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문 여는 '또다른 백제'

노형석 2020. 1. 1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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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담았던 금제 항아리가 어두운 입구 끝에서 가물거린다.

들머리를 수놓은 대표 유물은 백제 무왕이 세운 미륵사 터 서탑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의 사리내호(사리를 싼 안쪽 작은 항아리)였다.

사리내호에 뒤이은 1~3실 전시는 '또다른 백제' 익산 역사문화권의 별세계를 차근차근 보여줬다.

사리 장엄구 공양품을 감싼 직물로 추정하는 백제 시대의 정교한 자수비단, 금실 등도 보존 처리를 마치고 처음 진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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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익산박물관 개관】
백제 미륵사터 유물 3만여점 갖춰
무왕 뼈 나왔던 쌍릉 대왕릉 목관
102년 만에 온전하게 복원·공개

'유적 밀착형' 반지하식 전시실
작품 배치·눈높이 해설 주목받아
사리 담은 작은 금제 항아리(금제 사리내호). 국립 익산박물관 상설전시관의 첫머리에 나오는 유물이다. 익산 미륵사 터 서탑을 해체하다 기단부 심초석 구멍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의 핵심이다.

‘부처의 몸’인 사리알들을 담았던 금제 항아리가 어두운 입구 끝에서 가물거린다. 다가가니 맑은 빛을 뿜으며 자태를 내보인다. 10㎝도 안 되는 금빛 몸체엔 광대한 미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넝쿨과 연꽃잎 문양이 약동하고, 무늬 사이엔 동그란 알 무늬가 풍요롭게 채워졌다.

지난 10일 오전, 4년간의 공사 끝에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관을 찾았다. 들머리를 수놓은 대표 유물은 백제 무왕이 세운 미륵사 터 서탑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의 사리내호(사리를 싼 안쪽 작은 항아리)였다. 자신의 몸체를 둘러싼 사리외호(사리를 싼 바깥 항아리)와 더불어 한국 미술사상 가장 빼어난 조형예술품으로 꼽히는 국보다.

이 명품은 독특한 벽체로 둘러싸인 가운데 관객을 맞았다. 고대 석탑의 탑돌 가장자리의 옥개석 선들이 계단처럼 정연하게 겹친 형상으로 재현한 벽체였다. 기획진은 이 벽체 한가운데에 원래 사리 장엄구가 들어 있던 석탑 심초석 구멍 모양의 감실을 판 뒤, 내호를 놓고 조명을 집중시켰다. 실제로 전시장은 꽃심격인 들머리의 사리내호를 기점으로 꽃잎이 여기저기로 피어나 뻗어가듯이 펼쳐지는 얼개를 띠었다. 뒤이은 1~3실 전시는 ‘또다른 백제’ 익산 역사문화권의 별세계를 차근차근 보여줬다.

1917년 익산 쌍릉 대왕릉을 발굴할 당시 나온 백제 목관이 지난 10일 오전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장에서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에서 주로 자라는 고급 수종인 금송으로 만들었다. 박물관에서 온전히 모양새를 복원해 전시한 것은 발굴 10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백제 마지막 왕궁으로 추정해온 왕궁리 유적의 옛 담장과 궁터 복원 모형으로 시작한 1실은 궁터에서 나온 변소 터, 공방 터 등 유물과 인근 제석사 터에서 나온 소조상, 백제 무왕과 왕비 무덤으로 유력한 쌍릉 출토 유물로 꾸려졌다. 시선을 붙잡은 건 1917년 발굴 이래 102년 만에 온전한 모습으로 처음 복원·공개된 쌍릉 대왕릉 출토 나무널 관이다. 일본에서 주로 자라는 고급 수종인 금송으로 만들었고, 연결부를 이은 못이나 관의 자재를 다듬은 솜씨가 당대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육안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목관이 나온 무덤에서 출토된 뼈를 2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감식한 결과 무왕이란 사실상의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열반한 부처를 바라보며 슬픔을 토로하는 제석사 터 출토 승려상의 비통한 표정도 처음 공개되며 강렬한 인상을 전했다.

익산 미륵사 터에서 나온 보살의 손. 일부를 구부린 손가락의 조형에서 간절한 열망이 비친다. 2부 미륵사 터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상설실의 중심인 2실 미륵사 터 유물실의 주인공은 서탑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다. 사리내호 못지않게 뛰어난 사리외호와 크기가 높이 3㎝ 남짓으로 3분의 2가 부서졌던 사리 담은 유리병을 온전히 복원해 내놓았다. 사리 장엄구 공양품을 감싼 직물로 추정하는 백제 시대의 정교한 자수비단, 금실 등도 보존 처리를 마치고 처음 진열됐다. 끝단 일부를 구부린 손가락의 조형에서 간절한 해탈의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보살의 손은 일품이었다. 내려다보며 손을 만든 당대 장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는 추체험의 감동을 누릴 수 있었다.

익산역사문화권 전반을 다룬 3실도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익산 백제문화의 배경이 되는 청동기시대 군산 선제리의 대쪽 모양 청동도구가 처음 나왔고, 백제 금동관모와 신발이 나와 유명해진 입점리 고분의 유물들을 무덤방 재현공간에서 상영하는 세부 문양 이미지와 더불어 감상할 수 있었다. 국내 최고의 부여 왕흥사 사리기와 경주 감은사 사리기, 칠곡 송림사 사리기 등 국내 불교사리장엄구 대표작들을 한데 모은 말미의 특별전(3월 29일까지)은 눈에 확 띄는 작품 배치와 눈높이 해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륵사 터 바로 아래 들어선 박물관은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반지하식 얼개를 통해 역사의 깊이감을 낸 유적 밀착형 시설이다. 이전 전시관시절보다 3배 더 확장해 백제 초기부터 근대까지 출토된 약 3만여 점의 유물들을 수장, 전시하면서 익산의 역사문화를 알리게 된다.

제석사 터에서 출토된 눈을 찡그린 승려의 상. 흙으로 빚어 불에 구운 소조상이다.

이날 첫선을 보인 국립익산박물관 상설관은 선사, 청동기, 철기, 삼국, 고려, 조선 순으로 판막힌 시대별 구분부터 하고 컬렉션을 배치했던 지역 국립박물관의 해묵은 도식을 시원하게 깨뜨렸다. 왕궁리 궁터와 쌍릉, 미륵사터 유물들을 세 개의 큰 축으로 삼아 ‘또다른 백제문화’, ‘백제의 오래된 미래’란 관점을 첨단 영상과 입체적 진열 형식에 녹여낸 성의가 돋보였다. 최경환 학예사는 “유물의 원래 의미나 쓰임새를 전시 공간에 어떻게 도드라지게 살려낼지를 우선 고민했다. 새 전시 모델을 선보인 일본, 중국, 유럽 등의 기획전 등도 직접 가서 살펴보면서 완결성 있는 전시를 만들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익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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