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巨象)의 길 (Elephant Walk,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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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巨象)의 길 (Elephant Walk,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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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2smi by  Michael Archangel 
 
[Original] - SUB 변환 원본 자막 (KOCC)
└-> 다음 팟플레이어, Arial-굴림, 14-16pt에 최적 (미리보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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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S 컷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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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HanYork
댓글내용 확인
16 o지온o
감사합니다.
30 가일123
감사합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2. 2. 6. 감상

단  평 : 안은 안전하다



기의의 천박함은 본편이 스스로를 속물로 지창함에 있어서 오히려 부차적일 수 있다. 이는 식민주의를

투영하여 코끼리를 민중 항쟁으로 불사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시선일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감독의

위인전과 미국식 정치체제에 대한 모순적인 계보의 종점 정도에 위치될 때 조성되는 의구심일 것이다.

가령, 영화는 코끼리 무리가 식민지 영주의 묘지를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상징적

화재와 초상화의 소실 등으로 대체시킨다. 이 정점에는 기묘하게 어색하게 삽입된 남성의 웃음이 있다.



웨스턴적 입장까지는 범람할 수 없겠지만, 히치콕의 <레베카>와 <새>사이에서 본편은 기꺼이 아류의

저급함을 표출하는 것에 전혀 주저함이 없다. 주저 자체가 하나의 입장적 미학으로 관철되는 현재의

시점에서 본편은 한층 괴기적인데, 괴수물의 장르성에서도 본편은 완전히 이탈되어 있음도 한몫한다.

외부로부터의 인물 자체가 하나의 동력이라기보다는 관계의 전환시 재앙으로 등식화되는 기표로

투입된다는 점은 최종적인 봉합이 수미상관으로서의 우천으로 가능해지는 반역됨과 더불어 추악하다.



식민주의와 더불어 남성 동성 사회의 근저를 붕괴시키는 '젊은' 여성(비비안 리에서 리즈 테일러로)의

존재와 같이 본편을 새삼 의식하게 만드는 지점은 스튜디오 내부와 외부 촬영이라는 이중성이 던지는

경계의 안전성이다. 즉, 스튜디오 내부가 이미 장소적으로 폐쇄적인 인공성으로 닫혀있을 때 이를

외부에서 틈입하여 위험으로 경과시키는 시도 가능성의 이분법적 대립쌍은 엔딩에서 스튜디오를

선택함으로서 해체되지 못한다. 이로부터 외부의 식민성은 혁명되지 못하고 완전히 외부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