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 보트 (Lifeboat, 1944)

자막자료실

구명 보트 (Lifeboat, 1944)

http://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170348

자료실엔 블루레이용 싱크 맞춰진게 없어서 올립니다.


히치콕의 수작중 하나인 1944년도 Lifeboat 입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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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1 앵두봉봉
감사합니다
GIVE 3 MP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40 CaMillo
감사합니다.^^*
S dreammaker
감사합니다.
32 블랙이글
수고하셨습니다.^*^
31 궁금맨
고맙습니다.
32 Rookie
감사합니다
GIVE 3 MP 37 범부
감사합니다
23 이야호
고맙습니다
22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30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27 가일123
수고 하셨습니다.
18 umma55
오, 덕분에 다시 보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8 패도무영
감사합니다
S 영화이야기
Lifeboat.1944.1080p.BluRay.X264-AMIABLE
4 깡통시러
고맙습니다.
37 Daaak
감사합니다.
26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5 cocoya
히치콕의 수작에 수작 자막 감사합니다.^^*
2 Blackstar21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4 쏘쿨남
감사합니다
18 컷과송
2020. 2. 18. 재감상

단평 : 밖은 허락되지 않지만, 결국 내부에 가족이 있다.

오프닝이 누구의 시선일 수가 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시선일 필요가 있는가이다.
왜냐하면, 이에 대비되는 엔딩에 사람의 얼굴(들)이 배치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치란
단순히 사람의 유무뿐 아니라,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 유무가 지정됨을 의미한다.
폭발과 침몰에는 누구의 시선도 필요하지 않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데는 시선이 필요하다.
이 시선에는 체험으로서의 과거로서 인물이 필요하고, 그 인물들은 내내 주체를 불구화한다.

죽은 채 발견된 아기를 제외한다면, 죽은 사람들은 모두 정신질환의 주변을 맴돈다.
특히 영화는 독일군을 윤리라는 측면에서 하품, 나침반, 술병 속 물 등을 통해 이탈시킨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자들은 논쟁할 뿐 정신질환에 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결합되거나 서로를 존중하게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들은 벗겨져야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가족 구성체를 진술할 수 있는 인물이 히치콕 영화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흑인 남성이라는 점은 흥미롭지만, '짐꾼 죠' 나 신앙의 위치에 서는 한계는 지속된다.

오프닝이 흥미로운 다른 이유는 그것이 거의 유일하게 구명선 바깥에서 카메라가 위치하고
천천히 구명선으로 이동하기 때문인데, 이 와중에도 히치콕은 여성 1인을 먼저 구명선에
배치하고 그녀가 마치 폭발과 상관없는 인물인 것처럼 규정한다. 더하여 카메라는 그녀의
다리를 포착함으로서 본편이 여전히 히치콕의 여성극의 흐름 안에 있음을 엔딩의 마지막
대사를 그녀가 발화하는 것과 더불어 인증한다. 그녀의 팔찌가 다시 카메라가 배 바깥에서
위치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장치라는 점도 추가될 수 있겠다. 그녀와 흑인 남성이 다시
등장한 반복으로서의 독일군의 권총을 제거해버리는 공동 행동의 주체임도 동일 맥락이다.
그녀가 기록하는 자(카메라 등)에서 기억하는 자(죽음, 윤리)로 이동할 때 삶은 구조된다.
1 iandy012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