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지대 (Street Of Shame, 1956)

자막자료실

적선지대 (Street Of Shame,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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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자막이 없는 것 같아서 합치고 릴 맞춤했네요. *^-^* 

 

Comments

47 CaMillo
감사합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31 구름뫼
고맙습니다
32 블랙이글
수고하셨습니다.^*^
37 Rookie
감사합니다
28 ll레온
감사합니다
16 TylerDurden
고맙습니다.
GIVE 3 MP 30 가일123
수고 하셨습니다.
S 궁금맨
고맙습니다.
39 범부
고맙습니다
37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GIVE 3 MP 42 신동휘
고생하셨습니다.
GIVE 3 MP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25 훈철아빠
감사합니다... ^^
20 빠깡
고맙습니다
1 쌈지길
감사합니다, 좋은자료, 굿짱. 고맙습니다. 좋은자료. 감동
48 RainBow
감사합니다!!
14 cowboy
감사합니다.^^
23 다솜땅
감사합니다.^^
20 엽전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1. 8. 14. 재감상

단 평 : 놀고 가요

낮의 거리의 한적함, 밤의 거리의 북적거림. 이 절대적 대비 안에 '꿈의 고향 夢の里'으로 번역되는 장소가 배정되어 있다.

고전극으로서 이분법의 편의성 밖 포스트 모던의 수혜를 받지 못한 서사적 아늑함이 여기에 젖어듦은 피할 수 없다.

누군가 들어오고 다시 누군가는 나가야하며, 그 순환 안에서 어떤 모호한 형태로서의 이탈과 경계는 아직 허가되지 않는다.

미조구치 겐지의 사극이 현대의 도시로 들어올 때 절대적이었던 국가 무력은 말단 순사와 라디오 방송으로 외재화된다.

밖의 국가와 안의 고용주라는 두 아버지가 시종일관 법과 해설을 허비할 동안, 인물'들'은 각자의 서사를 구축할 수 있다.



이야기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하는 자 사이의 간극은 프레임의 심도 안에 포함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증을 부여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분법답게 본능적인 심리적 위생학으로서의 간단한 시선의 타자화가 발생하고 지속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것이 인물'들' 사이에서 숏-리버스 숏이라는 공포를 추방하는 완벽한 세계의 생성 안으로 스며들지 않을 뿐이다.

꿈 夢을 예술로서 선언하는 이가 <우게쯔 이야기>의 혼령 배역이라는 지점은 이 장소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더할나위 없는 화법이다. 그 반대편에 엔딩의 '조또 ちょっと'와 가려져야할 반쪽의 얼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관객은 여기서 '놀고 가요'라는 반복되는 초대에 응하는 자본 교환자로서의 모순된 곤혹과 고욕 사이를 오가게 된다.

미조구치 겐지의 여성극 흐름에서 본편이 가지는 서사적 일탈은 위의 경로를 일시적으로 감압시키는 출구가 된다.

결말부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 인물이 몇 개의 시퀀스 뒤에 갑자기 재동장하여 장소 밖으로의 탈출에 성공한

면모를 보이는 속임수의 이야기는 내내 인물의 공간을 반쪽으로 제한시키는 직선의 프레임 내 구성을 무력화시킨다.

우연하게도 유작으로서 여성희생-남성 복원 서사가 아닌 그 역전을 선보이는 것은 서글프다. 이것은 'ちょっと'일까?