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랑과 에 대한 잡설

영화이야기

프리츠 랑과 <도시가 잠든 사이에>에 대한 잡설

15 하스미시계있고 6 1235 4

에릭 카트먼님이 올려주신 프리츠 랑의 <도시가 잠든 사이에>(56)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잡설을 댓글로 달려다가 너무 길어져서 따로 적게 되었습니다.


안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십시오.


영화 <도시가 잠든 사이에> 보러가기 :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722243&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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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프리츠 랑은 미국에서 마지막 영화를 두 편 찍습니다. 두 편 모두 다나 앤드류스가 나오는데 <도시가 잠든 사이에><이유없는 의심>이 그것입니다.

처음 영화에서는 (연쇄살인범의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과열된 경쟁을, 다음 영화에서는 사형제도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프리츠 랑은 비판하고 있지요.

랑이 바라보았던 미국의 모습은 안락하지만 어둡고 부패한 사회였던 것이겠지요.

 

랑은 <M>, <분노>, <도시가 잠든 사이에>를 자신이 가장 성실하게 만들었던 작품으로 회고합니다. <M>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보면..

프리츠 랑이 독일 시기에 만든 <달의 여인>(1928)은 마지막 무성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유성 영화가 시작되었기에 영화 제작사 UFA는 랑에게 영화의 일부에 사운드를 입히라는 요구를 했지요.

사운드가 영화 스타일을 망칠 거라는 걸 직감한 랑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랑은 UFA와 대립을 하다가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이때 랑은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고 화학자가 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안되어서 어떤 독립영화제작자가 찾아와서 랑에게 같이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지요. 랑은 몇번이고 거절을 하다가 조건을 제시합니다. '당신은 돈만 내주고 편집에는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만든 것이 <M>이었고 영화는 대히트를 합니다. 어느 정도의 히트였냐면, 베를린에서 <M>이 재상영되었을 때 18주동안 연속 상영이되었지요. 당시에 베를린에서 범죄 사건이 발생했는데 경찰청 살인과에서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어떤 신문의 기자가 경찰들은 프리츠 랑의 <M>을 보고 범인을 체포하는데에 참조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화가 작품을 넘어서 하나의 현상이 된 것입니다. 

 

<M>은 프리츠 랑의 유성 영화 첫 작품이면서 영화사상 연쇄 살인마를 다룬 최초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히트를 하자 우후죽순처럼 연쇄 살인마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졌고 그 중에는 <M>에서 나온 살인마의 휘파람 소리를 그대로 차용한 영화마저 있었다고 하네요.

재밌는 것은 <M>에서 살인마 역할을 한 페터 로레는 휘파람을 불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누가 휘파람을 불까 고민하다가 감독인 프리츠 랑이 휘파람 소릴 내기로 했다네요. 하지만 그도 음악에 영 소질이 없어서 음정이 흔들렸는데 이게 오히려 살인범의 흔들리는 감정에 들어맞아서 영화에 더 적절했다고 합니다.

 

데이빗 핀처의 최근작 <맹크>를 보신 분은 그 영화에 나오는 어빙 탈버그라는 인물을 알 것입니다. MGM의 제작 책임자로 눈부신 활약을 하다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인물이지요. 이 사람과 <M>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어서 생각난 김에 소개할까 합니다.

어빙 탈버그는 금화를 호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자기 주변의 영화 스탭 및 각본가를 모아놓고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영화를 하나 보여줄테니까 한번 봐라고 하면서 <M>을 상영했다고 합니다. 영화가 끝나자 탈버그는 사람들에게 소감을 물었지요.


대제작자가 특별히 보여준 영화니 너나할 것 없이 극찬이 이어졌겠지요. 그때 시나리오 작가 중에 한 사람이 물었다네요.

어이, 탈버그씨. 만약 제가 러브스토리 하나 없는 유아살인마가 주인공인 영화를 가져왔다면 당신은 어땠을 것 같습니까?’

탈버그가 호주머니의 금화를 주무리며 빙그레 웃더니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당연히 지옥으로 꺼져라고 했겠지'.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감독이 제작자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예외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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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경우만 특별한 것이었지 그 외의 모든 영화에서 프리츠 랑은 제작자의 간섭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시가 잠든 사이에>는 대스타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리츠 랑 특유의 사전 작업의 꼼꼼함 때문이었지요. 랑은 배우들의 스케줄을 고려해서 4~5회 정도 스튜디오에 와서 자기 역할만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나 앤드류스를 비롯 조지 샌더스, 하워드 더프, 빈센트 프라이스, 토머스 미첼, 론다 플레밍, 아이다 루피노 같은 배우들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중반에 조지 샌더스의 지령을 받고 아이다 루피노가 다나 앤드류스를 유혹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칵테일 바에서 그녀는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던 슬라이드 필름을 1인용 환등기에 끼워서 봅니다. 마치 자신의 나체 사진을 혼자 감상하는 것처럼 하면서 앤드류스를 유혹하는 것이지요. 앤드류스가 조바심이 나서 그것을 가로채려다가 아이다 루피노는 환등기를 술집 카운터 뒤로 떨어뜨립니다.


바텐더가 자기 쪽에 떨어진 슬라이드를 고개를 구부려서 주우면서 몰래 감상을 하는데 사진은 아이다 루피노의 갖난 아기 때 사진입니다.


이 장면은 코믹한 반전에 아이다 루피노의 능청스런 연기가 덧붙여져서 이 영화 속에서 제일 재미난 장면에 속합니다. 하지만 제작자는 이 장면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삭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에 프리츠 랑이 절대 안된다고 맞섭니다. 계약서에는 시사회 때까지는 제작자가 삭제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서 프리츠 랑은 시사회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네요. 시사회 당일 그 장면이 가까워지자 랑은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는 손으로 성호를 그으며 기도까지 합니다. 마침내 그 장면이 나오자 관객은 폭소에 또 폭소를 했다네요.


시사회 상영이 끝나고 랑을 응원하던 사람 중 한명이 어때요? 결국 프리츠 랑이 옳았잖소!’하고 제작자에게 항의를 합니다. 그러자 그 제작자 왈. ‘이번 시사회는 그렇지! 하지만 이 영화를 계속 시사해서 한번이라도 웃지 않으면 바로 그 장면을 삭제해버릴거야!’하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도시가 잠든 사이에>를 다시보면 이 영화는 <M>과 완전 다른 분위기의 영화입니다. 똑같이 연쇄 살인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M>이 살인마의 심리에 치중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범인을 잡는 과정에 얽힌 저널리즘의 저열한 경쟁에 초점을 두고 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주의 깊게 봐야할 점은 다나 앤드류스가 맡고 있는 민완 기자 모블리의 모습이 연쇄 살인마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평행 프레임으로 두 사람이 유사하다는 것을 많이 드러냅니다.


예컨대 살인마는 사전에 희생자 아파트 문 잠금장치를 몰래 눌러놓고 희생자가 혼자 있을 때 습격을 합니다. 이 장면은 모블리가 연인의 아파트에 들어갈 때 그대로 사용을 하지요.

 

영화 속에 살인마는 어릴 때 양모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양모는 원래 여자 아이를 원했기에 살인마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여성 혐오로 이어집니다. 그가 영화 속에서 첫 번째 살인을 하고 립스틱으로 벽에 엄마에게 물어봐라고 적은 것도 이런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블리가 연인의 다리를 쳐다보며 어떻게 스타킹이 안내려가지라고 묻자 연인의 대답은 엄마에게 물어 볼 것이 많네요라고 대구를 합니다. 그렇기에 살인마는 모블리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당시 시대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대단히 주체적입니다. 사진부 부장과 바람이 난 언론사 사장의 부인, 한편으로 해퍼보이지만 자기 주관대로 언론사 남자들을 주무르는 여자 통신원, 남자의 얕은 꾀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사랑을 쟁취하는 모글리의 연인. 생각할 지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살인마는 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집을 침범하지만 모글리는 어쨌던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허락을 받아내서 집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모글리가 연인의 아파트 앞에서 미지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탐험가가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뜹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 모글리의 연인이 이렇게 말을 하지요. ‘탐험가의 면허가 있다는 것은 믿지 않아요. 사냥 면허라면 모를까’. 이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살인마의 여자 사냥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순화된 것처럼 비춰지니까요. 즉 모글리라는 문명이 앓고 있는 야만적 속성이 살인마일 수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이 프리츠 랑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도시가 잠든 사이에>에 나오는 언론사 무리들은 왜 하나 같이 의심스러운 존재들인가요? 오히려 범인은 동정심이 가지만 돈과 권력을 쫓는 그들에게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습니다라고요.

 

이에 프리츠 랑의 답변. ‘자네 대단히 로맨틱하군. 그들의 모습은 자네 자신에게도 있는데 미워하고 있는게 아닐까? 자네 주변에 윤리적인 인간이 몇 명이나 있는가? 이 영화 속의 그런 인물들이 진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도시가 잠든 사이에>는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보이나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고발하는 영화이기에 여전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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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21 에릭카트먼  
업로더의 관련 영화에 관한 부족한 소양을 채워주는 멋진 글입니다!!
몰랐던 뒷이야기들 역시 흥미롭고 탁월한 해석은 덤입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올려주시는 좋은 영화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만 올리시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가 따라잡기가 힘드네요 ^^
S 줄리아노  
이런 멋진 영화적 해석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게 아니겠습니다.
저희는 님같은 분들의 친절을 통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겠지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게 그나마 참으로 다행인 게, 난독증을 일으키는 컷과송 님의 단평은
일부러 쓰신 고난도의 퍼즐 같으시니까요. ㅋㅋ 야단 맞을라... 애정의 표현 입니다.ㅎ)
좋은 영화가 번역되어 씨네스트에 올라 와있는데 몰라주면 번역하신 분들이 많이 섭섭할 겁니다.
그래서 이런 글로 잠재적 관람층을 유혹하는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ㅎ
3 장산해운대  
독일에서, 미국에서, 다시 독일에서 지치지도 않고 계속 수작을 만들어 낸 프리츠 랑입니다..
프리츠 랑의 만년작인 '에슈나푸르의 호랑이'(1958)와 '인도의 무덤'(1959) 연작이 유튜브에 한글자막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씨네스트에 두 편 다 자막이 올라와 있죠. umma님이 번역한 거로 알고 있는데 유튜브 자막이 umma님 거 아닐지... 아무튼 이 두 편도 어마어마 한 영화인데 몰라보는 사람이 많아서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