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존 포드 감독과 어느 한국 여배우의 인연 그리고 서신교환

영화이야기

1959년 존 포드 감독과 어느 한국 여배우의 인연 그리고 서신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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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들은 본문 일화와는 무관하며 51년도 <이것이 한국이다> 이후로 다시 방한해서

1959년 문화 영화 "조용한 한국의 아침"을 찍기 위해 만난 존 포드와 김지미 배우)


 

1959년 5월 “「허리우드」의 거인 「죤·포-드」 감독이 예고도 없이 신록의 서울을 찾아왔다” 존 포드의 방문 목적은 한국전쟁 중 촬영한 바 있는 <Korea>(1951)에 이어 “전란의 도가니속에서 진동하던 그 당시의 한국과는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미국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동아일보』, 1959.05.03.) 그런데 포드는 체한(滯韓) 당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포드의 아시아 여행 중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는 한 아리따운 한국 모델 겸 배우인 문혜란과의 열애관계(romantic entanglement)였다. 5월 7일, 포드가 서울의 경복궁으로 순시를

했을 때, 혜란은 여학생들을 에스코팅하고 오브라이언(O’Brien)과 대화하는 투어 가이드 역할을 했다. 포드는 도쿄와 진주만으로 떠난 후, 혜란에게 영화 메이크업 용품과 한국에서

그들의 사진을 담은 작은 선물을 보냈다. 궁에서 찍힌 가장 친밀한 사진에서는,

포드가 메이크업 연필을 직접 잡고 그녀의 입술을 그리고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오브라이언과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포드가 혜란의 얼굴을 잡고 디렉팅을 하고 있다.

다음 여덟 달 동안, 혜란은 포드에게 사랑의 편지를 쏟아 붓는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눈을 감고 우리가 나눴던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하며 제 스스로를 보듬어요. 당신(Darling), 그대는 제게 행복을 포함한 많은 것을 줬어요.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저에게서 떠나지 마세요. 당신이 제 삶이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포드가 편지를 자주 하지 않았기에, 혜란은 걱정되었다. 결국, 그는 포드의 영화 건 다른 영화건, 할리우드에서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포드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그때, 둘의 서신교환은 급박하게(abrupt/인용자 : 포드의 ‘무뚝뚝한’ 성격을 함의하기도 한다.) 끝나버린다. (Joseph Mcbride Searching For John Ford에서 필자가 번역)    

  

포드는 롱고의 세레나데에는 넘어가지 않았으나, 그는 곧 그로서는 드문 일에 휘말리게 된다. 문혜란이라는 여자와의 일이었다. 매력적인 삼십대 중 후반의 여성 문혜란는 포드와의

삼일에 정신없이 취해버렸던 것으로 보인다. 포드가 미국으로 돌아왔던 1959년 후반부터 1960년 초반, 문혜란은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보냈었다. 


문혜란의 편지에서 따르면, 포드가 처음에는 곧잘 그에게 편지와 선물로 대답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문혜란은 솔직했다. 아마 문혜란 자신의 마음에 너무 취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먼저,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이어 문혜란은 포드의 주둔에 대한

한국 잡지 보도에 대한 이야기와, 포드의 사진에

얼마나 자신이 함께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며칠 후, 문혜란은 2주 동안이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포드를 힐난하며,

이렇게 편지를 끝맺는다. “제 모든 사랑과 삶은 당신의 것이에요.” 포드가 편지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은, 둘의 관계가 일방향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포드는  마이클 킬러닌(Michael Killanin)과의 편지에서 혜란과의 관계를 은근히 암시한다.

“저는 또 한 번 아시아 발 감기(Asiatic Flu)에 걸렸소... 이번에는 몹시 지독하오.”

여기서 “또”는 문혜란이 첫 번째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혜란은 의심없이 그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문혜란이 지금까지 얻어온 감정적 유대는 1960년 2월 2일에 완전히 사라진다. 문혜란은

포드에게 그가 얼마나 그리운지를 말하며, <수지 웡의 세계The World of Susie Wong>에

출연하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포드는 아마 그의 무뚝뚝한(abrupt) 스타일로 답변했을 것이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마라고, 편지를 끝맺기 위해. 

(Scott Eyman의 Print the Legend에서 필자 번역)     

Scott Eyman이 소개한 것처럼 문혜란과 포드의 인연은 한국 잡지에도 소개되고 있다. 『씨네마팬』 1960년 3월호는 「문혜란양을 통해본 명장 죤 포오드 감독 – 10회의 서신왕래 그 내역은?」이라는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사에는 Joseph Mcbride가 말한 “가장 친밀한 사진” 즉, “포드가

메이크업 연필을 직접 잡고 그녀의 입술을 그리고 있는” 사진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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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문양에게 <포오드>의 눈이 이끌리인 것은 문양이 입은 옷이었다. 흰 바탕에

초록색 끝동을 단 우아한 한국옷-. / 포오드는 먼저 흰빛에 대한 것을 물었다.

흰빛은 백의민족인 한국의 상징임을 문양은 설명했다. / 그런데 녹색은

자기네 나라의 빛갈이라고 말하며 흰색과 퍽 잘 어울린다고 반가워하더라는 것” 

(「문혜란양을 통해본 명장 죤 포오드 감독 – 10회의 서신왕래 그 내역은?」)     


또한 이 기사는 존 포드와 문혜란이 첫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존 포드는 아일랜드 국기를

상기시키는 문혜란의 흰색/녹색 조합 옷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혜란을 자리에 줄곧 붙잡았다는… 뭐,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존 포드가 1950년대에 한국을 두 차례나 방문했고 영화를 찍은 것도 무언가 초현실적인데,

그 중 한 명과 썸(?) 비슷한 것도 탔다니… 흥미로워서 번역 및 자료를 소개해 보았다.

그런데 자료를 구하다가 1935년생이신 문혜란 배우가 여전히 생존해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허문영 평론가 숙제. 세계 존 포드 연구에 기여하시오!   



출처: https://brunch.co.kr/@likeacomet/131 

   블로거 "금두운"님께서 작성해주신 귀중한 양질의 글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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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omments
11 달새울음  
문혜란의 존 포드에 대한 집착은 애정이었을까요? 성공에 대한 욕망이었을까요?
저는 불순한 생각부터 드는 더러운 놈인가봅니다.
저도 조셉 맥브라이드 책에서 저 에피소드를 처음 접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존 포드 연구자 태그 갤러거도 내한했을 때 문혜란씨를 찾았다고 하지요.
경기 여고를 졸업했는데 재학 시절 수차례 영어웅변 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영화에도 10편 정도 출연했습니다(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에도 출연). KMDB에 의하면 1979년까지 영화 배우로 나오다가 그 이후로 행방이 묘연한 것 같습니다.
아마 저 당시에 저 정도의 영어 실력이었다면, 국내에 거주하지 않고 이민 갔을 경우가 높을 거예요. 농담이겠지만 허문영 평론가가 굳이 저 분을 찾을 필요도 없고 찾아도 존 포드 연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합니다.
그냥 가난한 나라의 한 여자가 출세를 위해 할리우드 유명 감독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고, 바람끼 많았던 존 포드는 3일 정도 이 여자를 데리고 논 것에 불과합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따지고보면 오히려 전후에 미국 문화의 식민지었던 한국의 씁쓸한 풍경에 불과한데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아보입니다.
11 소서러  
나름 일화들을 찾아보다가
이런 별난 트리비아도 존재했었구나 싶어서 한번 올려봤는데..
역시나 동감해요. 고개가 좀 갸우뚱하던 참에 이내 상흔으로 얼룩졌던 시대를
돌이켜보면 더군다나 참 그렇죠. 초반부에 멈칫하지 않고 지나가는 어떤 삽화 같은...
참조로 하스미 시게히코가 집필 중이던 <존 포드론>은 최종장까지 완성되어 빠른 시일내에 단행본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존 포드론>은 일본 잡지 <문학계>에 연재중이었는데 이 잡지 4월 1일짜에는 최종장이 나왔다고 되어있네요. 아마 국내에서는 출간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태그 갤러그의 <존 포드>가 국내 출간 이후 거의 팔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거던요. 사실 요즘 세상에 누가 존 포드에 관심이 있고, 관심이 있다해도 책으로 읽는 사람은 국내에는 몇 백명도 안 될 거니까요.
7 도라영  
현재 영화비평계에선 존포드가 거의 신처럼 대접받으니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신처럼 대우하는 사람이 몇 백명되지 않고 그 중에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더 적다는 겁니다. 출판계에선 적어도 천 부는 팔려야 출간할 마음이 생기는데 현실적으론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본 저작권료가 요즘 엄청 비쌉니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요. 출판 지원금을 받아서 출간하는 경우입니다. 대학의 영화 총서나 영화의 전당 총서로 발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7 도라영  
근데 현실적으로 영화비평 관련서적 꾸준히 나오지 않나요?
그게 어떤 형식으로 나오는지를 아시나요? 지원금 형태로 나오고, 영화비평서를 내고 있는 이모션북스는 올해 문을 닫습니다. 씨네21에서 영화비평서적을 안내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7 도라영  
세창출판사나 이런데서 나오는건 어떤건가요?
제 말을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어느 출판사가 중요한게 아니라 외국 영화서적 번역이 힘들다는 겁니다. 외국에 지불해야 할 저작권료가 리스크를 안고 간행할 범위를 넘어서는 겁니다. 예컨대 허문영씨가 존포드 책을 내는 거는 가능합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외국 저작권료에 대한 부담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번역서, 그것도 영화 전문서적 번역은 마진이 안 남습니다. 내 주위에는 존포드에 열광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무슨 헛소리야 할지 몰라도 그게 허수입니다. 알잖아요. 영화제 때 관객이 많이 봤다고 유럽 아트 영화 수입하면 쪽박 찬다는 것. 영화제 때 본 사람들 수요가 그 영화 국내 수요니까요.
현실은 그렇습니다.
12 Harrum  
맞는 말씀이세요. 이 말씀은 다른 분야의 서적도 마찬가지이죠.
백퍼 동감하고 답답합니다.
초판 나오는 시기에 못 사면 끝이더군요.
S 암수  
ㅎㅎ 요런 시큼털털한 로맨스가 있었군요...
4 애플그린  
서양 애들이 나비부인 같은 작품류의 로망이 있죠
7 도라영  
존포드가 걍 갖고논거 같은데...... 미국 유명 감독이랑 이어졌으니 문혜란은 단꿈에 젖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