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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의 새로운 담론을 만나다
ibuti 2008-02-22

<히틀러, 독일영화> Hitler, ein Film aus Deutschland

1992년, BFI의 이언 크리스티는 <히틀러, 독일영화>를 뒤늦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가 언젠가는 TV와 영화, 픽션과 다큐멘터리라는 진부한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영화의 선구자로 인정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지버베르크가 만든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 중 상영시간이 7시간을 훌쩍 넘어서는 판타스마고리아, <히틀러, 독일영화>를 보는 것으로 족하다. 풍자와 비애, 역사와 판타지, 숭고함과 우스꽝스러움, 바그너와 브레히트, 고급예술과 키치가 뒤섞이고, 무대 위에선 ‘초현실주의 쇼’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온갖 행위가 벌어지며, 배우들은 생각하고 묻고 찬양하고 비탄에 빠지거나 입을 다문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버베르크는 50만달러와 배우, ‘블랙마리아’(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스튜디오)로 불리는 무대, 소도구, 사운드, 배경막에 영사될 자료만으로 시각과 청각 그리고 감정이 분출하는 광인의 교향곡과 실로 과장된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히틀러, 독일영화>는 ‘독일 삼부작’을 완성하는 작품이며, <루트비히, 처녀왕을 위한 진혼곡> <칼 마이> 그리고 삼부작 사이의 보완적 작품 <루트비히의 요리사>, <비니프레트 바그너의 고백>을 경유하면서 지버베르크는 히틀러 전후의 독일과 유럽 역사에 달려든다. 그러나 그는 써진 역사엔 관심이 없었고, 역사를 재현하거나 평범한 기록영화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 안에 도사리고 있는 히틀러를 끄집어낸 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라고 묻는다. 히틀러가 그런 것처럼, <히틀러, 독일영화>는 거북하고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히틀러의 망령을 쫓아내려 한다. 그리고 철학 대신 대중 이데올로기를, 인간 대신 기능을, 양심 대신 지지를, 본질 대신 편의를, 정의 대신 정치를, 문화 대신 정책과 산업을, 행복 대신 욕구의 충족을 선택한 현대인과 현대정치와 현대문화를 향해 제3제국은 전주곡에 불과함을 역설한다. 사실 당시의 역사, 인물,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히틀러, 독일영화>는 읽어내기가 힘든 텍스트다. 그것을 알았던 수잔 손택은 <지버베르크의 히틀러>에서 ‘각별한 주의와 숙고와 반복 관람이 필요하다. 배경을 알면 알수록 반향이 더 클 것이다. 충성의 맹서를 요구하는 고귀한 명작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다’라고 썼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지버베르크의 제안과 담론에 참여해볼 텐가? 그것은 당신의 다음 선택이 달린 문제다. DVD는 감독이 인정한 판본임을 밝히고 있으나,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탓에 화질과 음질이 좋은 편은 못 된다. 부록 ‘뉴욕 상영의 기록’(22분)은 영화를 미국에 소개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지버베르크, 마틴 스코시즈, 수잔 손택의 옛 모습이 담긴 희귀한 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