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차트랑, '맥피어슨'
1930년대 초, 퀘벡의 음유시인 펠릭스 르클레어는 자메이카 출신 화학공학자 프랭크 랜돌프 맥피어슨과 교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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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중한 친구 :
그는 일요일 저녁에 왔지.
슈베르트 작품집을 들고.
내 동생에게 피아노 연주를 수줍게 청했어.
그도 과학자였어. 어머니는 그를 자식처럼 사랑하셨네.
난 어른이 되자 먼 타지로 돌아다녔지.
집에서 부친 편지가 그의 부음을 알렸어.
2월 폭풍이 치던 날, 책상에 앉은 채 동사했다네.
교회 종소리 없이, 꽃도 없이...
단지 슈베르트를 연주하던 이의 눈물만이...
1959년 12월 파리에서, 펠릭스 르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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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의 주된 관심사는 흑인과 백인의 우정이 아닙니다. 실은 그 우정은 감독이 우연히 얻게 된 부산물이죠.
감독이 어렸을 때, 통나무 벌목잡이의 영웅적인 죽음을 노래한 펠릭스 르클레어의 노래 '맥피어슨'을 들으며
상상했답니다. 노래 속 주인공은 아일랜드인이거나 백인일 것이라고.
감독이 이 노래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면서 재즈와 몇몇 정보로 상상한 벌목잡이는 백인이 아니라 흑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하지만 이 작품 작업은 중단되었다가 뜻밖의 일로 이 애니메이션을 다시 만들게 됩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 중에 펠릭스 르클레어의 아들이 있었죠. 그 사람괴 대화하던 중에, 노래 '맥피어슨'을 소재로
창작할 계획이라 하니 르클레어 아들이 말하죠. 맥피어슨은 자마이카 흑인이고, 화학공학을 전공했으며 실제로
제지회사에서 일했다고.
캐나다 음유시인 펠릭스 르클레어와 자마이카 청년 맥피어슨은 예상대로 젊었을 때 허물없이 교우했으며
르클레어는 재즈광이어던 맥피어슨의 벌목잡이 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1940년대 말에 곡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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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미지는 이 단편 작품의 보도자료 일부분입니다.
(감독 홈피에 걸린 링크를 따라갔더니... http://martinechartr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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