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자막 릴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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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평 : 틈입의 부재
본편의 어조로 말하자면 아무리 거대한 파도라도 스튜디오와 미니어처는 파괴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종의 남근적 불멸성에 다름 아니다. 굳이 페미니즘으로 우회하지 않더라도
대상화의 틈입은 오히려 노예성에 불과하다. 여기에 존재와 시간 그리고 의식을 초월적인 윤리로
교차시키기 위해 성관계는 물론 키스 장면조차 거의 극도로 통제했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이는 마치 미장센을 위해 프레임 내부가 정밀하게 조정될 때 결핍되는 외부의 우연성과도 같다.
문제는 대상의 출현이 누구에게 봉사하는가라기보다는 그 틍입이 상호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이는 죽은 자의 귀환이 산 자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사각형으로 촘촘히 구성된
캔버스로 재현될 수 있는가라는 논점에서 자격을 점검하는 것과도 상이하지 않다. 영화가 혹은
예술이 여전히 시간을 박제함에 있다는 미이라적 논술이 공연, 극장, 종교를 경유하여 박물관에
정착할 때 여기에 정동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주변의 모든 인물이 수상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본편을 원작이 아닌 감독의 세계 내에서 위리안치시킬 때, 이질적으로 부정되는 단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독립에 대한 벽화를 완성한 후 쓸쓸히 퇴장하는 인물에로의 응시는
30년대 중반 이후 전기물 등에서 인본주의로 포장된 미국식 정치체제로 뒤덮였던 감독의 본심을
투영한 토로처럼 보인다.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 빛을 통한 실재에의 훼손이라는 진실의 효과를
오히려 표피로서 격하시키는 내재된 이분법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그 남근성의 저의가 무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