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노 (Fury,1936) 프리츠 랑 연출,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

자막자료실

격노 (Fury,1936) 프리츠 랑 연출,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178397

보려고 모아 놨던 영화인데 

마침 번역 신청이 들어와서 작업했습니다.


스펜서 트레이시는 일찌감치 나이가 들어보이는 얼굴이라

초기 영화를 봐도 늘 그 얼굴입니다.^^


후반부 법정 장면이 아주 재미난데

말로 먹고 사는(?)

검사와 변호사가 치고받고 하는 통에

대사가 엄청 길어서 고생 좀 했지만

영화가 속도감에 현실감이 넘쳐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영화가 나온 30년대는 특히 린치라고 하는

집단폭력 내지 처벌이 횡행했다는데,

사이비 심리학으로 생각해보면

공황시대에 대중의 분노가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게 아닐까 합니다만,

사이비는 영원한 사이비라서....:)


이 미국인들의 린치는

프리츠 랑의 조국 독일의 나치와 행태가

상당히 닮은 점이 있습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간 그의 정서가

영화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쉽게 선동되는 대중이나

법을 무시하는 폭력 같은...


원제:Fury(1936/흑백)

연출:Fritz Lang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s://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omments

1 langkawi
감사합니다.

추카추카 48 Lucky Point!

24 umma55
댓글내용 확인
S 컷과송
2019. 2. 9. 감상

단평 : 국외자의 극장은 엔딩되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첫 발에서 프리츠 랑은 이중적 동격화를 실행한다.
 <메트로폴리스>와 나치즘의 그늘이 그 중 하나라면, 나머지는
 그가 왜 할리우드로 이주해야했는가의 일종의 자술서다.
이는 미합중국이 과연 문명으로서의 존재론을 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당대 국제정치에 대한 반문이기도 하다.
관객은 어차피 이 질문에 대한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알려져있다시피 국가는 집단 폭동보다 양민학살을 주도하는 실체다.

할리우드의 각본은 독일에서의 프리츠 랑에게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대사-음성으로 삭제해버렸다.
이에 반발해서 감독이 제출한 이미지는 관습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령, 초반부 연인의 키스 이후 편집된 기차의 출발은 정적/동적
 이미지의 배반을 지시하고, 결말부 주인공을 따라붙는 도로의
 무인지경은 의외로 관객을 가파르게 압박하지 못한다.

드물게도 주인공이 생환한 이후 극장에서 뉴스를 봤다고 하거나
 법정에 스크린이 펼쳐질 때의 적시성은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의중을드러낸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쇼윈도우 안의 안락한 중산층 가구의
 인공성은 영화가 그 안으로 침입할 수 있는가에 대해 반론한다.

무엇보다, 본편은 법정 장르로서 판결을 엔딩하지 않는다.
프리츠 랑이 이주하여 '국외자'로서 스스로를 본편에서 명명하면서
 파악한 미국의 정체성은 아직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미궁이다.
6 bloodmess
감사합니다
11 아라태지
댓글내용 확인
24 umma55
댓글내용 확인
GIVE 5 MP 11 아라태지
댓글내용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