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천국(Seventh Heaven, 1927)

자막자료실

일곱 번째 천국(Seventh Heaven, 1927)

http://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193350

하스미시계있고님이 영상을 보내주면서 

신청하신 자막입니다.

무성영화 번역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무성영화를 뭐 번역할 게 있을까...했는데

그래도 중간중간 중요한 대사들이 나오니까요.^^


1927년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해이지요.

<재즈 싱어>로 유성영화가 시작됐으니까요.

이 영화는 무성이지만 같은 해에 나왔고

무성영화로선 처음으로 사운드트랙을 입힌 작품이라고 하네요.

이전에는 극장에서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해결했겠지요.


아주 오래 전에 아카데미 수상작들에 대한

영문 포켓북을 얻어 두고두고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첫 장에 나왔던 게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1929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했으니

이 영화가 1회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했지요.

그 땐 그런 영화가 있나부다...한 정도였지요.

이제 세월이 흘러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좋은 영화들을 신청하시는 님들 덕분입니다.


1937년에 제임스 스튜어트와 시몬느 시몬 주연으로

리메이크 된 게 있습니다.


원제:7th Heaven(1927/흑백/무성)

연출:Frank Borz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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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6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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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패도무영
감사합니다
GIVE 3 MP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25 구름뫼
고맙습니다 .

Congratulation! You win the 31 Lucky Point!

36 Daaak
감사합니다.
17 토마스모어
이런 건 정말 가치있는 문화유산적 자막이 아닐까 싶네요.
무성영화 작업은 잘 손대지들 않으니. 감사합니다.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설명글에서
Frank Borzage 감독의 이름을 Frank Bozarge 라고 표기하셨네요.
가뜩이나 이름 발음하기가 좀 애매한(?) 감독인데
거의 더 확인사살(?)하는 표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16 umma55
큰 실수를 했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21 이야호
고맙습니다
18 컷과송
두말할 나위 없는 걸작...<일출>이 상기되는 걸작...드디어 이 감독에까지 님의 자막이 이르셨네요..
16 umma55
요청하신 분의 공입니다. 고맙습니다.
18 컷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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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umma55
댓글내용 확인
17 dreammaker
고맙습니다 .
GIVE 20 MP 4 비텔로니
고전영화 자막 감사합니다~
25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35 범부
고맙습니다
2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S 줄리아노
무성영화의 어마어마한 세계로 오셨네요...^^
방대한 넘버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ㅠ
저도 가끔 무성영화를 의무감으로 작업합니다만
대사는 적지만, 그만큼 타이틀 카드의 비중이 커서
문장의 임팩트가 필요한 작업이죠.
너무 좋은 작품 수고 많으셨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16 umma55
방대한 넘버....ㅠㅠㅠ
임팩트...명심하겠습니다.
GIVE 20 MP 4 아빠의청춘
고전영화 자막 감사해요
18 컷과송
2019. 4. 29. 감상

단평 : 천국이 허락한 유일한 것


 저열한 언어놀이를 감행한다.
 '위로'와 '위'로....하나의 명사와 또하나의 명사/조사.
두 표현이 본편에 모두 해당되는데, 전자가 모순적이라면 후자는 표면적이다.
오프닝 자막에서 '사다리'가 언급된다.
 '올려가려는 이들을 위해'라는 전제에서 지시하는 '위'는 계급적 맥락이 아니라, 종교적 맥락이다.

이 '위'에 대해 카메라가 인물의 주거지를 굳이 세트 디자인임을
 드러내는 트래킹 숏을 지속하는 순간, '위'로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직 섣부르지만, 자기반영성의 숏으로서 주인공 두 명이 계단을 걸어 허름한 다세대 주택의 최상층에 올라가는 장면에서 관객은
 마치 초반부 여주인공이 언니의 폭력을 피해 도망칠 때 카메라가
 뒤로 급속도로 물러나는 순간의 감정과 동일한 소외를 경험한다.
즉, 노골적인 트래킹 숏들은 관객을 본편의 감상으로부터 차단시킨다.

말하자면, 본편의 요체는 오프닝의 지하 하수구로부터 시작되어
 영화의 거의 대부분 장면의 공간이 되는 두 주인공의 주거지에서
 증명되듯이 '위'로는 정녕 신의 '위로'인가에 놓여있다.
노골적으로 사제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남자 주인공의 귀환에 대해서 예지하지 못한다.

 '동지'로 호명되는 옆집으로의 통로가 겨우 합판 한장인 것은
 카메라가 전쟁 등의 풍경을 부감화하는 숏과 더불어 주인공의
 주거지는 오히려 지극히 모순적인 공간에 불과함을 반증한다.
결국 동지는 한쪽 팔이, 주인공 남성은 눈의 시력을 잃고 돌아온다.
여기는 두 주인공이 과잉되게 발화하는 '천국'이 결코 아니다.
등장부터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던 주인공의 신념이 육체가 훼손된 이후 변경된다는 내러티브는 노골적이 비틀기다.
이것이 시계가 12시가 아닌 11시에 머물러 타종되는 이유일 것이다.

전쟁 로맨스 장르이면서 동시에 종교 불신극으로서 본편은
 감상 너머에서 영화의 자기반영성을 장치를 통해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