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The Crowd, 1928)

자막자료실

군중(The Crowd,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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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성 영화를 자주 보는데,

늘 느끼는 건,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이미 무성 영화에 다 있다" 같은 겁니다.

조금 과장일 수 있지만, 영화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인데도

있을 건 다 있다, 입니다.

이 영화도 그런 느낌을 주는 걸작입니다. 


제작연도가 1928년이라서 그런지,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보이지만

보는 제 마음은 스산하고 불길합니다.

곧이어 대공황이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젊고 가난한 부부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답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친족 간의 끈끈한 유대가 받쳐주던 삶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대도시의 '군중'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모두가 익명이니까요.

무시무시한 생존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주인공들은

90여 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 갖다 놔도 하등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모양입니다.


연출은 킹 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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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4 DUE
자막 감사합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1. 2. 7. 감상

단 평 : 영화는 내려다본다

​​서사의 요체라는 편리함을 폐기한다면 매트릭스의 부유물로서의 이데올로기에서도 이탈가능하다.
그 이후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당연하게도 영화라는 자기반영성일 것이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고정되지만, ​그 앞을 다큐의 그것처럼 수평 이동하는 군중이 포착된다. 이는 성조기, 독립기념일로
선동된 결과이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안배라면 영화의 예의는 그 장소에 자리함으로서 충분한 것이다.
​이는 흔하고 교묘하거나 성의없는 존재 인정의 실핏줄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적어도 선명하다.
​일하지 않는 국가공휴일로 시작한 시간의 배치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의 영화의 포용-포옹일 것이다.

​출산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후면에는 거울이 배치되고, 상황은 거울에 비치면서도 동시에 현행화된다.
​부의 역할은 마치 거울처럼 찬양의 환타지를 방출하는 원죄로 인해 곧바로 소멸되는데, 이 사건에서
카메라는 소실점의 아래를 두고 거의 처음으로 군중의 운집과 무지한 호기심을 수직으로 하향화한다.
소년은 그 점들에서 차츰 계단으로 오르지만, 이미 그 역시 해당 무리안에 포함되어 자유롭지 않다.
​마천루의 빌딩의 전면과 내면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이같은 ' 그 안의 개체'로서의 무개성을 적시한다.
​뉴욕 도심이 창 너머로 중첩될 때 동시대 유럽인들의 도시 교향악의 우아와 생동은 재연되지 않는다.
​이를 대체하는 것은 놀이공원에서 갑자기 공개되는 사적 관계에 대한 구경꾼으로서의 군중의 면모다.

​예고되었듯이 소년은 아버지가 되지만, 동시에 결국 아버지가 완전히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소년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거울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당선 문구에 '마술세제'와 '손재주'라는
모순된 맥락이 혼재되는 것 역시 ​인물의 출생 신분과 연관된다. 그가 자살을 하려하는 장소이자 상대가
질주하는 기차라는 것은 곧바로 엔딩의 공연장과 연결되면서 영화의 시초에 대한 반문으로 종결된다.
카메라가 서서히 물러서고 그 내부의 모든 이들이 공연을 보며 박장대소할 때 마지막 촬영의 시선은
이들에 대한 절대적 부감숏이다. 누구나 언급하듯이 이 엔딩은 단순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등급을
넘어서 영화가 당대의 이들에게 무엇일 수 있을까에 대한 자괴감 어린 어조가 된다. 영화는 작다.
7 LIitz
감사합니다.
1 빠빠라기0422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