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등(GASLIGHT, 1940)

자막자료실

가스등(GASLIGHT,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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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헐리우드 판 <가스등>(1944)의 영국판 오리지널입니다. 

안톤 월브룩이라는 배우를 흠모하는 umma55님의 요청작입니다.


최근에 영자막으로 본 영화인데 소개하고 싶어 근질근질하여 번역했습니다.

헐리우드 복사판보다 훌륭하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쓸데없는 러브스토리 같은 건 배제하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음산한 분위기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악당 연기도 물론(?) 안톤 월브룩이 샤를르 브와이에보다 낫고,

희생물인 아내 연기도 이쪽이 낫습니다.

아주 절제되었지만 현실적인 연기입니다.


쓸데없이 길지도 않습니다.

잘 짜여진 영화에 낭비라고는 없습니다.


헐리우드에서 복사할만 합니다.

치사하게도 MGM이 이 영화의 네거티브 필름을 몽땅 파기하려고 했지만, 

감독 Thorold Dickenson이 발빠르게 빼돌려서(?) 남아있다고 합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s://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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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고맙습니다.
23 까마귀
고생 많으셨습니다~
GIVE 3 MP 16 TylerDurden
고맙습니다.
3 ckarkwk
수고하셨습니다
7 제려니
감사합니다.
18 redondo
자막 만드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1 oulala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3. 2. 2. 감상


단 평 : 영화는 외부를 욕망한다.


본편이 영화에 대한 개념을 진술한다는 지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노골적인 폐쇄성이
몇 번의 외출로 인해 붕괴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본질로서 장소성은 내내 담보되고 지속되어진다.
그러므로, 논점은 영화가 왜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가에 대한 과정론에 있을 것이다.총 3회 외출이
주목되는데, 여성 인물의 공원 산책이 의외로 동정어린 빵집으로 결산될 때, 여기서 식욕과 먹음의
생존이 제기된다. 다른 두 외출은 이와 상반되는 공연이라는 2차적 존재론, 즉 미학으로 연결된다.

다른 실내적 장소라는 두번째, 세번째 외출의 차이는 동행자, 공연의 성질 및 종료 형식에서
비롯된다. 두번째 피아노 단독 실내 연주는 청중이 부르조아로 어떠한 소음에도 민감하게
공연자가 반응하고 중지한다면, 세번째 캉캉춤 등의 공연의 관객층은 평민층으로 쉴 새 없이
환희의 웃음이 터진다. 전자가 청음이라면, 후자는 시선으로 압축되는 것도 다름의 일종이다.
하지만, 최종적인 갈림길은 관객으로서의 인물이 공연을 즐기는가라는 지점에 있는데, 전자가
인물이 남성에 의해서 배제된다면, 후자에서 남성은 잠시라도 공연에 감흥하는 순간을 보인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빛에 의해 인물이 조종받으며 저택 밖으로의 외출이 허가되지 않는다면
그 곳은 즉각적으로 영화(관)으로 지정된다. 영화는 내부/인물을 통제함으로서 자신의 환타지를
광기화로 세뇌하는데, 이것이 파괴될 수 있는 기원은 외부라는 유혹이다. 영화가 스스로 오히려
자신의 환타지로서 외부를 욕망하지만 결코 합일될 수 없다는 경계가 적어도 고전극 하에서는
엄중히 집행된다. 이같은 맥락에서 가스라이팅은 영화적 인물인 남성에게 적용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