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함 산 파블로 (the Sand Pebbles, 1966) Robert Wise

자막자료실

포함 산 파블로 (the Sand Pebbles, 1966) Robert W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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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들의 영화입니다.

(북경의 55일 이후 20여년, 여전히 혼란스런 중국이 무대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일본식 제목 '포함 산 파블로'를 좋아하는데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포획한 Gunboat 포함 산 파블로(San Pablo)호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포함이지 허름한 증기선에 2파운드 정도의 포 하나 덩그러니 달린)


하지만 원제는 the Sand Pebbles (모래 자갈들) 입니다.

이 해석은 홍*진 영화해설에도 잘못 나와 있군요. (스페인어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샌드페블'은 '산 파블로(성 바오로)'의 그들의 말장난(별칭) 입니다.

고로, 샌드페블즈는 산파블로 호의 승무원들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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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사운드오브뮤직' 다음 해에 만든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의 대표작이자, 20살의 캔디스 버겐의 주연 데뷔작 입니다.

(우리의 캔디스는 10여년 후에 루이 말 감독과 결혼하죠)


968full-the-sand-pebbles-screenshot.png
 

제리 골드스미스 음악도 보너스입니다.


retouched_subway_tsp_large.jpg

 

1324598499_StudMcQueen.jpg
 


PS: Z(HDC)님의 자막을 릴 맞춤하고

일부 교정한 5% 수정자막입니다.

 

Comments

제국주의 영화이긴 한데...

무지 재밋죠.
어릴때 TV에서 보고 나중에 몇번이나 봤습니다.

특히,
스티브맥퀸의 연기는.
요새말로 "후까시 만땅에 오바 쩌는" 연기였고
다른 사람이 했으면 정말 유치하게 보였겠지만
스티브맥퀸이 하면  정말 멋있었습니다.

오바 후까시 연기의 대가 주윤발 조차 견줄 바가 못되고
이소룡도 따라가지 못할 카리스마를 보여줍니다.

전투직전 긴장된 순간에 자동소총의 가늠자를 세웠다가 다시 눕히는 쓸모없고 사소한 동작 조차
고뇌와 반항기를 담아 연기하는 배우는 스티브 맥퀸 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 마지막 캔디스 버긴이 탈출하도록 시간을 벌기위해 학교안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
돌바닥을 가볍게 뛰어다니는 절도있고 경쾌한 발걸음 소리... 키아~ 죽입니다.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 것 같네요
14 토렝매냐
감사합니다
17 실룩이
이 영화도 형이랑 같이 TV에서 봤는데 오늘 드디어 FGT릴을 받았습니다.개인적으로 Grym릴을 선호하지만 고화질로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쁘네요.자막 작업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
5 cocoya
훌륭한 작품안내에 감사합니다. ^^*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20 큰바구
감사합니다 ^^*
19 주디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6 distopia
수고하셨습니다.
S BJCool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3. 3. 8. 재감상


단 평 : 거울은 복귀를 부정한다


단번에 상기되는 영화사적 계보는 <지옥의 묵시록>일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제국주의적 외양의 시공간적 차이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습기 정도가
차별화된 선상에서 본편과 <지옥의 묵시록>이 모두 나로부터의 심연으로서의 거울을
바라보는 자기인식의 과정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여기서 후작이 좀 더
이미지/사운드의 미장센적 과시에 몰두했다면 본편은 서사의 일직선으로 기술한다.

거울은 자신이면서 타자인데, 자신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왜곡화하는 스스로의
시선을 환타지화하면서 거울을 조종/규정한다. 본편에서 전쟁에서 탈취한 함선을
다른 지역에서 항해시키는데, 초라한 1문의 작은 대포와 더불어 엔진은 낡았고
곳곳은 녹슨 흔적이 가득한 일종의 유령선이다. 그러므로, 포함이 운행한다고해도
정치적인 사유로 어떤 행위로서의 공격은 불가하다. 거울로서의 나는 정지된 채다.

설사 외부에서 투입되었다해도 탑승하는 순간 내부로서의 전염은 피할 수 없다.
드라마의 고갱이에서 인물이 저항하려해도 결국 그 역시 녹슨 선박의 성조기 아래
포함될 수 밖에 없다. 거울로서의 중국은 계속 자아를 배척하여 성찰을 주문함에도
최종 전투라는 파국은 자살을 피한 광기를 생존시킨다. 엔딩에서 3인의 남성이
각기 다른 입장에서 죽음에 이를 때 가해자가 정확히 명시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본편을 전작들에서의 여성을 배제한 채, 집이라는 속성만을 지속시킨다면
내부의 무력한 상상계적 유약함은 성숙될 수 없는 존재론적 운명을 절대화한다.
그러므로, 작은 남근이 포함에 남겨진 이들이 물 위에 있다해도 가능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