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아들 (一人息子 : The Only Son,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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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 (一人息子 : The Only Son,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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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2smi by  Michael Archangel 
 
[Original] - SUB 변환 원본 자막 (KO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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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2. 11. 17. 재감상

단    평 : 움직이는 것은 불안하다



중론이지만, '그렇습니까" 나 '그런가' 등의 발성에는 허무주의적 저항력의 부재가 놓여있는데,

그것이 오즈의 첫 영화에서 곧바로 류 치슈의 대사로 듣는 것은 어쩌면 기약된 헤어짐과 드디어

마주하는 것과 같다. 이와 더불어 관객은 동경을 방문하는 인물이 기차에 탑승하거나 하차하는

어떤 면모도 볼 수 없다. 그것은 매우 커다란 불길함이기 때문인데, <부초이야기> 이후에 오즈의

카메라가 정면화로 고정됨을 지속함에도 예외로서 카메라가 잠시라도 요동할 때 이는 반증된다.



가령, 본편에서 인물과 아들이 탄 자동차 내외부를 포착하는 카메라는 미세한 떨림을 보이고,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소년의 이동에서도 카메라는 잠시 움직인다. 이 숏들이 거시/미시적으로

다가올 실망과 사고를 결과함과 더불어 동시에 그것이 자동차, 말이라는 이동 매체와 우연히

중첩된다는 것을 상기하자면 모든 이동은 불안하고, 고정되는 카메라는 세계를 방비함이다.

엔딩에서 닫혀진 카메라의 정면과 측면을 포착한 프레임은 일종의 장벽처럼 기능하고자한다.



인물과 아들이 매우 어색하게도 동경의 쓰레기 소각장이 보이는 공터에 조심스럽게 주저앉을 때

새삼 동경의 죽음 이미지가 복귀한다. 교사인 아들의 강의 내용이 수학의 정리일 때 가기에는

일말의 생동감이 없고, 반복되는 빨래줄에 걸린 옷가지와 꺼꾸로 붙여진 부적, 인물 사이를

경계짓는 프레임 내부 문들의 경계 등은 기계적인 공장 뒷편에서 바닥을 청소하는 인물의

눈물로 정화될 수 없는 막연함이 도사린다. 아직 비정함은 등장하지 않지만, 상경은 능히

행복할 수 없다. 오즈의 모더니티는 첫 발성 영화 내부의 발성조차 거부하는 졸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