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을 찍는다는 것
사진 작가 에두아르 부바의 소박한 사진에 프랑스의 지성 미셀 투르니에의 아름다운 글이 더해진 책이 있습니다.
<뒷모습>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은 말그대로 사람들의 뒷모습만 찍은 사진집입니다.
그 책의 한 페이지에 투르니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 모습을 꾸며 표정을 짓고 양손을 움직여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뒷모습은 우리의 무의식이 드러난 부분입니다. 영화는 극적인 지점에 도달했을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종종 뒷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서적 반응의 최대치를 끌어냅니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의 작품 <아들>(2002)에서 올리비에는 5년전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소년원에서 출소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공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수아라는 소년이 목공소에 들어와 재활 훈련을 받습니다. 프랑수아는 올리비에의 아들을 죽인 장본인입니다.
올리비에가 프랑수아의 정체를 알게되는 순간 영화는 올리비에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분노와 고통, 복수와 용서 사이에 흔들리는 감정을 카메라는 뒷모습으로만 보여줍니다.
관객은 올리비에의 뒷모습을 통해 그가 가진 복잡한 감정을 상상해야 합니다.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6)에는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인물이 순간적으로 프레임 밖으로 나가면서 인물의 감정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동진(신성일)은 6.25 때 헤어진 아내(김지미)를 찾기 위해 매일 방송국에 가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참여합니다. 그토록 찾던 아내를 만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낙심하여 돌아온 날 밤. 현재 살고 있는 아내가 눈치를 챕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있지만 그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아내가 묻습니다. "그 사람을 만났나요? 내가 셋째 아이를 가질 때까지도 못잊고 돈만 있으면 신문에 광고를 내서 찾던 그 사람.. 그 사람을 찾았나요? "
동진이 우물쭈물 시인을 하다가, 갑자기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어킵니다. 동진이 프레임 밖으로 빠졌기에 우리는 난처해진 동진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동진이 빠지고 난 뒤에 보이는 하얀 이부자리, 부부 사이의 정서적 빈 공간이 들어 올 뿐입니다.
아내의 추궁이 끝나자 다시 몸을 눕히는 동진. 임권택 감독에게 이 장면을 왜 이렇게 찍었냐고 묻자, 감독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찍어요? 그 난처한 사람의 모습을 찍는다는 것은 나는 못합니다. 그거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거던요".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선택한 연출이었다고 하지만 인물의 보이지 않는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볼 수 없는 것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마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