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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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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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8세의 나이에 고아가 된 유리 지바고(Yuri: 오마 샤리프 분)는 그로메코가(家)에 입양되어 성장한다. 그는 1912년 어느 겨울 밤, 크렘린 궁성 앞에서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기마병에게 살해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일 이후 그는 사회의 여러 뒷면들을 접하게 되고, 의학을 공부해 빈곤한 사람들을 돕고자 꿈꾼다. 그는 그로메코가의 고명딸 토냐(Tonya: 제랄린 채플린 분)와 장래를 약속하면서 열심히 의학실습에 몰두하는데 운명의 여인 라라(Lara: 줄리 크리스티 분)와 마주친다. 그녀는 어머니의 정부 코마로프스키(Komarovsky: 로드 스테이거 분)에게 정조를 빼앗기자 사교계의 크리스마스 무도회장에서 코마로프스키에게 방아쇠를 당겨 총상을 입힌다. 유리는 다시 한번 이 여인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러나 라라에게는 혁명가 파샤(Pasha/Strelnikov: 톰 카우트네이 분)라는 연인이 있었다.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나고 군의관으로 참전한 그는 우연히 종군간호부로 변신한 라라와 반갑게 해후한다. 1917년 혁명정부가 수립된 러시아에서 유리와 같은 지식인은 제일 먼저 숙청될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랄 산맥의 오지 바리끼노로 숨어든다. 궁핍하지만 평화가 감도는 전원 생활을 보내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시내 도서관을 찾은 그는 우연히 그 근처로 이주해온 라라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유리는 라라와 토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 밀회를 지속한다. 그뒤 빨치산에 잡혀 강제 입산을 당한 유리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전차에서 내리는 라라를 보고 황급히 뛰어가다 심장마비로 절명한다. 이것도 모르는 라라는 내란 통에 잃어버린 유리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기존 Sub2Smi 붙였구요. DVDSub 자막(한/영)도 싱크 맞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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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이 영화 dvd나 hd립들이 은근히 짜증유발하면서 싱크 어긋나고, 화질도 맘에 안 들었는데
블루레이립에 맞춰주셨네요, 감사합니다...
1 Bellㄹr™
자료 감사합니다
7 최대치
고생 많으셨습니다
1 Jena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
1 리나화니
고맙습니다. 잘 볼게요.
11 방콕맨
감사합니다~.
28 saram16
감사합니다
17 실룩이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
3 dsgfsd
감사합니다
1 찬바람
감사합니다.
3 막둥이
감사드립니다
3 양웬리
감사합니다.
9 공처가
잘보겠습니다.
5 cocoya
불후의 고전명작...
1 풍사
명작!!
9 영화는예술
말이 필요없는 명작. 닥터 지바고. 유리 지바고.
S 컷과송
2023. 4. 11. 재감상



단 평 : 처음부터 무너지지 않았다


단순히 강-사막-설원의 배경 이동만은 아니다. 극히 부정적이게도 전작 두 편이 전쟁의

기운 아래 배치되면서 군인의 광기를 수용하면서 착각에 빠진 남근성으로 자진 거세를

택했다면 본편은 그 방향성을 시간의 함축이라는 지점에서 완전히 달리한다. 게다가,

전작 두 편에서는 배제된 여성 인물이 시대성과 순응, 불화하면서 인물을 보족하면서

기존 작품들에서의 인물의 경로와 궤를 달리한다. 우선, 이데올로기는 회피하기 어렵다.


전작들이 배반되는 장소성을 강/사막으로 지정했다면 본편의 설원은 그같은 역량을

이미지했다기보다는 마지막 도피처로서 능히 모든 것이 얼어붙었어야한다는 환타지적

염원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서사적으로도 개별의 인물들은 생동감을

결여하는데, 이는 연출의 미흡이면서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편파성일 수 있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각각의 목소리가 다성화되었다면 서사의 존엄은 지켜졌을 것이다.


부끄러운 탓이었을까? 위작이라도 인물의 시 詩는 거의 낭송되지 않는다. 여전히 시초에

죽음이 배정되지만, 남성 인물이 신적 지위로 군중을 지휘하며 승리를 구가하는 상상계의

환타지가 본편에서는 등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종말로서의 밖의 아버지의

등장으로서의 죽음은 벼락처럼 내리치지 않고 오히려 극 내내 인물은 그같은 아버지와

대면하면서도 시를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가 인민에게 사랑받는 것은 무덤에서야

확인된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편이 60년대 중반 냉전으로서의 전환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승전-붕괴라는 남성 환타지 비극의 결여로서 본편은 그저 흩날릴 뿐이다.
1 스마일4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