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Morocco, 1930) 조셉 폰 스턴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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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Morocco, 1930) 조셉 폰 스턴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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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자막을 해당릴에 맞게 옮겼습니다


게리 쿠퍼마를렌 디트리히라는 설명이 필요 없는 동갑내기 두 배우의 20대 시절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대 후반이고 그렇게 풋풋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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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5 Ashel
가슴 저미도록 아름다운 영화네요.
S 컷과송
2019. 10. 25. 감상

단평 : 빔(空)의 떠돎(遊) 혹은 떠돎(遊)의 빔(空)

한 남자가 노새를 움직이려고 하지만, 노새는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노새'의 생물학적 맥락을 제외하고도
움직이지 않음이라는 정착의 선택과 의지가 놓여있다.
오프닝의 롱테이크는 이같은 움직이지 않음과 이를 움직이려는 사내 너머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는 일련의 병사들의 행진을 추가시킨다.
전장 이곳저곳을 떠돌아야하는 병사와 움직이지 않는 노새는 반목되고,
어느새 병사 무리의 이미지 하에 노새는 덮여져 소멸된다.​
이같은 정착과 유목의 이분법적 구성은
본편이 20세기초 낭만주의의 그물에 포착됨을 진술한다.

이를 위해서 모로코라는 공간의 실제적 지역이 아닌
유령들의 떠돎을 위한 대리적 기표일 뿐, 그 자체로 생성되지 않는다.
이는 곧 상상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으로 연동된다.
이는 곧 상상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무기력한 비판으로 연동된다.
그 곳으로 들어서는 자들이 소개되고,
이는 곧 떠도는 자들의 매혹을 위해 정착한 자들을 소거시킨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사랑이라는 허울의 장식은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의 다름 이름이 된다.

흥미롭게도 떠도는 자들은 가난한 이들이고, 이를 지켜보는 이로서의 영화는 부유할 때
본편이 여전히 당대의 대공황에 대한 반동적 마취 혹은 저열한 공감을 지속함이 반증된다.
마녀는 부르조아에게 포섭하지 않고 빈자의 떠돎 아래 스스로 사과를 먹은 이브가 되어 굴복한다.
프레임은 내내 떠도는 자의 큰 키를 과시하면서 그의 존재론을 설법하고
엔딩의 유사 죽음은 사막 너머를 프레임에 허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