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맨하탄(TaleS of Manhattan, 1942)줄리앙 두비비에 연출

자막자료실

운명의 맨하탄(TaleS of Manhattan, 1942)줄리앙 두비비에 연출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192487

토마스 모어님 요청 자막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극악의 자막 용량'이었습니다.:)


올 스타 갈라 영화 같군요.

IMDB를 보니, 당시는 이런 옴니버스 스타일의 영화는

매우 드물었다고 합니다.

암튼, 포스터에서도 보이지만

헐리우드 스타들이 총출연한 느낌입니다.


이 영화는 버전이 하나가 아니라서

W.C. Fields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상영시 잘렸고

그 대신 더 짧은 마지막 에피소드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도 당시 영화로서는 상당히 긴 거의 2시간 길이입니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감독 줄리앙 두비비에의 낭만성이 지나치다(?)고나 할까요,

저처럼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올드 영화 팬이라는 건 좀 모순인듯 하지만,

불어 억양이 너무나 강한(거기에 혀도 좀 짧은듯?^^)

샤를르 브와이에가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의 스타라든가,

총 전문가인 토머스 밋첼이

장전된 건지 아닌지 모른다든가^^,

슈발리에의 맞춤 양복이

키작고 뚱뚱한 에드워드 G 로빈슨에게 맞는다는 설정^^,

미국 대학 동창인 미국인이

영국 본토 영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든지

(<Caught>의 제임스 메이슨처럼)

마지막 에피소드의 공산주의를 연상시키는

대책 없는(?) 이상주의 같은 게 그렇습니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나고 탄탄한 각본 덕에

그리고 명배우들의 연기 덕에 쉴 새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헨리 폰다가 여자를 꼬시는 장면을 보면

순진한 척 하면서 할 건 다 하는 남자인데

실제 폰다도 그런 수법(?)을 쓰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근데 폰다 친구로 나오는 

세자르 로메로의 코믹 연기가 일품이더군요.

넘 맘에 들었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자막을 만들고 나니

싱크가 문제였습니다.

싱크가 안맞고(분명히 같은 FPS인데)

아니, 주로 안맞다가 가끔 맞다가 해서

도저히 수작업으론 손을 댈 수가 없길래

(그랬다간 제가 죽을 거 같아서^^)

그냥 올립니다.

솜씨좋고 맘씨좋은 분이 수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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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9 범부
수고하셨습니다.
37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S dreammaker
고맙습니다 .
제가 소개한 글 중에 전반적인 견해가 저는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뒤비비에 사후 <런던 타임즈> 실린 추도문도 있는데 그 글도 이것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내일에게 길을 내주다>는 레오 맥커리의 <Make Way For Tomorrow>가 아닐런지요?
S 토마스모어
네, 제목이 헷갈렸네요.
줄리앙 뒤비비에의 우리나라 출시제목은 '하루의 끝'입니다.
레오 맥케리 영화의 개봉제는 '명일은 안온다'였지요.
40 Daaak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2. 5. 13. 감상


단  평 : 기표는 언제나 속인다


총 5편의 단락은 기표의 위치에서 세 개의 단위로 구분될 수 있다. 그 중 첫번째, 두번째 단락은 쉽게
무시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기표 자체는 거의 무력하기 때문이다. 기표가 서사에 종속되어
지배받는다기보다 일종의 무대 장식으로서 배경화된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같은 맥락은 분위기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의상은 앞선 두 단락은 물론이고 엔딩에서의 방점을 예비하면서 기표가 무엇일
수 있는가를 진술하기 때문이다. 기표는 언제나 구조 하에서 옷을 갈아입는 자리바꿈의 속임이 된다.

이같은 이론적 면모는 첫번째 단락에서 옷이 거의 무용지물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총구를 가림으로서
반복되는 연극적 장치를 가능하게한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본편이 연극 무대로 시작되고 두번째 단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편의 단락에서 모두 청중이 존재해야한다는 영화적 요소를 지속한다는 것은 기꺼이
기표의 또다른 속성인 의외의 폭로라는 쾌감을 공유하는 허위의식을 드러낸다. 물론, 이의 지근거리는
세번째 단락의 지휘자의 복색에서 추출될 것이다. 홀수 단락마다 의상이 손상됨은 시의적절한 처사다.

재론하자면, 서두에 전술했듯이 기표 자체는 본편에서든 밖에서든 언제나 동일한 기의로 작용하지 않고,
실제로는 공허에 불과하다. 첫 단락에서 의상은 연극적 장치 이상이 아니었고, 두번째에서는 정체성의
교환이며, 세번째에서는 드디어 버려질 수 있다. 네번째는 전자와 동일한 쓸모로서 기표의 텅 빔을
비판의식으로 제공한다. 스타성이 배제된 마지막 단락에서 기표는 그것이 어디에 위치되는가에 따라
의미가 전환되는 비고정성을 허수아비라는 속임수의 고정으로서 증명한다. 기호는 언제나 순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