로 외연을 확대했고...
또 그 이후는 드문드문 그의 필모에서 안보고 빠져있던 영화들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는 듯 합니다...

그의 사무라이 영화중 일부는 "미후네 도시로"로 대변되는 상남자 중에서도 상남자를 주인공 기둥으로 박아놓고..."나카다이 타츠야"로 대변되는 선인이든 악인이든 카리스마 쩌는 양대 투톱으로 운영되는 골자로...영화보는 초기에는 피를 끓게 만드는 쾌감과 박력이 좋더라구요...일종의 영웅주의에 빠져드는거죠...
그런데 영화를 많이 보고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그의 영화중 사무라이 영화가 아닌 인간의 본연적 가치관이나 죄의식에 대해 다룬 영화들에도 눈이 가게 되더군요...

다른 분들도 눈팅으로 잘 보고 있으실 듯 합니다...가볍게 가볍게 연재해주시면 좋은 선물이 될 듯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흐름을 한번 중단하니까 다시 잡기에 시간이 제법 걸리네요. 암튼 다시 긁적여 볼 생각입니다.
9 넘조아  
글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연재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