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의 진심(True Heart Susie, 1919)

자막자료실

수지의 진심(True Heart Susie,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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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언 기쉬는 천잽니다.^^ 

얼굴 표정만 봐도 그냥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자체도 아주 재미납니다.

남자 주인공 Robert Harron은 출중한 미남에 연기파였는데,

이 영화 직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떴네요.

진짜 아까운 배우입니다.

이 분의 연기 또한 대단히 섬세합니다.

대사 없이 다 됩니다.^^


삐딱(?)하게 보면 수지의 진심(true heart)은 

집착이 상당히 보이긴 하지만,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스러운 이야기가 소박하고 정겹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퍼지는 영화이지요.


하스미시계있고님이 영상과 자막을 제공하면서 신청하셨습니다.

제가 구하려하니 안 구해지더군요.

매우매우 귀한 영상인 거 맞습니다.

감사인사 드립니다.

영자막은 아예 없고 러시아어 자막파일이라

열어놓고 화면의 영어대사를 보면 바꿔치기하였습니다.


연출:D. W. Griffith


True Heart Susie 1919.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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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무비짜응
1919년이면 한국에서는 3.1만세운동이 있었던 해인데.... 유관순과 동나잇대의 사람을 영화로 볼 수 있다니...
24 umma55
요즘 영화보다 더 재미납니다^^
7 SA랑비
고맙습니다~^^
인도영화만 보다가~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라는 말에 보고 싶어지네요~^^
영상을 구하기가? ~
링크는 100회 다운이 넘어가서
어떻게 받을 수 없을까요?
24 umma55
링크 다시 올렸습니다.
7 SA랑비
고맙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술 한잔 하고 왔는데~
이렇게 선물을~
잘 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ㅎㅎ
37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GIVE 3 MP 14 Darktemplar
고맙습니다~
27 십이야월
감사합니다
13 데드맨워킹
감사합니다~^^
S 토마스모어
무성영화는 중간에 자막이 화면에 떠서 영어자막 파일이 없고 다른언어 파일만 있어도 번역이 가능한 장점이 있군요
릴리안 기슈 무성영화, 과거 짙밟힌 꽃 이후에 오랜만에 한 편 구하네요
번역하신 분 영상 제공하신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요즘 일이 많아서 이제야 감사 인사드립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S 반딧불이™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15 Barbarian
수고 하셨습니다 ~~~!!!
고맙습니다.
4 소주맥주
감사합니다
3 53오삼
수고하셨습니다
S 컷과송
2019. 7. 11. 감상


단평 : 키스라는 기표의 가학/피학 SM 증서


윤리적 이분법이 퇴색한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가학/피학의 동일시의 분산이다.
관객은 수지의 진심이라고 제목으로 제시되는 텍스트 내의 여정에서 극 밖에서
부인해야하는 가학성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극 내의 수지에 동일시되면서 피학을 경험한다.
애당초 가학/피학은 분리될 수 없는 통일적인 무의식이며 주체의 변증법적 경로다.
기실, 수지는 윌리엄의 연인이나 여성인 친구가 아니라 어머니임은 오프닝에서 직시된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롱 숏과 아메리칸 숏에 가까운 앵글을 통해 한 노년 남성을 보여준다.
윌리엄의 아버지로 소개된 이 남성의 단락 이후에 붙는 것은 노년 여성으로 수지의 이모다.
두 사람 중 남성은 집 밖, 여성은 집 안에서, 각기 대비되는 고정된 젠더의 위치를 점한다.
극 내 성역할은 개봉 당시 관객에게는 은폐될 필요조차 없는 이데올로기의 리얼리즘이지만,
21세기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전복되어야하는 껍데기로 변형되는데, 이는 동일 텍스트가
어떻게 관객을 구성하는가를 넘어서 담론으로서의 관객이 텍스트를 생성한  낡은 사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과연 관객이 주체일 수 있는가하는 사안은 좀 더 복잡한 논제가 된다.

갓길로서 젠더 고정성은 이후 수지-윌리엄에게서도 반복됨으로서 당대 관객에게 수용된다.
이를 위해서 동원되는 것은 전술한 가학-피학의 로맨스 전략으로서 수지의 수난극이다.
거의 일방적으로 무화되는 캐릭터인 윌리엄은 흥미롭게도 끝까지 수지와 키스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술했듯이 수지는 모성 부재의 어른 아이인 윌리엄이 욕망하는 어머니/여성인데,
기이하게도 아버지의 법 대신에 상상계에 잔존한 여성이 죽음으로 윌리엄을 귀환시킨다.

수지의 모성성은 초반부 학교에서 발화하는 단어인 'anonymous'처럼 익명화되어야한다.
놀랍거나 혹은 당연하게도 윌리엄은 육체(주먹), 종교(사제), 언어(소설)라는 세가지 기표로
자신을 아버지/남성의 법으로 지정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모성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는 은폐된 젠더 이분법이며 본편은 결코 젠더 트러블을 통한 교란을 시도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불변부당을 교차편집과 프레임의 축소/확대라는 기법을 통해 본편은
서로 다른 좌표에 있는 캐릭터를 관객이 이동하면서 동일시할 수 있는 쾌감을 전달한다.
무엇보다 관객이 본편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은 수지 역할의
릴리안 기쉬라는 배우에 대한 텍스트 외적 정보가 영화로의 진입로를 확보하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본편의 내러티브의 폐쇄성을 감내할 수 있는 윤리적 열외자의 위치가 마련된다.
만일 수지의 진심' True Heart '이 존재한다면 이는 모성성과 관객의 SM적 안전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