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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 (修羅,1971) - 마츠모토 토시오. 이 강렬한 영화의 한글 자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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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성일씨가 서울아트시네마 친구들의 영화제 때 선택했던 영화기도 하고,

'감각의 제국'을 찍은 오시마 나기사가 이 영화를 보고는 마츠모토 토시오와 논쟁한 것으로도 유명한,

스샷만 봐도 너무도 궁금해지는 이 영화를 한글자막으로 꼭 보고 싶습니다.

영자막은 씨네스트에 이미 올려주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멋진 분이 나타나시길 기다려 봅니다..!!

 

 





----- 아래는 어느 블로거 분의 글입니다.


가학의 꿈, 피학의 현실.

마츠모토 토시오 -「수라, 修羅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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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집에 오자마자 흥분에 둘러쌓여 이글을 씁니다. 여러분이 이번 영화제에서 보시게 될 영화들의 목록에 이 영화를 반드시 포함시키시라고 강력히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살짝 과장하면 '장철이 와서 울고갈 정도'랄까요. 세부적인 내용들이 영화의 실제 내용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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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라고 여길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는 2008년 1월 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하면서 “이 영화는 취향의 영화입니다”라고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봐야할 ‘교양의 영화’도 아니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사랑할 ‘좋은 영화’도 아닌 ‘취향의 영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서 몇몇은 열렬히 경배할 수도 있고 몇몇은 지독히도 싫어할 수도 있다.

 

135분짜리 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관에 불이 들어오자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것은 수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최홍만이나 크로캅에게 온 몸을 135분동안 두들겨 맞는다면 어떤 기분일는지 늘 궁금했는데 드디어 알 것 같았다. 나는 마쯔모토에게 135분동안 눈을 두들겨 맞았고, 그 충격은 내 시신경을 타고 올라가 고스란히 뇌를 두들겼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 만들어진 싸구려 고어 영화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라고 감히 얘기하고 싶다. 타란티노의 웰메이드 피범벅 영화들의 아버지 혹은 스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시뻘건 해가 서서히 저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는 ‘먹물을 쏟아 부은 듯한(정성일 평론가 GV)’ 흑백 화면으로 바뀐다. 흑백 영화의 명도는 약 십 여개 정도의 정도차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채플린의 검은 모자와 채플린의 피부색과 채플린의 하얀 와이셔츠 색은 모두가 다 다르다. 또한 기존의 흑백영화에서는 암전(fade off)을 제외하고는 순수하게 명도 0의 검정 그 자체는 거의 찾기 힘들다. 그러나 먹물을 써서 그린 수묵화에는 명도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검정과 흰색 오직 둘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검정에는 다른 검정이 없다. 블랙홀과도 같은 순수한 명도 0의 검정만이 존재한다. 정성일 평론가가 이 영화에 대해 ‘먹물을 쏟아 부은 듯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어두운 밤에만 촬영을 하였고,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한 방향에서 쏘아져오는 조명 하나만이 사용되었다. 그 말은 조명이 닫지 않는 부분은 단 한 점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명도 0의 순수한 검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붓에 먹을 듬뿍 묻혀서 배경을 질퍽하게 칠해버린 것 같은 화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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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한 노인이 종을 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종을 치는 것의 클로즈업에서 종을 치는 노인의 좌측 측면 미디엄 샷. 노인의 뒤에서 미디엄 샷. 노인의 우측 측면 미디엄 샷으로 연결된다. 말하자면 노인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도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마치 조도로프스키 [엘 토포]의 오프닝을 보는 것 같이, 방 안에 널부러진 몇 구의 시체들이 나오고, 잘린 손이 등장한다. 그리고 한 명은 천장에 목을 메고 매달려있다. 주인공은 이것을 보고 기겁하지만 곧 꿈에서 깨어난다. 주인공은 무사인데, 주군의 죽음으로 인해 동지들과 주군의 복수를 결의하지만, 고만이라는 기생에게 빠져 복수에 쓸 돈을 다 탕진한다. 자신의 심복 하치에몬이 고향에서 어렵게 백 냥을 구해오자 주인공 겐고배는 이 돈을 마지막 희망으로 삼고 다시 복수를 결의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고만이 기방에서 다른 남자에게 팔려갈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기방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겐고배는 다른 사나이가 고만을 윽박지르며 그녀를 사려고 하는 것을 목격한다. 겐고배는 이것을 보고 문을 박차며 들어가 백냥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는 고만을 데리고 나오지만, 곧 이것이 겐고배의 상상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겐고배는 어쩌다 떠밀려서 상상한 것처럼 방 안에 들어가게 되고 고만이 자살하려는 척 연기까지 하자 어쩔 수 없이 백 냥을 내놓게 된다. 알고 보니 고만이 자신에게 접근했던 것은 그녀의 남편과 서로 짜고 겐고배의 백 냥을 뜯어내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된다. 겐고배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지만 분노와 수치심에 치를 떤다. 그리고 고만과 고만의 남편을 칼로 잔인하게 베어 버린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겐고배의 상상이다.

 

이 때, 영화는 장면이 바뀌고, 계략에 성공한 고만과 그 남편 일파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진다. 그들은 백 냥을 뜯어낸 것을 자축함과 동시에 겐고배를 비웃으며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다들 웃으며 잠에 든다. 그 때 누군가가 집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비장한 표정의 겐고배이다. 겐고배는 자신을 속인 일파들이 그 집안에서 잠에 들어 있는 사이에 아주 잔인하게 하나씩 다 죽인다. 자고 있는 남자의 배를 수직으로 찌르자 피가 솓구쳐 오르고 놀라서 도망가는 여인의 몸을 일자로 베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도망가려는 남자의 배를 찌르고 손을 잘라버리고 등을 베어버린다. 고만과 남편은 이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고 도망간다.

 

마쯔모토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히치콕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히치콕은 트뤼포와의 인터뷰집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진짜 관객들을 긴장시키기 위해서는 정보를 줘야합니다. 두 명의 남자가 야구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테이블 밑에서 폭탄이 터진다면 관객은 10초 정도밖에 스릴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두 명의 남자가 야구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동안 테이블 밑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고 있다면 관객들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내 긴장과 스릴, 공포를 느낄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당신이 관객들을 여기까지 몰고 갔다면 폭탄을 터뜨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죄책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영화관을 나갈지 모릅니다”라고 한다. 마쯔모토의 공포도 마찬가지이다. 마쯔모토는 겐고배가 상대를 잔인하게 살해하기 전에 미리 겐고배의 상상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겐고배의 잔인한 살해장면을 덜컥 보여주고서는 그것이 상상이라고 하고 동일한 상황을 한 번 더 반복시킨다. 그러나 두 번째 보여지는 이 현실에서는 상상에서 보여진 공포가 다시 재현되지 않는다. 즉, 관객들에게 이미 정보를 준 다음에는 관객들이 예상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공포를 보여주거나 혹은 아예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히치콕이 보여주는 공포와 마쯔모토의 공포는 정성일 평론가의 표현을 다시 한 번 빌리자면 ‘같은 말의 다른 판본’이다.

 

겐고배는 이 일로 살해 용의자가 된다. 하지만 고만과 그 남편은 백냥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의 환대를 받으며 모처럼 행복한 삶을 산다. 고만과 그 남편은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며 술을 마신다. 고만이 “겐고배가 복수하러 오면 어쩌죠?”라고 하자 남편은 그럴일은 없다며 고만을 안심시키지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고만이 문을 열고 나가보니 겐고배가 무서운 얼굴로 들어선다. 겐고배는 화해하자면서 술을 선물하고 그 술에는 독이 들어있어 그 술을 받아마신 고만과 남편이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고 죽는다. 그러나 곧 이것은 다시 겐고배의 상상으로 드러나고, 고만과 남편은 자신들이 준비한 술을 마시자며 다른 것을 권한다. 그리고 고만의 악기 연주를 듣는 동안 남편의 형이 관가에 가서 관리들을 데려오고 이들은 겐고배를 체포하려한다. 그러나 겐고배의 심복 하치에몬이 나타나 대신 잡혀간다. 분노한 겐고배는 고만과 남편에게 용서한다면서, 자신이 준 술을 꼭 마시라고 하고 떠난다.

 

집에 돌아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고만과 남편에게, 집주인인 고만의 오빠가 찾아오고, 고만의 오빠는 겐고배가 준 술을 먼저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는다. 겐고배가 집을 비우자 장면이 바뀌어 수풀을 해매는 겐고배의 모습이 나온다. 겐고배는 하치에몬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무덤가에서 그들의 환영을 보며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괴로움에 치를 떤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고만의 집에서 고만은 죽은 자신의 오빠를 몰래 우물에 버리고 돌아와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이 때 겐고배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게 되고 겐고배는 고만의 목 언저리를 한 번, 등을 또 한 번 벤다. 그리고 고만의 팔을 칼로 쑤셔판다. 그 와중에도 아이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고만의 팔에 칼을 억지로 쥐게하고 아이의 머리를 수직으로 관통시킨다. 당신은 악마라고 절규하는 고만을 찔러 결국 고만은 죽는다.

 

여기까지 영화를 정리해보면 이 영화의 살해 장면들은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마쯔모토는 히치콕 만큼이나 관객의 심리를 조종하는데 능하다. 먼저 주인공 겐고배에게 동일시되어 있던 관객들은 겐고배가 다른 사람들을 가학하는 것을 본다. 겐고배의 가학은 자신을 모욕한 사람들에게 모욕을 되갚아주거나, 혹은 칼로 잔인하게 베어버리거나, 독약을 탄 술을 먹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겐고베와 동일시 되어있을 때 벌어지는 이 가학들은 곧바로 겐고배의 상상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즉, 가학은 언제까지나 현실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죽을 때마다 마쯔모토는 매번 우리를 그들에게 동일시 시킨다. 즉, 겐고배에게 동일시되어있을 때에는 가학을 보게 하지만 곧 그것이 상상이라고 이야기하고, 겐고배에게서 동일시를 끝내고 첫 번째 집단 살해장면에서 고만과 그 일파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동일시를 시킨 이후에 겐고배의 등장을 갑작스럽게 보여준다. 이 때 관객들이 보는 겐고배는 더 이상 관객과 동일시 된 겐고배가 아닌 ‘타자’로서의 겐고배이다. 이 타자로서의 겐고배가 관객과 동일시되어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이 살해과정을 거치면서 관객들은 겐고배와 다시 동일시한다. 그 다음도 마찬가지이다. 고만과 남편이 아버지에게로 가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때에 관객들은 고만과 그 남편의 행복한 일상에 완벽하게 동일시된다. 즉, 그들의 행복을 빌고 겐고배의 등장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때 등장하는 겐고배는 다시 한 번 ‘타자’이다. 그리고 겐고배의 등장과 함께 우리의 동일시는 겐고배와 고만-남편 이 세 명의 인물 모두에게 공평하게 동일시되다가, 겐고배에게로 넘어가게 되고 이 때 비로소 겐고배가 그들을 독약으로 죽이는 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겐고배가 하치에몬과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환영을 보며 괴로워 하는 것을 함께 겪는다. 그리고 나서 또다시 진짜 현실에서의 살인, 즉 고만과 아이의 죽음이 있기 전에 관객들은 고만에게 동일시한다. 그리고 동일시되어 있는 상태에서 타자로서의 겐고배를 맞이하고 고만과 아이는 다시 잔인하게 죽는다. 이 후 곧바로 등장하는 한 장의 중립적 앵글. 즉 집안의 천장쯤에서 사각앵글로 잡는 마치 [싸이코]의 중고차 판매 가게에서 메리언 크레인이 화장실에서 돈을 꺼내 담을 때 보여졌던 것 같은 이상한 중립 앵글이 한 번 보여지고 난 뒤 관객의 동일시는 다시 겐고배에게로 넘어간다.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단 한 번도 관객으로 하여금 새디즘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새디즘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처럼 ‘위장’한다. 겐고배에게 동일시 시킨 상태로 새디즘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만 곧바로 ‘뻥이었어’라고 하면서 관객을 우롱한 뒤, 피해자들에게 동일시 되어있는 상태에서 그들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살해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이 조금 전까지 동일시 되어있던 또 다른 자신, 즉 겐고배이다. 살인씬이 끝날 무렵에는 중립적인 쇼트를 거쳐서 겐고배에게로 다시 동일시가 넘어가기는 하지만 이 때에는 이미 겐고배와 동일시 하고 싶지 않을 때이다. 왜냐하면 살인이 끝나고 난 뒤 피범벅의 집단 살해 현장에서 겐고배가 느낄 절망감은 피해자들의 그것보다 더 끔찍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학’은 꿈일 뿐이고 현실에 남는 것은 ‘가학’의 상상이 실패하고 난 뒤 남는 절망감이고, 따라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끔찍한 ‘피학’들의 연속과 절망감 뿐이다.

 

이 시점에 이르러 영화는 다시 오프닝에 보여주었던 종을 치는 노인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때에는 이미 이 노인이 고만의 남편이 겐고배에게서 빼앗은 백 냥을 가져다 바친 남편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이다. 오프닝과 비슷한 종을 치는 몇 개의 샷들이 지나가고 나면 노인은 저 멀리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네가 매형을 독약으로 죽였으니 저기 숨어 있으라며 큰 나무통에 아들을 숨긴다’ 겐고배는 마치 자신의 집인냥 어떤 방에 들어가 술을 마신다. 누군가를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겐고배의 얼굴 클로즈업이 나오고 난 뒤에 겐고배가 이야기하던 상대가 고만의 잘려진 목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겐고배는 고만의 목을 잘라 그것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줄거리를 건너 뛰어서……) 나무통에 숨어 있던 남편은 나무통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그가 나무통을 부수고 나오는 장면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6번 정도 반복이 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타란티노가 분명 마쯔모토의 영화를 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킬 빌2]의 88인의 야쿠자와의 집단 전투씬에서 보여졌던 바로 그것. 즉, 격자형의 문 뒤에서 그림자로만 보여지는 칼 싸움을 [수라]의 앞부분에서 보면서 조금은 눈치챘었지만, 내가 타란티노에게서 궁금했던 다른 것은 [데쓰프루프]에서 차와 차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여자들의 사지가 찢겨져 나가는 것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여러번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 ‘몹쓸 짓’을 과연 어디서 배워왔나 했더니 바로 이 영화였다.

결국 겐고배만 빼고 대부분이 죽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피바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과연 이런 극단적인 '피학의 향연'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란 말인가. 마쯔모토는 대체 왜 이런 극단의 극단으로 향하는 피학의 끝을 보여주는 것일까. 마쯔모토는 70년대의 전공투 투쟁 속에서 피로 점철된 피바다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통했다. 80년의 광주처럼 말이다. 동료들이 하나 둘 모두 죽어나가고, 싸워도 싸워도 적은 보이지 않는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결국 자신과 인생 자체를 자조하게 되고 ‘이판사판 다 죽어버리자’라는 냉소적 인생관이 영화에 투영된다. 겐고배는 결국 살게 될까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나 끔찍한 ‘살인의 추억’을 안고 사는 것이나 절망적인 정도로 따지면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둘 중 어떤 결말일지는 직접 영화를 보고 확인하길 바란다. 이 영화는 결국 인간들이 발버둥치며 살기 위해 벌였던 피비린내나는 싸움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로 바보처럼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절망감은 결말에 있으니 직접 확인하시길 권한다. 다만 피학을 견디지 못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피하길 권한다.                            


http://cafe.naver.com/seoulartcinema/1369

                                                                                                                                                   ■ Saku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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