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 (The Wrong Man,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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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 (The Wrong Man,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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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9fde54ff00e9717a25b560ceed5978e_1541689847_5629.jpgBD립에 맞는 자막이 없어, 영문 BD자막에 기존이 있는 한글을 다시 입혀서 작성했습니다.


영어 자막에 따라 한글 자막에 추가된 문구가 몇개 더 있습니다.


그 밖에는 원래 있던 한글 자막을 기초로 작업했습니다.


BD립에 맞는 자막이 필요하셨던 분들은 즐감하세요.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s://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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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스피리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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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쏘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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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컷과송
2020. 3. 6. 재감상

단평 : 다시 거울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본편의 오프닝에는 두 가지 방점이 있다. 하나는 히치콕이 카메오가 아닌 오프닝 해설자로
 자신임을 숨기지 않고 등장해 작품에 대해 언급한다는 점이라면, 둘은 흑백이라는 점이다.
전자에서 그는 본편을 '실화에 근거한'으로 특정짓고, 후자에서는 <다이알 M을 돌려라>
이후 5편을 이어왔으며, 본편 이후 9편 중에서 <싸이코>를 제외한 작품들 모두가 컬러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본편의 흑백은 <로프>의 컬러만큼이나 형식상 주목된다.
이는 곧 본편의 실재성을 적시하고, 흑백으로 다루어야한다는 의지가 있었음을 지시한다.

 'Wrong Man'에서 'Wrong'은 히치콕의 남성들의 표면성으로 그들이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위협을 지시한다면, 그 위협이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해서는 작품에
 따라 다소 상이했다. 그것은 여성의 거세이거나, 아버지의 법에 대한 유아적 반항이었다.
본편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육체를 과시하는 악기인 더블베이스를 그가 속할 수 없는 계급적
 위치인 부르조아들의 클럽에서 연주한다는 지점의 중첩은 이후 서사의 흐름과 연결한다면
 하나의 참호를 구축한다. 즉, 그는 자신이 선망하는 계급 밖에서 여성에 의지 혹은 통제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그는 임금 노동자로서 아내의 치과 진료비조차 곤란한 처지다.

이같은 상황의 남성이 범죄자로 오인되는 곳은 '보험' 영업소다. 즉, 그는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담보화한 장소에서 오히려 축출당하며 이는 곧 그가 순응했던 아버지의 언어였던
 국가로 더욱 확장된다. 재론의 여지 없이 남성은 강도범으로 오인된 것이 아니라, 분화된
 바라면, 본편의 실재성은 남성이 강도 행각을 했음에도 이를 부인하기 위해 다른 인물을
 생성시켰다는 측면으로 은유된다. 즉, 여성-증언으로서 누명이 오고가는 것에 대해서
 인물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괴 상태로서의 배우자가 폐기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분신화된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것이 옳다. 영화는 이를 매우 전통적인 오버랩으로 구축한다.

즉, 본편에서 남성은 그가 아버지, 여성, 언어'들'의 연합전선에 의해서 거세되어 자신의
아들들에게 상상계의 언어인 음악 레슨조차 하지 못하자, 자신의 경계 밖으로 미끄러지는
여성에 의해 자신이 속했던 거울로 회귀하지도 못한채 갑자기 실재계로 축출된 것이다.
해당 프레임에서 여성이 휘두르는 머리빗의 동선이 <싸이코>의 샤워 장면과 동일하다.
모든 증인이 실재로 죽었거나 유사 죽음으로서 실종된 이유 역시 이에 부가될 수 있다.
물론, 남성의 유일한 아버지는 국가가 아닌 종교이며 그것이 어머니의 '기도하라'는 명명을
통해 자신을 분신화하는 출구가 되었으며 실제 남성이 종교화를 응시하여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남성이 제자리로 복귀했음을 지시한다고 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본편의 엔딩에서 남성은 히치콕의 다른 작품들처럼 여성과 키스하면서 보상받지 못하고
자막이라는 언어의 힘에 의해 기술될 뿐이며, 카메라가 롱 숏으로 담아내는 가족이 남성의
그들인가에 대해서는 관객은 확정이 아닌 추정에 머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14 cowboy
감사합니다.^^
9 공처가
수고하셨습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