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내버려두고 쉬래요”… ‘가짜휴게시간’ 성토 나선 장애인활동지원사

입력
2019.07.05 04:40
수정
2019.07.05 15:00

“정부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들도 휴식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저더러 도와주던 장애인을 내버려두고 무조건 근무시간 중 1시간씩 쉬라고 이야기합니다. 돌봐주던 장애인에 비상 상황이 생기면 정부가 책임을 질건가요?”(대구의 활동지원사 최모씨)

전국공공운수노조 소속 사회복지서비스직종 조합원들이 4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서류상 ‘가짜 휴게시간’을 방치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민호 기자
전국공공운수노조 소속 사회복지서비스직종 조합원들이 4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서류상 ‘가짜 휴게시간’을 방치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민호 기자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지난해 7월 1일부터 휴게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장애인활동지원사, 어린이집 보육교사 등 사회복지서비스업종이 ‘8시간 근무-1시간 휴식’을 엄수하게 됐다. 중간에 쉬면 돌봄대상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특성을 무시하고, 보건복지부는 장애인활동지원사에게‘교대인력을 활용해 어떻게 든 1시간씩 돌봄대상 장애인으로부터 떨어져 휴식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제도가 바뀐 지 1년이 지났지만 장애인활동지도사들은 정부가 불가능한 지침을 내려 ‘무임노동’을 방치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보육교사들이 속한 전국공공운수노조 사회서비스공동사업단은 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휴게시간을 지킬 것을 강요하지 말고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대구의 활동지원사 최모(55)씨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을 중개하는 민간 중개기관에선 무조건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단말기를 하루 1시간씩 끄라고 지시한다”면서 “장애인과 외출한 상황에서 휴게시간이라고 집에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운영을 위탁받은 각지역 중개기관들이 정부의 감사를 회피하기 위해 ‘가짜 휴게시간’을 강요한다는 설명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이 사용하는 근무시간 기록용 단말기.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각각 카드 1장씩, 총 2장의 카드를 기기에 대야 근무시간을 시작하거나 종료할 수 있는데 한 명이라도 카드를 분실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휴게시간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이 사용하는 근무시간 기록용 단말기.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각각 카드 1장씩, 총 2장의 카드를 기기에 대야 근무시간을 시작하거나 종료할 수 있는데 한 명이라도 카드를 분실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휴게시간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 1시간짜리 대체업무를 맡겠다는 지원자가 없는 상황에서, 대체인력을 활용해 휴게시간을 지키라는 정부지침은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전국공공운수노조가 올해 보건복지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올해 2월 기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 8만여명 가운데 대체인력 이용 사례는 11건에 불과했다. 그것도 10건은 가족이 대체자였다. 활동지원사끼리 교대한 사례는 1건에 불과했다.

활동지원사들은 쉬지도 못하는 휴게시간을 지키느라 퇴근시간만 늦어지니 차라리 임금을 일한 만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활동지원사 김연주씨는 “정부의 탁상행정 때문에 한 달이면 21시간을 무임노동하는 셈”이라며 “최저시급으로 계산해도 17만5,350원으로, 일한 만큼 임금을 지급하고, 활동지원사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현실적 정책을 정부가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상 휴게시간 대신 임금으로 보상하는 방안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 활동지원사의 현실을 묵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와 몇 차례 협의를 했지만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활동지원사 서비스 가격을 올리고 휴게시간 관련 인식을 개선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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