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무덤(The Indian Tomb, Das indische Grabmal,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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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무덤(The Indian Tomb, Das indische Grabmal,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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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랑의 <벵갈의 호랑이>의 연작입니다. 

앞 부분에 <벵갈...> 내용 요약분도 나옵니다.

남자 주인공 베르거는 후편에서는 너무 조금 나오네요

(그래도 별로 아쉽진 않습니다, 

제 눈엔 차라리 인도 마하라자가 더 섹시해 보여서요.^^).


이번에도 무희가 여신 앞에서 춤을 추는데,

1편보다 더 선정적이네요.

깜놀했습니다. 의상이..허걱...


마하라자를 비롯한 지배층 피부색이 너무 어두운 거도 흠입니다.

아리안족이 남하하여 인도 지배층이 됐기 때문에

대부분 피부색이 흰 편이죠.

지금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대개 피부가 흽니다.

인도인 스스로도 피부색에 연연하고요.

독일인 배우들을 쓰다 보니 인도인처럼 보이려고 그랬나 봅니다.


랑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 두 편이지만,

그저 인도....요거 때문에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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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1 구름뫼
고맙습니다.
13 소서러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에게 후임이 있었는지 몰랐었네요..ㅎㅎㅎ
24 umma55
토마스모어님이 후속이라 반드시(?) 두 편을 다 해야한다고 하셨어요.^^
13 참치동원
감사합니다^^
GIVE 5 MP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40 백마
감사합니다^^
21 dddsd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벵갈의 호랑이>와 <인도의 무덤>을 프리츠 랑의 영화 중 떨어지는 영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로빈 우드 같은 평론가는 이 두 편의 영화가 프리츠 랑의 영화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도 하지요.

원래 이 영화들은 훗날 랑의 아내가 되는 여류 소설가 테아 폰 하보가 시나리오를 쓰고 프리츠 랑이 1920년대에 연출을 하려고 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제작자인 조 마이가 메가폰을 쥐고 <인도의 무덤>(1부 '요가 수행자의 사명', 2부 '예쉬푸나르의 호랑이')을 1921년에 완성합니다.
랑은 조 마이에게 연출을 배웁니다. 1921년작 <인도의 무덤>에서 드러나는 안무와 같은 군중 씬, 웅장한 세트, 전통 의상, 사랑, 죽음, 배신, 범죄, 복수, 죽음이라는 주제들은 이후 프리츠 랑 영화들에 재등장하게 되지요.
랑은 말년에 홀린 듯이 이 두 편의 인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독일로 돌아갑니다. 마치 마무리 못한 일을 서둘러 마치려는 것처럼요.
그의 영화의 원류가 된 작품을 몸소 연출한 작품이니까 상당히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어찌보면 프리츠 랑 영화의 미스테리가 이 두 작품에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로빈 우드는 두 영화의 엄격한 형식미에 주목합니다. 그가 찾아낸 형식적 특성들은 경제성(Economy), 기능적 엄밀함(Functional Precision), 초연함(Detachment), 함정(The Trap), 억압된 지하세계(The Suppressed Underworld), 복수(Revenge)라는 여섯 가지인데 이것들이 미국에서 활동할 시기의 랑 영화를 관통하는 특성이라고 말합니다.
번역해주신 두 편의 영화가 프리츠 랑의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 암수
아하..그렇군요..역시 하스미님..
앞서 얘기했듯이...서구사회에서 2부작을 걸작으로 칭송하는 평론가들이 있어 왜일까 문득문득 궁금했었는데 풀렸네요...
프리츠랑 영화세계의 모든것이 이 작품들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네요...그리고 프리츠랑 말년 끝자락의 작품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 프리츠랑 작품세계의 초창기 뿌리같은 작품이기도 하구요..
약간은 거장 프리미엄(?) 이기도 한듯하고.... 이 점이 일반적인 작품평가와 몇몇 평론가들의 평가에 괴리가 생기게 한 듯 하네요,,,
이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저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틀안에 영화를 구겨 넣어버리면 안봐도 뻔한 영화평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비록 서구중심적인 시각이 있더라도 그와 별개로 프리츠 랑의 장점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작품이죠.
예컨대 도망치던 남녀가 동굴로 숨는 장면에서 추적자가 동굴 입구로 다가오자 거미가 동굴입구에 거미줄을 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을 본 추적자는 동굴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짐작하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이 장면은 화려한 특수 효과도 없고 단순하지만 그 지극히 간략한 연출과 연기로 신비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마 이런 것이 거장의 손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GIVE 3 MP 39 범부
감사합니다.
27 십이야월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19. 12. 5. 감상

단평: 위와 아래가 회귀한다.


전작 <벵갈의 호랑이>의 줄거리 요약이라는 프롤로그의 몫에도 불구하고 첫 프레임이
드넓은 강 위의 건축물로 롱숏화되는 것은 흥미롭다. 이는 마치 본편의 제목인 '무덤'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즉, 그것들은 '먼 곳에' 배치되어야한다.
무덤은 본편의 맥락은 물론이고 실질적으로도 '돌아가는 혹은 돌아가야하는 곳'인데,
이는 극히 관념적인 취지에 머물기 때문에, 실물로서 근접해서는 안된다.

무덤이거나 혹은 무덤일 수 있는 본편 속 지하 통로는 사실상 미로로 제시되면서
관념으로서의 회귀가 상식화될 수 없음을 진술한다. 호랑이와 나병 환자, 악어 등이
뒤엉킨 그 곳은  죽음이 나뒹굴지만, 정작 사랑의 승리는 지상에서 쟁취된다.
이같은 이분법은 종결시까지 지속되는데, 왕이 찾은 성자의 거처에는 계단이 보인다.
왕의 구도가 지하로의 배치라면, 외지인의 사랑의 쟁취는 지상에서 성사된다.

감독의 초기작 <니벨룽겐의 노래>과 본편은 2부작이라는 외형을 제외한다면
내러티브와 캐릭터에서 상반된 결말을 보이는데, 이를 테아 본 하르보의 이름과 연결하면
무언가 해원의 정서가 감지된다. 전작이 신화-비극이라면 말년의 2편은 타지-드라마이다.
이후 프리츠 랑이 마부제 박사 연작을 이어갔음을 중첩할 때 본편은 신으로의 귀의를 넘어
할리우드를 경유한 그가 세계의 보수적인 완결이라는 변화된 입지에 도달했음을 진술한다.
20 큰바구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