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튼 플레이스 Peyton Place

자막자료실

페이튼 플레이스 Peyton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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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시간: 157분 

 

Comments

31 구름뫼
고맙습니다
47 CaMillo
감사합니다.^^*
GIVE 3 MP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GIVE 3 MP 20 큰바구
자막 감사합니다^^*
7 포경선장
감사합니다.
S 궁금맨
고맙습니다.
32 블랙이글
수고하셨습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추카추카 33 Lucky Point!

39 범부
고맙습니다.
28 ll레온
고맙습니다
21 Enuf
고맙습니다
GIVE 3 MP 42 신동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37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추카추카 25 Lucky Point!

S dreammaker
감사합니다.
S MacCyber
후에 드라마로도 나왔던 영화 같네요. ㅎ
수고하셨습니다.
GIVE 100 MP S 줄리아노
엄청난 대사량을... 감사합니다.
작업 중이었던 자막이라
더욱 감사합니다.^^
S 줄리아노
댓글내용 확인
GIVE 100 MP M 再會
고생하셨습니다.
S rayphie
고맙습니다.
19 주디스
감사합니다.
23 다솜땅
감사합니다. ㅎ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S 기린군
감사합니다.
1 낯선사람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3. 3. 19. 감상


단 평 : 자가 치유 능력은 아버지로부터 기인한다.


니콜라스 레이, 더글라스 서크의 50년대 정치멜로 혹은 가족호러극과 비견하거나 60년대 제작된
동일 원작의 드라마 시리즈를 언급하는 것은 자제한다면 본편의 위치를 단독적으로 응시가능하다.
초반부의 성에너지의 범람에 대한 폐쇄공동체적 면모가 중후반부 이면을 들추는 중산층 뒤집기로
확장 혹은 축소(?)될 때 그 과정이나 서사의 양태보다 소중한 것은 의외로 세심한 파편들이다.
가령, 노동절 때 행진하는 보조출연자 소년의 눈빛이 유아에 꽂힐 때의 공포가 이에 해당된다.

인물의 뉴욕행에도 불구하고 본편이 단 한번도 밖으로 카메라를 외유시키지 않는 것이 장르의
공식임에도 굳이 'ROAD'S END'의 붉은 표지판을 통해 내외를 경계짓는 것이 아니라, 동일화
하는 구차한 방식들이나 살내에서 성공포증에 놓인 여성을 희미한 조명 아래 두고 애정을
고백하는 남성을 암흑화하는 따위의 고전적 교란을 행하는 어법 등은 그나마 축제 때 마음껏
음식 종류를 가리지 않고 포식하며 그대로 잠들어버린 소년 이미지 등으로 중화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본편과 같은 장르는 다소 허술하거나 무력한 나레이션을 외피로서 인용하면
글자 그대로 시간에 의지해서 자정할 수 있는 장소성에 대한 찬양이 존재론으로 제기된다.
그것이 50, 60년대 미국 중산층의 치부이자 긍지라면 그 영원성은 한편으로는 성장 서사가
아니라 공포의 차이 없는 반복이 된다. 법/의학/문서라는 이분법적 우위가 대중들의 지지를
소환할 수 있다는 우월감이 환타지임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본편은 그저 귀향극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