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확할 필요는 없겠지만, 거울을 보는 행위에는 자격이 필요하다. 그 자격은 자기애나 윤리와는
별개인 분열의 징후로 기술될 수 있다. 본편에서 거울을 응시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라는 시점에 있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인물의 동선, 정확히는 손의 선택을
따라 좌측으로 이동하였다가 반환점에 이르러 미세하게 인물의 후면을 드러낸다. 제자리로의
복귀에서 소비될 기호들은 성경책과 모자인데, 이 둘은 모두 인물의 방어 기제로 착용된다.
그리고, 비로소 인물의 얼굴이 드러난다해도 그것은 거울을 통해서이다. 즉, 관객은 인물의
정면을 결코 실제로서 먼저 포착할 수 없으며, 얼굴이 그물망이 뒤덮인 이후에야 예의처럼
물러서는 카메라에 의해 거울과 더불어 인지할 수 있다. 감독 세계 내 관행과도 같이 인물의
전신이 행하는 첫 움직임에는 계단의 하강이 있다. 이후의 성당, 보석상 등의 기복, 교환 등은
전자의 계단에 비하면 일종의 보충설명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연쇄될 죽음의 안내장이 있다.
<리벨라이>와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와 더불어 결투와 인물의 죽음이라는 기표들의
왈츠의 춤, 기차와도 같은 반복은 윤회적 공허라기보다 본편에서 공간 내부를 수회 가로지르는
트레킹 숏의 배역들을 비롯한 무수한 유사성의 행위적 지표와 더불어 도달할 수 없는 실재에의
가학을 진술한다. 각기 다른 양상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위 두 편과 본편의 인물들이 <윤무>
<쾌락>과 더불어 끝내 그 죽음의 자리에 되돌아 올 때 이에는 빗나가지 않는 총성의 결핍이 있다.
시신들이 보여지지 않는 부검의 부재와도 같이 서사는 결코 최초 부채의 발원을 묻지 않는다.
막스 오펠스 감독의 걸작이라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10년 휠씬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자막이 안 맞아서 중간 이후에 안 맞는다고(100m27s HD4U릴)피드백까지 남긴 기억이 있는데 다른 영화 인것도 같네요 ㅎㅎ 글이 길어졌는데, 덕분에 정말 고맙습니다.
단 평 : 신뢰할 수 없는 것들
적확할 필요는 없겠지만, 거울을 보는 행위에는 자격이 필요하다. 그 자격은 자기애나 윤리와는
별개인 분열의 징후로 기술될 수 있다. 본편에서 거울을 응시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라는 시점에 있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인물의 동선, 정확히는 손의 선택을
따라 좌측으로 이동하였다가 반환점에 이르러 미세하게 인물의 후면을 드러낸다. 제자리로의
복귀에서 소비될 기호들은 성경책과 모자인데, 이 둘은 모두 인물의 방어 기제로 착용된다.
그리고, 비로소 인물의 얼굴이 드러난다해도 그것은 거울을 통해서이다. 즉, 관객은 인물의
정면을 결코 실제로서 먼저 포착할 수 없으며, 얼굴이 그물망이 뒤덮인 이후에야 예의처럼
물러서는 카메라에 의해 거울과 더불어 인지할 수 있다. 감독 세계 내 관행과도 같이 인물의
전신이 행하는 첫 움직임에는 계단의 하강이 있다. 이후의 성당, 보석상 등의 기복, 교환 등은
전자의 계단에 비하면 일종의 보충설명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연쇄될 죽음의 안내장이 있다.
<리벨라이>와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와 더불어 결투와 인물의 죽음이라는 기표들의
왈츠의 춤, 기차와도 같은 반복은 윤회적 공허라기보다 본편에서 공간 내부를 수회 가로지르는
트레킹 숏의 배역들을 비롯한 무수한 유사성의 행위적 지표와 더불어 도달할 수 없는 실재에의
가학을 진술한다. 각기 다른 양상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위 두 편과 본편의 인물들이 <윤무>
<쾌락>과 더불어 끝내 그 죽음의 자리에 되돌아 올 때 이에는 빗나가지 않는 총성의 결핍이 있다.
시신들이 보여지지 않는 부검의 부재와도 같이 서사는 결코 최초 부채의 발원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는 자막이 안 맞아서 중간 이후에 안 맞는다고(100m27s HD4U릴)피드백까지 남긴 기억이 있는데 다른 영화 인것도 같네요 ㅎㅎ 글이 길어졌는데, 덕분에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