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업을 완성한 지가
벌써 6년 전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만
이제 그런 시간과 열정은
제게 다시 찾아오지 않겠죠...
레지 로예르
엘자 질베르슈타인 주연
로제르 플랑숑 감독의
로트렉 몽마르뜨르의 화가 입니다.
가장 위대한 컴플렉스속의 자유주의자
신 앞에 두려움없이 아름다움을 사랑한 천재, 그를 만나보시죠.
앙리 드 뚤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프랑스 남서 내륙의 뚤루즈 근처 알비에서 로트렉 백작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4세와 15세의 두 번의 골절사고로 두다리 성장이 멈춰
기형적 장애를 갖게된 화가, 도안가, 그래픽아트 미술가, 삽화가, 석판화 화가였습니다. 부유하고 괴팍스러운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데생에 능했던 그를 지원해, 그는 1882년(18세)에 파리에서 유학하고 1885년경 몽마르트르에 정착하여 물랑 루주 등의 캬바레에서 매일 밤
스케치를 하고, 업소들의 포스터를 그려주면서 곧 몽마르트르에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또한 매춘업소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그림의 모델로 삼기도 했는데 당시 파리 사람들의 생활과 애환을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묘사로 그려내어, 가수 잔느 아브릴 과 라 굴뤼 같은
무용수들이 오늘날까지 알려지게 하였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에드가 드가, 우키요에(일본 풍속판화)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신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쉬잔느 발라동 등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1891년 이후 많은 석판화 포스터를 제작, 아르누보의 경지를 개척했지만 알코올 중독과
매독으로 인해 깊은 침체기에 빠져들었고, 1899년 입원하였으나 1901년 재발하여, 남 프랑스의 모친에게로 돌아가 37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1922년 모친 백작부인은 아틀리에에 있던 전작품을 알비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그 해 일반에게 공개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재미있는 편집 사진입니다.(귀엽게 생겼죠?)
로트렉은 이런 재미난 사진, 익살스런 장면, 분장한 사진들을 많이 찍었습니다.
일본 판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답게
그가 사용한 그림의 낙관 도장입니다
여류화가이면서 많은 화가들의 모델, 연인이기도했던
발라동의 작품 가족 초상 입니다. 대단하죠?
그녀는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마저 사랑에 빠져
곡을 지어 바칠 정도로 매력적인 여인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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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릴도 궁금한데 용량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