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와 남자들 퍼레이드 장면

영화이야기

엘레나와 남자들 퍼레이드 장면


(Cineast비정규직 님과 외지인 님이 변환해주신 자막 덕분에 고화질 영상으로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 보다가 하스미 님이 댓글로 언급해 주신 퍼레이드 군중 장면이 너무 재미나서 혼자 감탄하다가 이 새벽에 몇 자 두드려 올려 봅니다. ㅎ 장 르누아르 영화를 3배쯤 재밌게 만들어 주신 세 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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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르누아르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그의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그린 인상파 화풍의 풍경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감흥을 준다. 아들 장의 영화는 풍경화보다 시대를 담은 풍속화에 가까운데, 특히 롤렌 장군 환영 퍼레이드에 몰린 북새통 군중 장면은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물 흐르듯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롤렌 장군이 누군지도 모른 채 우연히 인파에 휩쓸린 폴란드 공주 엘레나(잉그리드 버그만)는 열광하는 군중들에 치여 3분 27초 동안의 짧은 모험을 겪게 되는데, 이 시퀀스의 촬영, 편집 리듬, (군중 엑스트라의) 연기 합, 미장센, 타이밍 등이 기가 막히다. 흥분한 파리 시민들은 하나같이 프레임 밖을 보며 환호하는데, 정작 그 환호의 대상인 롤렌 장군은 한 번도 프레임 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카메라는 계속 롤렌 장군의 모습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군중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비추고 그 호기심은 고스란히 보이지 않는 화면(프레임)의 바깥 풍경을 상상하고 있는 관객들의 궁금증으로 전염된다. 그러다 엘레나가 군중 사이를 떠밀려 다니는 장면이 시작되는데, 엘레나가 빙글빙글 왈츠를 추듯 '젊은 남자(헨리) - 누군가의 아이(토 토) - 전망경 - 다시 아이 - 전망경과 아이의 맞교환 - 다시 남자' 사이를 순회하며 회귀하는 편집의 리듬은 무도회장의 우아하고 경쾌한 움직임이나 호흡과 닮아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09:06 - 12:30)   

 


1956년의 잉그리드 버그만은 불륜과 이혼 등의 스캔들로 바닥을 쳤던 시기. 나락까지 떨어진 그녀에게 장 르누아르 감독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고 <엘레나와 남자들>로 버그만은 보란 듯 재기에 성공한 후 할리우드로 복귀해 <아나스타샤>에 출연했다고 하는데(영잘알 지인이 알려주신 뒷얘기 ㅎㅎ), 위태로웠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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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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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리는데 금지단어 때문에 게시글이 안 올라가서 돌아버리는 줄...
한 줄 한 줄 붙여 올리기 해서 겨우 찾아냈네요.  ㅠㅜ
토 토.... -_-

추카추카 12 Lucky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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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너무 웃겼습니다
그나저나 자막 만들어주신 비정규직님이 너무 고맙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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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산해운대  
장 르누아르와 잉그리드 버그만.
전설의 시대
장 르누아르가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르누아르 영화의 아름다움 중에 하나가 이런 소동을 찍는데 있습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거던요.
올려주신 장면에서 보여지는 화면 속의 다채로움은 넋이 나갈지경입니다.
먼저 마차 창의 작은 프레임으로만 보여지는 바깥 풍경이 엘레나가 내리자 말자 확 바뀝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화면 전체가 살아움직이는 기적 같은 광경을 보게됩니다.
요즘 감독이라면 이걸 수많은 쇼트로 잘라 붙였을 겁니다.
르누아르는 파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로 레이어드를 만들어냅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움직이기만 하는데 구경꾼들의 표정, 옷의 색깔, 개별적 동작이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특정 지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화면 모서리까지 생기가 넘칩니다. 화면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시각적 정보가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장면도 드물거예요. 이 장면을 보면 르누아르는 인상파 화가의 아들이 맞습니다. 군중의 다채로운 모습을 스크린이라는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것이니까요.
개개의 움직임과 전체의 움직임, 그 움직임에 따라 헤어졌다가 되돌아오는 또 다른 움직임(아이, 잠망경), 그러한 움직임만으로도 퍼레이드의 활기와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정작 의장대 행렬과 같은 퍼레이드는 보여주지 않고 말입니다(굳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 머리 위로 멀리 보이는 의장대의 깃털 모자 정도).
결국 영화는 쇼트를 어떻게 나누어서 관객에게 무엇을 보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는 예술입니다. 르누아르는 이 씬을 구상할 때, 퍼레이드 장면을 포기하고 군중의 반응만 선택했습니다. 숏의 사이즈도 풀 숏, 미디엄 풀숏 정도로만 택했고요. 놀라우면서 창의적 결단이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가 위대했던 시대에 위대한 거장의 솜씨가 느껴지는 기적같은 장면입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